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차기 대선 일자가 5월 9일로 정해지면서 대선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대세론'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선두 주자는 물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다. 문 전 대표가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지지자들의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세 고비를 넘어야 한다.
첫 고비는 물론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다. 추격 의지를 활활 태우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와의 일전이기도 하다. 둘째 고비는, 그가 민주당 경선을 통과한다면 맞닥뜨리게 될 정치권의 '반문' 정서다. 이 추상적 '정서'를 현실적인 세력 연합으로 바꾸려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종인 전 대표다.
셋째, 만약 세력으로서의 '반문 연대'가 불발된다면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형식적 또는 내용적인 일종의 '반문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올해 초부터 "이번 대선은 저 안철수와 문재인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자강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실상의 1:1 구도가 되면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토'가 자신으로 결집할 것이라는 기대에 다름아니다.
김종인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 그룹은 현재 '반문'의 1단계와 2단계에 나눠 포진하고 있다. 변재일·박영선·박용진 의원 등 김 전 대표가 당을 이끌 때 가까웠던 이들은 현재 안희정 지사를 돕고 있다. 김 전 대표 본인은 당을 나가 '2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진영·이언주·최명길 의원 등이 추가 탈당해 김 전 대표를 도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김 전 대표는 문 전 대표가 민주당 후보가 된다는 전제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 안 지사가 후보가 된다면 굳이 뭘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안 지사도 대연정을 한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종인의 '빅 픽처'는?
김 전 대표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일종의 보-혁 간 세력 연합이다. 이들을 하나로 엮을 고리가 개헌이다. 민주당 내의 개헌 그룹은 인적 구성으로 보면 '비문' 그룹과 거의 대부분 겹친다. 국민의당 내에서도 안철수 전 대표의 측근 그룹을 제외한 호남 출신 의원들은 개헌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은 개헌이 아예 당론이다. 한국·국민·바른 3당 원내대표는 15일 오전 '차기 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일정에 합의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의 구상은 이들을 하나로 엮는 것이다. 김 전 대표의 최근 행보는 숨가쁠 지경이다.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대위원장, 국민의당 손학규 전 대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를 잇달아 만났다. 오는 16일에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만난다. 남 지사도 이 자리에 동석한다.
다만 안철수·손학규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도 초청을 받았으나, 이들은 불참하기로 했다. 또 김 전 대표는 민주당 경선 중인 안희정 지사에게도 회동을 제안했지만, 안 지사 측은 "후보가 직접 김 전 대표 전화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한다. 누구를 통해 그런 제안을 했는지는 확인 중"이라고 초청된 사실 자체가 주목받기를 원치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김 전 대표가 구상하는 '연대'의 동력은 단지 문 전 대표에 대한 사감(私感)만은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여소야대가 만들어졌는데도 변변한 개혁 입법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구 여권 세력 일부를 포함한 대연정이 필요한 증거라는 게 김 전 대표를 포함한 야권 '비문' 그룹의 공통 인식이다.
이 '연대'를 만드는 데 있어, 누가 그 구심점이 될 '후보'가 되느냐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이들은 본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김 전 대표가 '킹'을 하려고 한다고들 하는데, 그 '킹'은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비패권 연대에 동의한다면 안철수가 후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연대의 명분이 될 '고리'가 개헌이라면,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연대에 참여하는 이들이 얻게 될 이득은 새 정부의 권력 분점이다. 대선 이전부터 총리, 장관 등 요직을 사전에 배분해 "권력을 다 나눠준 '킹'"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권이나 언론으로부터 때로는 '반문 연대', 때로는 '비패권 연대' 또는 '개헌 연대' 등으로 불리는 정치 세력 연대의 밑그림인 셈이다.
'큰 그림'에 빠진 퍼즐 두 조각 ①
이름이야 뭐라고 부르든, 이 연대가 현실적인 정치 세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안철수 전 대표 등 일정 수준 이상의 대중적 표 동원력을 가진 대선 주자들의 동참 여부다. 아무리 정치 세력 간의 합의가 잘 이뤄진다고 해도, 어차피 대선은 직선제이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마지막 변수는 안철수"라며 "안철수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결국 자신과 문재인의 1:1 대결이 돼서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연대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실제로도 안 전 대표는 제3지대 연대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종인 전 대표의 16일 회동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아는데, 제3지대 연대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고 다른 언급 없이 "이미 제가 일정들이 굉장히 많다"고만 답했다.
