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 떠안으면 찍혀"... 현중 '블랙리스트' 녹취록

하청지회-업체간 전화통화 내용 공개..."국정조사 진행할 것"

"우리가 (조합원) 떠안아뿌면 우리 쪽에 (원청에서) 또 압박이 들어온다니깐. 분명히 압박이 들어옵니다. 이게 뭐 법적으로 (원청) 생산부서에서 언제 그만두라 이런 소리는 안 한다니깐. 뭔가 다른 쪽으로 압박이 들어온다니까."

현대중공업 하청업체A 대표가 하청노조 조합원을 고용하면 원청에서 폐업을 유도하는 식으로 압박하기에 자기네도 하청노조원을 고용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일명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하청업체 대표가 직접 언급한 셈이다. (☞ 바로가기 : 조선계 블랙리스트를 아십니까)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와 국회의원 김종훈 의원은 8일 울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수집한 블랙리스트 관련 증거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증거는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이 지난 3개월 동안 하청업체 대표들과 나눈 전화통화 녹취록 내용이다.

"현대중공업, 전산으로 블랙리스트 관리"

이 녹취록을 보면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을 넘어,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 이를 전산화해 관리하고 있음 알 수 있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하청업체C 대표 ㄴ씨는 하창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과의 전화통화에서 하청노조 조합원 2명 관련 "일단 저쪽(원청)에다 이야기는 일단 해놓았는데, 한 사람은 (블랙리스트에 걸려 전산) 입력이 안 됐다"며 "다른 한 사람은 (전산) 입력이 되기는 됐는데, 나중에 (원청에서) 전화가 와서는 꼭 써야 되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하청업체D 폐업으로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하청노조 조합원 2명을 채용하기 위해 고용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명은 원청 블랙리스트 전산에 걸려 고용 자체가 불가능했고, 다른 한 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지는 않아 전산입력은 가능했으나, 곧바로 원청 관리자가 연락해 채용하지 말라고 압박했다는 것.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라 하더라도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원청 전산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ㄴ씨는 "이에 원청 관리자에게 (원청) 전산에 걸리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하청노조에 가입돼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더라"라고 말했다. 블랙리스트가 하청노조를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음을 시사한 셈이다.

ⓒ현대중공업노조


하청업체, 원청 압박으로 노조원 채용 못한다?

하청업체A 대표 ㄱ씨는 하청업체B 폐업으로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하청노조 조합원 1명을 고용할 의사를 밝혔다가, 원청의 압박으로 “채용할 수 없다”고 입장을 번복하기도 한다.

녹취록에서 ㄱ씨는 하 지회장의 노조원 고용승계 요구에 "내 마음속 같으면 솔직히 뭐 다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라면서도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완전히 독박 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ㄱ씨는 "내 개인생각과 회사(원청) 운영은 (다르다) 또 여기 큰 회사(원청) 아닌가"라며 "보는 눈도 있고 그래서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가 나중에 찍힐 수도 있다"고 고용승계에 부담을 나타냈다.

결국, 이 통화가 있은 하루 뒤 하청업체A 대표 ㄱ씨는 원청의 압박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조합원은 1명도 고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하청업체A 대표 ㄱ씨는 하청노조 조합원을 고용하면 원청에서 폐업을 유도하며 압박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 사람(하청노조원)을 받으면 난리가 난다. 우리에게 업을 접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자꾸 노조원 늘어나면 (원청에서) 우리에게 업 접으라고 한다. 물론, 그들(원청)이 말로야 접으라는 소리를 하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자꾸 뭔가 압박이 들어온다. 우리가 (노조원을) 떠안으면 분명히 (원청에서) 압박이 들어온다. 법적으로 (우리에게) 언제 그만두라 이런 소리는 안 하지만, 뭔가 다른 쪽으로 압박이 들어온다. 그것은 내가 잘 안다. 그렇게 압박이 들어오고 내가 참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기업(하청) 경영이 악화되면, 결국 업을 접는 사례가 많다. 이는 보통 업체가 그렇다."

"노동적폐 1호 블랙리스트, 국정조사 추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와 국회의원 김종훈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하청노조에 대한 블랙리스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2003년 하청노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운용되고 있는 사례와 증거, 증언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003~4년에 하청노조 조합원이 속한 업체를 위장폐업 시키고, 블랙리스트에 올려 취업을 가로막았던 일은 2010년에서야 대법원으로부터 원청 현대중공업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로 판결이 났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하지만 2016년 하반기부터 구조조정의 혼란을 틈타 하청노조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적폐청산이 사회적 화두인 지금, 노동적폐 1호인 블랙리스트에 대해 철퇴를 내리기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대중공업그룹을 비롯한 조선산업과 대기업 전반의 노동계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대선 이후 각 정당 국회의원들과 공동으로 국정조사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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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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