'촛불 민주주의' 이후 문재인 정부의 과제

[민미연 포럼] 사회 합의주의 깃발을 들어라

문재인 대통령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념사가 화제다. 평소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주위 사람들조차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환호했고,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 중이다. 자연인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촛불이었다. 촛불의 흥분이, 광장의 쾌감이 아직 가시지 않은 지금 촛불혁명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촛불혁명은 연인원 1000만 명을 동원한 거대한 시민운동이었다. 수많은 민초들이 참가했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가 되어 "민주주의"를 외쳤다.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자칫하면 독재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깨달음이 수많은 시민들을 촛불로 이끌었다. 민주주의가 가장 힘차게 꿈틀대는 나라가 한국임을 세계에 다시 알렸다. 마침내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복원한 민주주의는 부족하다. 부족하다는 말조차 너무 부족하다. 왜 부족한 것일까? 촛불이 해결한 절차적 민주주의, 국민과 소통하는 민주주의 수준으로는 신자유주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전개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기에 그러하다. '촛불 민주주의' 앞에 산적한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적으로, 촛불 민주주의 주도세력은 한국 사회가 다중적 모순 구조로 구조화된 사회임을 인식해야 한다. 진보적 대중 다수는 사회 현상과 해결 방법에 대해서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의 극소수 기득권세력이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절대 악'이다. 이들은 국민을 수탈하고 부정을 저지르며 법을 어기는 세력이다. 선한 대중은 이들의 수탈에 신음한다. 이런 구조를 갈아엎으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고 진보적 대중의 판단이다. 이런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 <내부자>와 같은 영화가 대중의 격한 호응을 보면, 극소수 기득권세력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소수의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그 시스템을 붕괴시켰음에도 좋은 사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은 극소수 엘리트만이 참가한 성곽이 아니라, 상위 10퍼센트와 결합된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구조적인 위기에 처하게 된다. 박정희식 개발 체제는 극단적인 정부주도형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독일의 전시 경제는 그럭저럭 잘 굴러갔다. 이 전시 경제 모형은 레닌에 의해 차용되어 소련에 적용되었다. 이후 소련은 1950년대까지 비약적인 성장을 지속했다. 이런 국가주도모델은 이후 일본의 경제발전에도 도입되었다. 저명한 동아시아학자인 찰머스 존슨의 '발전국가론'은 자유 방임에 의한 경제 성장이라는 환상을 깨는 일본의 경제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이론이었다. 그런데 찰머스 존슨이 간과한 역사적 사실은 자본주의의 초기에 국가의 주도적 역할과 개입은 어느 나라에서건 필수적이었다는 점이다.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적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의식적으로 만들려는 국가의 개입이 없이는 자본주의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구나 다른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을 위해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섰고, 몇몇 나라에서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회는 자본과 노동으로 양분된다. 20세기 들어서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이 만들어내는 모순의 격화에 노동 측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자본과 노동의 양자구도가 20세기 이후 자본주의사회를 움직인 근원적 힘이었다. 루스벨트의 친노동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유럽의 기본적인 노선이 되었다. 게다가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친소련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노동에 대한 일정 부분의 당근과 타협은 불가피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는 전례 없는 성장을 구가했다. '골든 에이지'라고 불리는 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졌다. 노동자를 배제하지 않고서도 경제는 충분히 발전해 나갔다.

황금시대는 1970년대 중반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원인은 경제가 위기국면으로 빠져든 것에 있었다. 충분한 경제성장을 통해 그 과실을 노동자에게 분배해 온 이 시스템은 오일쇼크를 계기로 무너져갔다.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서구 진보지식인들이 오매불망 복원되기를 염원하는 그 시대는 경제성장의 뒷받침 덕분에 지탱되었다. 성장이 멈추자 노동자에 대한 복지시스템도 멈추게 된다. 전후 자본과 노동의 균형을 통한 복지시스템은 경제의 추동력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었다.

