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눈 펑펑 와도... 촛불집회 32만명 운집

[현장] "재벌 총수 구속해야 촛불 승리"

21일 오후 6시, 설 명절을 앞두고 1월의 마지막 촛불 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체감 온도가 영하 5도까지 내려가는 큰 추위가 닥친 가운데 함박눈이 내렸으나 32만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촛불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전 주의 세 배다.

눈이 내리는 날씨 속에 사전 행사가 열린 오후 4시경에는 예전에 비해 참석자가 눈에 띄게 줄었음을 확인 가능했다. 하지만 본 집회 시간에 맞춰 시민이 속속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해가 진 즈음에는 광장이 시민으로 가득 찼다.

"재벌 총수 구속해야 촛불 승리"

이번 집회에서는 지난 한 주간 새로 알려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소식이 주로 거론됐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 소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관한 영장 기각 소식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았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박근혜가 탄핵되어도 재벌 총수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헬조선은 바뀌지 않는다"며 "재벌 공화국 해체해야 진정한 촛불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헬조선을 바꾸고 재벌독식, 승자독식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만들자는 게 촛불의 명령"이라며 "마지막까지 힘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기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퇴진행동 법률팀의 김상은 변호사는 "영장을 발부하는 게 상식이지만, 상식이 이재용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며 "부족한 것은 (법원이 요청한) 구속사유 소명이 아니라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라고 지적했다.
▲함박눈을 뚫고 1월 21일 박근혜 퇴진 및 이재용 구속 등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함박눈을 뚫고 1월 21일 박근혜 퇴진 및 이재용 구속 등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김 변호사는 특검에 이재용 부회장 영장을 재청구하고, 법원은 영장을 발급할 것을 주문했다.

조의연 판사의 이번 조치를 비판하는 변호사와 법학자 20여 명은 '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하는 법률가 시국농성단'을 구성, 지난 20일부터 서초동 중앙지법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재벌의 골목 상권 침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소상공인 비상시국회의 임태현 상임대표는 "자영업자가 무너지는 이유는 재벌이 전국의 시장을 잠식했기 때문"이라며 "누가 권력을 잡더라도, 어떤 복지를 펴더라도 자영업자를 살릴 수 없는 대재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의 정상적인 시스템을 망가뜨린 재벌이야말로 우리가 단죄하고 구조조정해야 할 근본 집단"으로 규정하고 "재벌이야말로 악의 시스템 그 자체"라고 단언했다.

지난해 12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영업 현황분석'을 보면, 전체 자영업자의 21.2%가 월 100만 원도 벌지 못했다. 전체의 51.8%는 월 매출액이 383만 원 미만이었다. 자영업자 점포의 평균 수명은 3.7년이다.

"블랙리스트 사태, 박근혜도 책임져야"

독립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발언대에 올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해 말했다. 시네마달은 <다이빙벨>을 비롯해 <나쁜 나라>, <탐욕의 제국>, <업사이드 다운> 등 세월호 참사와 용산 참사 등을 다룬 사회적 다큐멘터리를 주로 배급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청와대가 이 회사 내사를 지시했음을 추정 가능한 기록이 남아 있다.

김일권 대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배급한 이후 직원 핸드폰까지 사찰당했다"며 "많은 영화인과 문화예술인이 저희와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청와대가 헌법을 위반한 중대 범죄"라며 "김기춘과 조윤선에 이어 박근혜도 범죄 행위를 책임지고 당장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문화계를 탄압한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와 부역자를 즉각 파면하고, 부당한 지시를 듣지 않았다고 좌천된 양심적 공무원은 복직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예술을 "다른 사람의 슬픔을 따라 슬퍼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과 융합하는 감정"으로 정의한 후 "현재 한국에서 예술은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고 광장에 타오르는 촛불"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4시 민중총궐기 투쟁선포대회로 시작한 이날 집회는 7시 40분경 본행사를 마치고 행진을 시작했다.

특히 이날 시민은 재벌 비판을 위해 청운동사무소, 헌법재판소 방향 외에 종각 삼성타워, SK 본사 방향으로도 행진로를 개척했다. 서울경찰청은 193개 중대 1만5500명의 병력을 동원해 집회 및 행진 관리에 들어갔다. 상당수 시민은 삼성타워 앞에서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요구하는 추가 집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감옥 창살을 묘사한 조형물과 이재용 부회장 얼굴 가면을 쓰고 이 부회장 구속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 참여자들은 오후 9시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집회를 마무리했다.

행진에 앞서 다양한 시민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을 각자의 목소리로 규탄했다.

만 18세 청소년의 선거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컸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권혁주(17) 회원은 "청소년은 절대 정신적으로 미숙하지 않다"며 "예순 넘은 사람이 15살 청소년보다 성숙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청소년의 선거권 보장을 요구했다.

여성 인권을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국 여성의전화 활동가인 나눔은 여성 공무원의 사망 소식을 비롯해 열악한 여성 노동, 여성 삶의 현실을 소개하며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고 검찰과 재벌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여러분 일상의 변화도 필요하다"며 "여러분이 일상에서 겪는 먼지 같은 차별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날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 앞서 오후 2시경 여성 인권 보장을 외치는 시민이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행진을 이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을 반대해 미국 워싱턴에서 기획된 '워싱턴 여성행진'에 세계 40여 개 국가가 연대해 만들어진 '세계여성공동행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강남역 행진에는 12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활동가 나눔은 "박근혜의 실패는 여성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유신 정권의 실패"라며 "아직 여성 사회는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13차례 연속 열린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는 오는 28일에는 설 연휴로 인해 열리지 않는다. 오는 2월 4일 14차 촛불집회가 개최된다.

다만 28일 오후 4시 16분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합동 차례가 열린다.

▲함박눈을 뚫고 1월 21일 박근혜 퇴진 및 이재용 구속 등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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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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