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현 靑 수석 "성수대교 붕괴 때 대통령 탄핵 됐냐?"

10차 변론기일, 김규현 靑 수석 성수대교 붕괴와 세월호 참사를 비교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대처가 미흡한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기 급급했다. 심지어 '성수대표 붕괴'와 세월호 참사를 비교하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1일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규현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해경의 잘못된 보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수석은 "세월호 관련, 해경에서의 첫 보고가 오전 9시 24분께 올라왔다"며 "내용은 인천에서 항해 중인 세월호 침몰 등 간략한 내용이었기에 곧바로 해경 상황실에 연락해 어떤 상황인지 확인한 뒤, 관련 내용을 오전 10시께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10시 15분에 대통령이 전원 구출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수석은 그러면서 "사고 당시엔 몰랐지만, 사후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배가 전복되면 구조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며 "세월호가 전복된 오전 10시 30분 이후에는 승선원들을 구조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그때 해경청장이 상황은 이래서 구조가 어렵다고 했어야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그때 (대통령은) 적절한 지시를 했지만 과학적으로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구출하라는 지시를 내린 시점에는 사실상 구조 작업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증언인 셈이다.

김 수석은 세월호 참사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9·11 사태, 프랑스 파리 테러 등은 사전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고 일어난 대형 참사이며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선진국가에서 대형 재난 사건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의 교량 상판이 붕괴된 사고는 세월호 참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경우 배가 완전히 뒤집히기까지 2시간 가량이 걸렸고, 뒤집힌 이후 뱃머리를 남기고 침몰하기까지 1시간이 더 걸렸다. 이후에도 구조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박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미스테리인 상황이다. 단순 비교 자체가 어렵다.

또한 세월호는 '외부의 적'에 의한 테러 사건이 아니다. 9.11테러나 파리 테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김 수석이 '궤변'으로 박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김규현 수석 "나는 재난전문가가 아니다"

책임 회피성 발언도 이어졌다. 김 전 수석은 세월호 침몰 관련, 현장 지휘권이 해경에 있기에 청와대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회 탄핵소추 위원 대리인의 "당시 배 상태를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초기 상황 관련, 해경에서 파악해서 (청와대에) 보고해야 한다"며 "우리가 일일이 지시하면 현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배가 어느 정도 기울어진 건 알았느냐', '구조세력이 도착하면 어떻게 구조할 수 있다는 대략적인 그림은 그렸느냐'는 질문에도 "몰랐다. 그건 해경이 해야 하는 일이다" 등 시종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다.

또한 탄핵소추 위원 대리인이 "상황 파악을 해야 거기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냐"며 "배 상태가 어떤지, 침몰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침몰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은 지시가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김 수석은 "질문 내용은 그런 과학적 지식(배 침몰 속도 등)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이런 것은 나중에 사후조사를 통해 나온 것이다. 당시엔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나는 재난전문가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해경 오보 때문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김 수석은 청와대가 오후 2시 넘어서까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 전까지는 추가로 구조된 승객 190명이 진도 행정선을 타고 팽목항으로 오고 있다고 보고 받았다"며 적극 대응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또한, 세월호 당시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를 보고 대부분은 안심하고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며 "이런 것이 당시 사회가 느꼈던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수석은 "하지만 오후 2시 25분에 해경 상황실에서 190명을 추가로 구출했다(총370명 구출)는 사실이 잘못된 보고라는 공식 보고를 받았다"며 "이후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고 김장수 당시 실장에게 대통령은 엄청나게 질책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김 수석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청와대의 안일한 대응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시 세월호에 승선했다고 청와대에 보고된 인원은 470명이다. 해경은 이들 중 오후 12시54분에 178명을, 이후 오후 1시13분에 추가로 190명의 인원을 구조했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들을 합하면 총 370명이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말하면 약 100명의 승객이 그 시간에도 세월호에서 구출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당시 이들 100명에 대한 구조작업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셈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의문을 나타냈다. 강일원 재판관이 "정호성 등도 세월호 관련, TV에서 전원 구출됐다는 소식을 보고 안심했다고 하는데, 정식 국가보고체계를 통해서도 전원 구조됐다는 보고를 받았는가"라고 묻자 김 수석은 "해경 상황실로 190명이 추가로 구출됐다는 보고를 2시 25분께 받았고 이후 진도항으로 이동 중이라고 보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강 재판관이 "190명이 추가 구조됐지만 배에는 여전히 남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묻자 김 수석은 "100명 정도가 남아 있어서 상황이 심각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관련해서 어떤 구조작업을 했는지, 어떤 지시를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이수 재판관도 "190명이 추가로 구출됐다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배 안에 남은 인원은 100명이나 된다"며 "그렇다면 대통령이 위기관리상황실에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김 수석은 "당시 일반인들이 가졌던 상황인식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졌던 상황 인식과 비슷했다"며 "당시에는 긴박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우리도 보고를 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즉 잘못 보고된 370명의 인원을 제외하고 100명의 인원이 배 안에 존재했음을 인지했음에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김이수 재판관이 "처음에는 몰랐어도 사태를 파악한 후에는 적어도 대통령이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관저에서 직무를 했다고 하지만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자 김 수석은 "재난의 성격은 나중에 알게 됐다"며 "오전 상황에서 그걸 인지한 사람은 없었다"고 시종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자 김 재판관은 "470명이 침몰하는 상황을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자 김 수석은 "지침을 받고 있기에 대통령이 상황실에 오셔서 다르게 지시할 게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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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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