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이 노무현 측근들을 고발한 이유는?

[전진한의 알권리] 국가기록관리기구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다

2008년 7월 24일 국가기록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10명을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행정자치부 산하 1급 조직에 불과한 기관이 조직의 이름으로, 전직 대통령을 고발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국가기록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조직과 예산 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퇴임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사랑했던 조직으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 사태가 터질 때마다 정치적 갈등에 한 중심에 서게 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측근을 고발했던 것이 자신들의 신념이었다면, 연설문 등 각종 대통령기록을 유출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고발을 해야 했다.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 '국가기록'이라는 객관적 사초를 관리하는 곳이지만, 어느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적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전문가들에게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된 후 대통령기록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이관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사실상 기록관리 기관으로 신뢰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지난 2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홍익표 의원 주최로 '국가 기록관리기구 독립성 확보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국회 등 기록관리전문가 80명 모여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었다. 필자도 이 토론회에 사회자로 참가했다.

▲ 2007년 9월 21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을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김만복 국정원장, 문재인 비서실장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토론회에서는 주목할 만한 주장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 조영삼 과장은 "현재 국가기록원은 독립성과 전문성이 구현된 중앙기록관리기관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과장은 "혁신의 대상(국가기록원)이 되는 기관이 혁신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기록관리와 정보공개정책을 수립하는 독립행정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회의 이름은 '투명과 책임위원회'로 제안했다. 투명성과 설명책임성 구현이 현 시대의 가장 시급한 민주주의적 가치와 기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최순실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정보의 사적 이용을 감시하고 기록 및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평하게 유통할 수 있도록 가칭)국가기록정보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조영삼 과장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발제자로 나선 최재희 교수(이화여대 기록관리교육원)도 국가기록원은 정규직의 53%가 대전 본원에 근무하며 직원들도 승진 등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법과 제도를 담당하는 정책기획과 근무를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실제적인 아카이브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 기록관 등은 기피부서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기기록원에서 일하는 다수의 기록전문가는 기록물을 다루지 않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최재희 교수는 국가기록원은 국제협력기관은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도 국내협력기관인 박물관, 도서관, 한국유네스코, 유관학회·협회 등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가기록원은 관련 기관들에 대해 협력이 아닌지도, 감독, 간섭, 감시, 배제로 일관했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국가기록원을 협치 형태(행정위원회 신설, 국가기록관리위원회 확대)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문원 교수(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국가기록원은 정부조직의 기록생산과 관리를 통제하고 위임받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메르스, 세월호 참사 등 국민적인 관심과 논란, 의심이 증폭된 사건 등의 기록은 논란이 종식될 때까지 폐기를 금지하는 기록동결명령(Freeze)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미국 및 호주 등에 국가기록관리청에서 시행되고 있다.

경건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를 위해 여러 개념을 소개했다. 특히 정치적 중립성은 정치권의 갈등과 대립의 이해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권의 한시성을 넘는 안정성 및 지속성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의 독립성의 여러 요소 중 조직의 독립(인사, 예산편성) 기능의 독립(외부적 간섭, 이해당사자 독립)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은 행정자치부 소속 기관으로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의 통제(인사 및 사업개입)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가기록원은 새마을운동 기록수집·전시, 한강의 기적 관련 기록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해 정치적 논란을 낳았다.

이제 탄핵이 인용되면 대권이 시작된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대통령기록 생산이 시작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대 대통령은 대통령인수위원회 없이 시작된다. 시작단계에서부터 중요한 사료가 배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대통령기록으로 밝혀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기 정부는 이런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록관리기구의 독립성을 확보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록(Record)'에서 시작되고 '기록(Archive)'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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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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