안 전 대표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연대' 자체에는 우호적인 다른 주자들도 제3지대 후보들의 통합 경선, 이른바 '원샷 경선'에는 반대 뜻을 밝히고 있다. 다른 일정을 이유로 16일 회동에 불참한다고 밝힌 유승민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각자의 당 내에서 경선을 지금 치러야 될 상황"이라며 "각 당에서 후보를 뽑지 않고 각 당에 있는 모든 후보들이 원샷을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유 의원은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이나 경선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연대나 후보 단일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여지를 뒀다. 그는 지난달 28일에는 "김 전 대표가 결단을 내려 '제3지대 연대' 등을 제안하면 저나 바른정당이나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하기도 했다.
손학규 전 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일은 제가 일정이 있다"며 김 전 대표와의 회동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손 전 대표 측도 김 전 대표 등 제3지대 인사들과의 회동보다는 국민의당 경선에 집중하는 게 먼저라는 분위기다. 손 전 대표 역시 다만 "대선이 끝나면 어차피 여소야대가 돼서 연립정부 내지 공동 개혁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그것을 위해 대선 전에 각 당이 준비하고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고, 앞으로 적극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연대 가능성은 열어뒀다.
결국 김 전 대표가 제안한 16일 회동에 참석하는 이들 가운데, 대선 주자는 남경필 경기지사와 정운찬 전 총리 등이다. 그러나 남 지사는 오히려 제3지대 연대 자체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남 지사 측 관계자는 "저희는 기본적으로 각 정당이 후보를 배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연정이란 것도 대화가 가능한 쪽과 힘을 합치겠다는 것이지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앞서 남 지사가 안희정·심상정 등을 언급한 것은 이 분들이 각각 본선에 올라와 치열하게 싸우고 이긴 쪽에서 진 쪽과 함께 힘을 합쳐 정부를 꾸리는 연정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3지대, 반문연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학규·유승민·남경필 등의 주자들이 모두 '원샷 경선'에 부정적인 것은, 김 전 대표가 자신들을 제치고 스스로 제3지대를 대표하는 대선 후보가 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국민의당·바른정당 후보로 선출이 된 이후 시점에서의 단일화는 더욱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내 경선을 거쳐 선출된 후보가 타 정당 후보와 단일화하고 사퇴한다면, 경쟁했던 후보 측 등 소속 당 내에서 큰 분란이 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큰 그림'에 빠진 퍼즐 두 조각 ②
대선에서 후보로 내세울 '인물' 외에 남은 문제는, 자유한국당을 이 '연대'에 포함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다. 김 전 대표가 구상하는 '연대'에는 국회의원 180~200명, 최소한 150명 이상의 동참이 필수 조건이다. 김 전 대표 본인도 지난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선진화법 등을 고려할 때, 180석 이상의 의원들을 규합할 수 있는 협치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다음 정권은 성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김종인 "180석 연합" 구상, 대선 이후 포석?)
때문에 이런 의석 규모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당 내 일부 의원들의 동참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지만, 직선제인 대선에서 이들과 손을 잡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득표 전략 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인명진 비대위원장과의 2차례 회동에서 '한국당이 이번 대선에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이 독자 후보를 내지 말고 제3지대 연대에 동참하라는 취지로 해석돼 주목을 끌었다. 이에 대해 인 위원장은 처음에는 '어차피 후보로 내세울 이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으나, 지난 11일 회동에서는 '나오겠다는 사람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고 후보를 내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은 인 위원장 등 한국당 지도부가 경선 룰을 확정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이들이 정한 룰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예비경선을 거치지 않고 본경선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내용이었다.
김 전 대표는 언론에 알려진 이 11일 회동 이후, 한국당에는 문을 닫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구(舊) 여권과 손잡아서 될 일이 있느냐.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한국당 출신 중에 올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내가 그 사람들 초청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15일 황 대행이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한국당 정치인 일부가 친박 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제3지대 행을 택할 가능성이 다시 열리게 됐다. 김 전 대표 본인이 직접 나서든 안철수·손학규·유승민·남경필·정운찬 등의 주자들 가운데 한 명을 내세우든 '대선 주자' 부분은 그가 구상하는 '연대'가 대선 국면에서 현실적으로 기능을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반면, 한국당 일부 세력과 손을 잡는 문제는 의석 수 측면에서는 필요하지만 대선 전략 측면에서 걸음을 엉키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기껏 '연대'를 성립시켜 비문 단일 후보를 내봐야, 문 전 대표 쪽의 '정권교체' 주장의 정당성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전 대표의 구상은 꼭 대선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대선 이후까지를 노린 다목적 포석이 될 수도 있다. 김 전 대표가 방향타를 잡고 180명 이상의 의원이 동참하는 '연대'가 만들어진다면, 설사 문 전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한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국 주도력을 발휘하기는 힘들게 된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치권에서, 대선 승리의 기세를 등에 업은 차기 여권의 공세를 이들의 느슨한 연대가 버텨낼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