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연대 띄우려다 '비문사몽(似夢)'?

"안철수는 오히려 김종인 사라지기 기다릴 것"

5.9 대선을 앞두고 각 당 대선 후보의 윤곽이 어렴풋이나마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비문(非문재인) 연대'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관련 기사 : '킹' 노리는 김종인, 순교 혹은 불씨)

여기에 더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비문 연대'의 성패를 사실상 좌우할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대표 측이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28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서 한 '3단계 연대론' 발언, 29일 안철수 전 대표가 경북 안동에서 "많은 분들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한 발언 등이 불씨가 됐다.

그러나 '비문 연대'의 성패 전망과는 별개로, 적어도 현 시점에서 국민의당이나 안 전 대표 측이 '연대론'에 대해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식의 전망은 관찰자의 희망이 많이 섞인 것일 확률이 높다.

29일자 <조선일보>는 전날 박지원 대표의 '3단계 연정론' 발언을 "1단계는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것이고, 2단계는 후보들이 자신의 대선 가도에 무엇이 필요한지 살핀 뒤 연합이나 연대, 연정의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박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서 실제로 한 말에는 두 단어가 더 있었다. "국민들이", "자동적으로". 박 대표가 실제로 한 말은 이랬다. "2단계로 각 당에서 선출된 후보들이 자신의 대선 가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당과 협의하고, '국민들이 자동적으로' 그러한 연합이나 연대, 연정의 길을 만들어주실 것이다."

후보 단일화 등의 연대를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하겠다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국민들이 자동적으로' 해줄 것이라는 취지로 읽혔다. 이는 안철수 전 대표가 말하는 "국민에 의한 연대"와 상통하는 말이다. 박 대표 측 관계자는 "박 대표가 얘기하는 연대는 우리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한다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만들어주면 한다는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후보가 (당선 가능성 면에서) 변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대1 구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박지원 "반문재인 연대 안 한다")

안 전 대표가 29일 안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눈 대화도, 일각의 해석처럼 '연대론에 문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하기는 다소 무리해 보인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이 '국민의당 의원들이 김종인 전 대표를 만났는데 어떻게 보시나'라고 묻자 "정당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을 가질 수 있다"며 "지금 경선에서 당원과 국민들이 정해주신 후보가 확정이 되면, 거기에 따라서 우리 국민의당 중심으로 집권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힘을 합치실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분들이 힘을 합칠 것"이라는 부분 때문에 연대론과 관련해 일정한 태도 변화를 보인 게 아니냐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전 발언의 맥락 등을 고려할 때 안 전 대표 말의 방점은 "후보가 확정이 되면(그 후)", "국민의당(후보) 중심으로 집권"에 있는 것으로 보는 편이 더 무리가 없다.

실제로 김 전 대표가 그리는 '큰 그림'은 안 전 대표가 그리는 그림과는 같은 화폭에 담기기 어렵다. 김 전 대표는 안 전 대표까지 포함한 '비패권 세력'이 미리 '공동 정부' 구성에 합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 의석 180석 연대'를 만들어 단일 대오로 문재인 후보와 맞붙는 식의 구상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날자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공동 정부 구성을 위한 준비 단계가 단일화 작업"이라고 말한 것, <조선> 인터뷰에서 "의석 180석을 규합할 수 있는 대선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 방증이다.

반면 안 전 대표는 "이번 대선은 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라는 말을 석 달째 되풀이하고 있다. 안 전 대표 쪽의 시각에서 보면,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반문' 표심이 자신에게 결집할 판인데 굳이 먼저 나서서 '정치 공학적 연대'라는 비판까지 들어 가며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때문에 안 전 대표가 스스로 말한 "국민에 의한 연대"를 고려할 시점은 오히려 '김종인의 시간'이 지난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전 대표가 추진하는 '비문 연대'의 성패는 내달 15일 대선 본선 후보 등록 시점 전에 판가름날 것으로 본다. 역으로 보자면, 그 때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지 못할 경우 김 전 대표가 대선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한 정치 전문가는 "안 전 대표 입장에서 보자면, 김종인 전 대표가 추진하는 '연대' 논의에는 참여하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며 "안 전 대표가 지금 홍준표·유승민·김종인 등과 얽혀서 얻을 것이 없다. 자기 지지율을 더 끌어올리고 (문 전 대표와) 양자 구도로 만들어야 그 다음에 연대든 단일화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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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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