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 공판 "박근혜, 정유라를 친딸처럼 아껴"

이재용 삼성 부회장 뇌물 사건 첫 재판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를 친딸처럼 아낀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이렇게 말하면서, 삼성 측에 300억 원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박 전 전무는 국가대표 승마팀 감독 출신으로, 최순실 씨의 측근이다. 그는 최 씨와 삼성 사이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최순실 씨가 박근혜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 씨 눈 밖에 난 문화체육관광부 관료들이 좌천된 일을 예로 들었다.


아울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 부회장을 질책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30분 동안 만났는데, 15분을 '승마 이야기'에 할애했다고도 했다.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의 지원이 급류를 탄 계기다.

최순실 측근 박원오, 삼성 사장 만나서 최순실 영향력 과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7일 법정에서 공개한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의 진술조서에 담긴 내용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경영진 5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등에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기 위해 최 씨 측에 총 433억 원의 뇌물을 건네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를 받는다.

박상진 전 사장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2015년 7월 독일에서 박원오 전 전무를 만났다. 당시 박상진 전 사장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이었으며, 아시아승마협회 회장 출마를 준비 중이었다.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는, 2015년 3월 한화에서 삼성으로 교체됐었다.

당시 박원오 전 전무는 박 전 사장에게 "경북 상주 승마대회에서 정유라가 준우승하자 판정 시비가 일었을 때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에 나섰는데, 당시 정 씨 상대편을 든 문체부 국장·과장을 좌천시킨 게 최순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박 전 사장은 승마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었던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를 독일로 불렀다. 정유라 씨를 지원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최순실 씨의 측근인 박 전 전무는 황 전 전무에게도 이메일을 보냈다. 그 내용도 이날 공개됐다. 승마 종목당 3명씩 총 235억 원을 후원해달라는 내용이다.

박 전 사장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박 전 전무는 당초 종목당 4명씩 총 300억 원을 요구했었으나, 이후 협의를 거쳐 235억 원 후원으로 요구 수준을 낮췄다.

이재용 "'대통령 눈빛이 레이저빔 같다'는 기사, 무슨 말인지 알겠다"

정유라 씨를 삼성이 본격적으로 지원한 계기는 2015년 7월 25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차 독대라는 게 박 전 사장의 진술이다. 이날 오후,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책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회사 밖에 있던 박 전 사장이 최 전 부회장의 방에 들어서자, 이 부회장이 있었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 눈빛이 레이저빔 같다'는 언론 기사가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다"라며 이날 독대 분위기를 전했다.


박 전 사장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이 부회장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삼성이 정유라에게 승마 지원을 하기로 약속해 놓고 제대로 이행을 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승마는 말이 중요하다. 좋은 말을 타야 한다. 그런데 삼성(지원이) 한화그룹만도 못하다. 삼성에서 승마협회에 파견한 인사들은 지방색이 있고 사업도 제대로 못 한다"며 질책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대화 시간 30분 가운데 15분이 이런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이 "대통령이 화내면 회사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앞으로 잘해 달라"고 지시했다는 게, 박 전 사장의 진술 내용이다.

박근혜가 삼성 사장에게 악수 청한 까닭

박 전 사장은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순방에 박 전 사장이 동행했다. 당시 한 포럼에서 박 전 대통령이 박 전 사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이에 대해 박 전 사장은 '(삼성이) 정유라 씨의 승마 훈련을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직감했다. 박 전 사장은 "이후 최순실 씨를 만났을 때 최 씨가 '악수는 잘 하셨냐'고 묻기에, 그런 생각이 확실해졌다"라고도 진술했다.

이날 공개된 진술조서는 특검이 출범하기 전 박 전 사장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진술한 것이다. 박 전 사장은 이 부회장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이다. 정유라 씨의 승마훈련 지원 실무를 총괄한 것도 박 전 사장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당시 박 전 사장에 대해서도 영장을 청구했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부회장과 달리 박 전 사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따라서 박 전 사장은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등과 함께 불구속 상태에서 이날 재판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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