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여성 최초' 정부직 발표…'성평등 정부' 기대감

非고시 여성 출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성 평등 정부를 목표로 한 문재인 정부가 내각 핵심직인 외교부 장관에 강경화 현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를 내정했다. 그간 민주 정부는 여성 장관에 이전 정부보다 문호를 더 열었으나, 문재인 정부의 여성 임명 면면을 보면 이전 정부와 무게감이 다르다.

그간 여성 장관직은 주로 여성·환경·복지 등 정부 내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은 부서에 한정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와 정부 핵심 요직에 속속 여성을 앉히고 있다. 앞으로 발표되지 않은 신임 장관 후보자 중에서도 적잖은 이가 여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비 외무고시 출신 여성,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21일 문 대통령은 강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를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부 국장 이후 2006년부터 유엔에서 활동하며 국제 외교 무대에서 쌓은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 시기의 민감한 외교현안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이어 "강 후보자는 비(非) 외무고시 출신의 외교부 첫 여성국장으로, 한국 여성 중 유엔 최고위직에 임명되는 등 외교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 최고, 여성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 외교 전문가"라며 "내각 구성에서 성 평등이란 관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등과 더불어 정부 내에서도 요직 중 요직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이후 지속된 열강과의 외교 갈등이 최악에 다다른 상황이라, 문재인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의 책임은 그야말로 막중하다.

이 자리에 문 대통령은 외무고시를 치르지 않은 여성이라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를 앉힌 셈이다. 강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한국 최초의 여성 외교부 장관이 된다.

강 후보자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매사추세츠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유학 전에는 KBS 영어방송에서 PD 겸 아나운서로 활동한 바 있다.

강 후보자는 국회의장 국제비서관, 세종대 조교수를 지낸 후 1999년 외교통상부 장관보좌관으로 특채돼 외교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외무고시를 치르지 않고 외교 무대에 뛰어든 계기다.

2005년 외교부 사상 두 번째 여성국장에 오른 강 후보자는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재직 당시인 2006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이 되어 유엔으로 일터를 옮겼다. 이후 강 후보자는 반기문 총장과 구테흐스 총장이라는 정반대 스타일의 유엔 리더를 가장 가까이서 모셨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文 정부 여성 인사, 다를까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 각료를 대거 임명해, 장기적으로 성 평등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초대 내각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각료 30%를 여성으로 기용하고, 단계적으로 임기 내 남녀 동수 내각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 17개 부처를 기준으로 여성 비율 30%를 실현하려면 5~6명이 임명되어야 한다.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의 여성 임명이 이전 정부와 가장 다른 점은 여성 각료의 무게감이다. 이전 정부도 여성 인사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 여성 각료는 이른바 '여성적' 자리에 한정됐다.

여성 각료 임명에 가장 먼저 앞장선 정부는 김대중 정부다. 여성부를 신설해 한명숙 전 총리를 초대 장관에 앉혔다. 전 배우이자 방송인이었던 손숙 씨를 환경부 장관에 기용했고, 한 달 후에는 김명자 교수를 환경부 장관에 임명해 김대중 정부 최장수 장관 기록을 남겼다.

김대중 정부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한 발 더 나갔다. 핵심 요직인 법무부 장관에 강금실 전 판사를 앉혀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 기록을 남겼다. 국무총리에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을 기용해 역시 한국 최초 여성 총리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 최초의 기록을 제외하면, 민주 정부에서도 여성의 자리는 주로 환경부와 여성부에 한정됐다.

문재인 정부의 여성 기용은 현재까지만 보면 이전 정부보다 더 적극적이다. 유독 여성에게 두꺼운 유리천장이 존재했던 군 분야에서 피우진 전 중령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한 게 대표적 사례다. 청와대 핵심 보직인 인사수석비서관에 최초의 여성 비서관인 조현옥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를 임명했다.

앞으로도 여성의 자리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여성이 전담했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는 이번에도 여성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하마평에 오르는 이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여성 관련 공약을 만드는 데 앞장선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같은 당 김현미 의원, 진선미 의원 등이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도 여성이 거론된다. 문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5선의 이미경 전 의원이 물망에 오른다. 고용노동부에도 최초의 여성 장관이 임명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박영선 의원은 강금실 전 장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법무부 장관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언론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상대적으로 '여성 친화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보건복지부와 환경부에도 여성 장관 후보자가 오를 가능성이 점쳐진다. 치과의사 출신의 전현희 의원, 약사 출신의 김상희 의원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다만 여성 장관을 채용한다고 해서 여성 친화 정부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동성애 등 민감한 질문을 에둘러가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단체는 여전히 문 대통령의 성 평등 정부 실현 의지에 관한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걷지 않았다.

정부 각료 인선에서 출발해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가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하는 과제가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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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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