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 조합원 자격 박탈하다

기아차지부, 조합원 총회 투표에서 '비정규직' 배제안 압도적 찬성

기아차 정규직 노조가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조에서 떼어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는 27일~28일간 조합원 자격을 '기아차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기아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로 바꾸는 규약 변경 관련, 조합원 찬반투표(총회)를 실시했다. 그 결과, 총 3만1078명의 조합원 중 2만6711명(85.9%)이 참여해 1만9150명(71.7%)이 찬성표를 던져 하청 노동자 분리 규약 변경 안건은 통과됐다. 규약 변경은 재적 조합원의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해 3분의 2 이상(66.7%)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이로써 기아차지부 가입자격은 원청인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있다. 기아차 소속이 아닌 사내하청노동자는 지부에 가입을 할 수 없을 뿐더러 기존 기아차지부 사내하청분회 조합원 자격을 지닌 하청노동자들도 자격을 잃게 됐다.

한마디로 기아차 노조로 통합돼 있던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각각 다른 노조로 분리됐다는 이야기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 "각자 역할 충실히 하는 별도노조가 낫다"

이번 결과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된다.

실제 기아차지부는 25일 발행한 소식지 '함성소식'에서 "사내하청 분리 총회는 복잡한 사안도 혼란한 내용도 아니다"라며 "원청과 사내하청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정규직과 사내하청 조합원 간 상처만 생기는 반복의 과정을 이제는 조합원의 의견을 물어 선택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아차지부가 투표를 강행하면 사내하청분회가 분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아차지부의 정규직 조합원은 2만8000여 명이지만 사내하청 조합원은 28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지부는 사내하청분회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대화로써 갈등의 치유와 발전방향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으로, 이제 서로 간에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별도노조가 낫다는 판단에 따라 총회(투표)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분리투표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기아차지부 전직 지부장들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기아차지부의 하청노조 분리 총회를 비판했다. 이들은 "분리 총회의 결말은 노동자에게는 분열이요,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상처로만 남게 된다"며 "그로인해 발생된 모든 수혜는 사측(현대차 자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기아차지부의 보호막이 없는 (연대 정신이 사라진) 정규직을 마음대로 탄압하고자 할 것이고, 비정규직을 갈라 친 정규직 노조는 세상의 조롱거리로 남아 당장은 2017년 임투 마저도 자본의 입맛대로 결정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사과드립니다'라는 성명서를 내고 비정규직 분리 결정에 대한 유감을 밝혔다. 이들은 "이번 결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드리게 돼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대표노조로써 책임감을 가지고 머리 숙여 깊이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불법파견 정규직화 관련 노사합의에 대한 이견과 갈등에서 비롯된 결과이지만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정규직화를 실현하는 과제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노조 운동의 자정 능력을 높이고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통한 노조운동의 '혁신' 노력을 배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투쟁 두고 서로 다른 입장 나타내

2005년 금속노조 경기지부 지회로 설립된 기아차 사내하청노조는 금속노조의 '1사1노조',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하는 규약에 따라 2008년 기아차지부에 가입했다. 완성차 노조 중 1사1노조인 곳은 기아차지부가 유일하다.

하지만 비정규직 투쟁을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서로 입장이 달랐다. 법원에서 기아차 사내하청 전체 공정이 불법 파견임을 인정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시작됐다. 2016년 11월, 기아차지부는 4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일단 1049명만 특별채용하기로 사측과 합의하자 사내하청분회는 이에 반발하며 싸울 것을 요구해왔다.

법원 판결보다 훨씬 뒤처지는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사내하청분회는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독자 파업을 벌였다. 그러자 정규직 조합원들은 사전에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고 파업을 강행했다며 하청노조를 비판했다.

이후 지난 6일 지부 대의원대회에서 '1사 1노조' 규약의 유지 여부를 조합원 총투표로 묻는 안건이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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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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