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을 보여주지 못하는 대선 주자들
헌재의 탄핵 심판이 멀지 않은 것 같이 보이자, 한국 사회는 빠르게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탄핵 인용이 되면 두 달 안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므로, 빠르면 4~5월에 대선을 치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비 후보자들이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이며 지지세를 확산시키려 애쓰고 있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과열 현상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반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자마자 귀국하여 대선 행보를 시작했으나, 국내 실정에 너무 어두운 데다 정치 감각도 떨어져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자 정책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대선 출마를 포기했는데, 온실 속에서만 살아온 관료 출신의 한계라고 할 것이다. 범(凡) 새누리당 쪽에서는 보수에서 유일하게 기댈 언덕으로 믿었을 텐데, 실망이 컸을 것이다.
여당 쪽에 이제 다른 마땅한 대항마가 없으므로, 판은 야당을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야당 유력 예비후보자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하면 50%가 넘으나 여당 쪽은 여러 명을 합쳐봐야 10여%이니, <조선일보>가 그 사설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야당 쪽에서도 문재인 씨의 지지율이 30%를 넘어 많아 봐야 고작 10% 정도인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으므로, 서너 달 내에 선거가 치러진다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래서 지금은 그가 당선될 경우 내각이나 요직에 들어갈 인물들까지도 추측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나는 현재로써는 유력 예비 후보자들인 민주당의 문재인 씨나 이재명 씨, 또는 국민의 당의 안철수 씨가 당선된다고 하여 민생이 별로 나아질 것 같은 근거를 찾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내세우는 정책적 주장들이 핵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말한 것도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현재 한국이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자리의 큰 부족과 지나친 임금 격차의 해소다. 국민들의 고통이 주로 그 문제들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또 두 문제는 서로 얽혀 있다. 따라서 이 두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괜찮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대선주자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감이지만, 이들은 그럴듯한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도 잘 파악한 것 같지 않고 정책의 구체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대개혁이 필요함에도 그 절실함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난 1월 18일에 '일자리 정책구상'을 발표한 문재인 씨의 주장에 대해 주로 언급하겠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일자리 문제에 대해 가장 상세한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미적지근한 일자리 정책
그가 일자리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은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선 점수를 주고 싶다. 일자리가 성장이고 일자리가 복지이며, 지금이 국가비상사태인 상황에서 일자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비상경제 조치 수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는 걸까? 그가 내 세우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 하나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81만 개 만들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50만 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52시간 법정노동시간 준수를 통해 약 20만 개, 노동자들이 연차휴가를 다 쓰게 하여 30만 개, 합계 약 50만 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 합하면 131만 개가 된다.
세 번째로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의 보고(寶庫)라며 전기차,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신재생에너지, 빅데이터, 산업로봇 산업 등 미래산업을 발전시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네 번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공정한 경제생태계를 조성하여 현재 대기업 대비 60%인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80% 수준으로 올림으로써 좋은 일자리를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비정규직 대책인데 먼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는 법으로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정하고, 정부와 지자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점차 정규직화하고, 동일기업 내에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강제하고,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원청기업이 사내하청에 대해 공동고용주의 책임을 지도록 하고, 최저임금을 점차 높여 노동자들에게 빈곤의 벽을 넘어갈 희망의 사다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나,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는 필요하고 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소방관, 경찰, 교사, 복지공무원 숫자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며 예산을 얼마나 투입해야 할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하겠으나 어느 정도는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된 부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무원이나 공기업 정규직의 처우가 지나치게 높고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져 있고 비판을 받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 또다시 100만 공무원의 80%에 해당하는 숫자를 늘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가 불분명하다. 지금 처우 수준으로 뽑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만약 지금 처우 수준으로 그만큼 인원을 늘린다면 기존의 공무원 임금도 상당한 수준으로 깎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임금제도도 연공서열제에서 직무급제도로 바꿔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공무원 수의 대폭확대는 한국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강화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가 예산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주 52시간 노동시간을 준수하고 연차휴가를 다 쓰게 해서 50만 개를 확보한다는 주장은 그럴 수는 있으나, 문제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너무 소극적인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이고, 주 52시간은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한 시간이다. 따라서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려면 52시간이 아니고 40시간이거나 그에 근접한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동시간을 왜 더 줄이지 않나. 또 최대 4~5배까지 차이가 나는 상층 노동자와 하층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왜 줄이려 하지 않나. 그래야 훨씬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고려는 전혀 없다. 그까짓 50만 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 생각이면서 이것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비상경제 조치 수준의 특단의 대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나. 어이없는 태도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야기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다. 4차 산업혁명 산업은 미래 산업이고 우리가 잘할지 잘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산업이다.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경제를 통해 중소기업 임금을 높인다든가 동일노동·동일임금 같은 주장들은 국민들이 지난 선거에서도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은 소리이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있었나. 아니면 문재인 씨와 더불어민주당은 지금까지 그런 방향으로 과연 혼신의 노력을 해 왔는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
안이한 현실의식, 기득권과의 야합
왜 문재인 씨의 일자리 정책이 이렇게 시원치 않을까? 나는 그것은 문재인 씨가 한국 현실에 대한 깊이 있고 철저한 사고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려는 강렬한 의지도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자리 대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여러 가지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그 장벽은 바로 지금까지 한국을 지배해 왔고,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기득권의 장벽들이다.
그 하나는 재벌이다. 이들이 신자유주의하에서 외국 자본과 손잡고 한국을 저임금체제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이들이 생존에도 힘겨운 저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 때문이다. 이들이 정경유착을 통해 한국 사회를 기형적인 방향으로 몰아왔다. 따라서 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재벌의 경제적,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일자리 정책구상'에는 재벌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다른 하나의 장벽은 조직노동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상층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조직노동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지 대부분의 저임노동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특히 민노총은 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진보를 위해 다대한 기여를 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미 그 진보적인 성격을 거의 다 잃었다. 그럼에도 진보를 참칭하며 한국사회의 진정한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
문재인 씨가 공무원이나 상층 노동자의 임금감축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의 반발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상층 노동자들의 과다한 임금을 줄이지 않고 어떻게 하층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릴 수 있나. 조직 노동이 항상 주장하는 대로 대기업에서 뺏어서 하층노 동자들의 임금을 상층 노동자들만큼 올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한국은 현실의 국가가 아니라 천상의 국가일 것이다.
세 번째는 '노사민정(勞使民政)의 대타협'을 통한 윈윈 모델을 말하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전연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나 '정'은 당장 그 타협에 참여할 수 있으나, '노'는 노조 조직화율이 10% 정도인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 지금같이 해온 대로 대표성이 없는 조직 노동이 그 자리를 독점해도 될까? 이 문제는 기득권과 관련된 것은 아니나 또한 반드시 넘어서야 할 장벽이다.
문재인 씨도 이런 일을 전연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 인식이 안이하고 선거에서 표를 얻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이 그의 선언에서 규정하듯 '국가의 근간이 무너지는' '비상사태'라면, 당연히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이런 장벽들을 넘어설 수 있는 담대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씨만 비판했지만, 나는 이 점에서 이재명 씨나 안철수 씨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본다. 지금은 세계 경제가 공황 국면으로 진입하며,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 흐름으로 바뀌는 전환기이다. 서민 대중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식적이고 불철저한 태도로 집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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