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전후 복지국가시스템을 대체하는 기획을 한다. 이것이 바로 서구의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의 목표는 자본에 유리한 사회를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자본의 이동을 위해 세계화가 추진되었다. 각 국가별 자본과 상품의 이동을 가로막는 다양한 장벽들이 철폐되었다. 서구복지국가의 친노동 복지시스템은 축소되었다. 복지축소와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핵심 지향점이었다. 자본이 들어오면 국가 경제는 활성화된다. 그러나 자본을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각 나라가 자본에 유리한 구조를 갖추어야만 한다. 여기서 모든 나라는 친자본 사회시스템을 조성해야 하는 강한 압력을 받게 되고 국가 단위의 경쟁 구도로 내몰리게 된다.

신자유주의 사회시스템의 특징은 정규직이라는 노동의 안정성이 사라지는 데 있다. 세계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나라는 유사한 길을 걷게 된다. 선진국의 자본은 낮은 임금을 노리고 저개발국으로 이동한다. 자본의 유출 가능성은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노동에 기반을 둔 진보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기회로 정규직노동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많은 정규직은 국외로 사라지거나 비정규직으로 조정된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된 경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이런 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따라서 노동시장은 정규직의 중심부 노동시장과 비정규직의 주변부 노동시장으로 갈라지게 된다. 문제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번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하면 평생을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여유는 사라진다. 그럼에도 정치세력은 20세기 초에 형성된 자본 노동의 양자에 기반을 두기에 새로운 노동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중심부 노동자에 대한 주변부 노동자들의 반발은 각국의 정치를 더욱 양극화시키고 격화시킨다. 세계적으로 극우적 정치세력이 다시 등장하는 배경이다. 중심부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의 격차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더욱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각국의 진보세력은 국제적 환경으로부터 가하는 신자유주의적 압력에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전형적인 대응은 좌파적 대응이었다. 각국의 좌파들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세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려는 자본 측의 공세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구호는 넘쳐났다. 많은 나라에서 반신자유주의 구호를 주장했지만 세계적 수준의 반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부할 수 있었던 국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화에 따른 자본이동의 기회를 포착하려는 지역 국가들의 자본을 향한 구애만 더욱 뜨거워졌다. 반세계화의 흐름은 오히려 세계 패권의 중심부인 미국 영국에서 생겨났다.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와 금융자본보다 산업자본 친화적인 트럼프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역 국가 진보세력들의 열띤 반세계화와 반신자유주의는 그 주장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수준에서만 해결 가능한 사안을 일국 차원에서 주장하는 전술적 미스였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누구도 세계적 차원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거부할 수 없다.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세계적 패권국가만이 가능했다. 결국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의 구호는 대중들의 삶과 복지를 증진시키기보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슬로건으로 일선의 운동가를 소진시키는 기능만 했을 따름이다.

다르지만 더욱 유능한 대응방식도 있다. 이 방식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대세를 무리하게 거스르기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부여하는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는 방식이다. 아일랜드와 네덜란드가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유럽의 빈국이었던 '아일랜드 병', 또는 '네덜란드 병'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낸 경제가 거의 망가졌었던 네덜란드 이 두 나라는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통해서 번영하는 국가로 올라선 것이 아니다. 모든 전환적 흐름은 기회와 위기의 양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두 국가는 위기를 최소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을 사회합의주의라고 부른다. 대기업 자본만을 위하지도, 구(舊) 좌파적 관점에서 정규직 노동자만을 위하지도 않는 적절한 타협의 정치가 이 둘의 공통분모였다. 세계화, 신자유주의는 받아들이되 이로 인해 발생되는 약자들의 어려움에 대해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약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의 유연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노동의 유연성은 해고를 마음대로 시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루 8시간을 기본으로 하는 정규직 이외의 다양한 방식의 노동자들이 시간제 노동자(파트 타이머)로 대규모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의 하나가 여성의 경제참가율을 높이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한국이나 유럽이나 마찬가지로 힘들다. 정규직이 아니어도 비록 파트타이머여도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는 경제의 활력소가 된다.

유럽 최빈국과 유럽의 병자에서 일어선 두 나라의 공통적인 제도가 사회합의주의였다. 아일랜드의 PNR(program for national recovery 국가경제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은 자본의 양보와 노동의 양보가 서로를 이끈 것이었다. 국가 수준의 사회적 대타협은 다시 갈등비용을 최소화하고 줄어든 갈등비용은 취약계층을 위해 투입된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병자였던 두 나라를 번영하게 만든 시스템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디 사회 합의주의의 깃발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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