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왕'? 반기문은 독재자에 하야를 촉구한 적이 있다

[반기문 팩트체크]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공과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하면서, 그의 유엔 사무총장직 수행에 대한 평가도 주목받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사무총장직을 얼마나 잘, 또는 잘못 수행했을까?

최근 국내에서는 반 전 총장이 '우려 전문' 사무총장이라는 우스개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인터넷 신문 <직썰닷컴>의 지난해 6월 카드뉴스가 촉매가 됐다. 이 매체는 반 전 총장이 난민, 국제분쟁, 전염병 대응, 민주주의 확산, 지구 온난화 등에서 '우려만 했다'며 특히 전임자인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과 대조했다. (☞관련 기사 : [직썰] 반기문, 그는 오늘도 우려한다)

이 카드뉴스 한 대목을 보자.

2002년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 유엔은 9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코피 아난의 선택은?
코피 아난은 즉시 난민 구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엔식량계획(WFP)은 식량 비축, 유엔난민기구(UNHCR)는 피난 대책 수립,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구호물자 수송.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중동의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넜습니다.
반기문의 선택은?
"난민들이 처한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매우 우려한다"(2015년 9월 21일 성명)

마치 성명만 내놓고 식량도 대피계획도 구호물자도 '나 몰라라' 했다는 것처럼 보인다. 반 전 총장이 때로는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사무총장"이라고, 때로는 '투명인간(invisible man)'이라고 외신들로부터 비판받기는 하지만, 막강한 유럽연합(EU)의 코앞에서 발생한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해 '우려' 성명만 내고 아무 것도 안 할 정도로 대책 없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사무총장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엔은 시리아 내전 발생 당시부터 UNHCR을 통해 난민 발생 동향을 점검했고, 2012년에는 요르단 자타리 등지에 난민캠프를 건설했다. 반 전 총장은 페트라 유적을 돌아보자는 요르단 국왕의 제안도 거절하고 자타리 캠프를 방문할 정도로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유엔과 국제 NGO들이 보낸 식량과 구호물자는 시리아 북부 및 인근의 피난민 캠프로 공수됐다. 자타리 캠프는 열악한 환경이기는 했지만 10만 명 규모의 난민을 수용했고, 9제곱킬로미터 넓이 부지에 6개의 학교와 8개의 병원, 2만여 동의 컨테이너 숙소와 천막 숙소가 지어졌다.

'난민' 다음 항목은 '분쟁 중재.' <직썰>은 "50년 넘게 이어진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의 바카시 반도 영토분쟁,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난민으로 전락했다. 코피 아난은 2006년 중재에 나섰고, 며칠 뒤 카메룬-나이지리아는 그린트리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이 56년 만에 맺은 평화협정이었다"며 "(반면) 2015년 6주 동안 이어진 예멘 내전에서 1200명이 죽고 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반 전 총장의 선택은? '악화되는 예멘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2015년 1월 20일 성명)"고 했다.

예멘 내전은 미국들 등에 업은 사우디와 이란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조기 수습에 실패,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것은 맞다. 하지만 유엔의 중재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엔은 예멘 정부군과 반군을 2015년 6월 스위스 제네바 휴전 회담에 마주앉히려 했으나 막판에 무산됐고, 9월에도 오만에서 휴전 테이블을 열었다. 같은해 12월 휴전 회담도 별 성과가 없어 지금도 예멘 내전은 계속되고 있다.

'난민', '분쟁' 다음은 '전염병.'

에이즈·결핵·말라리아로 매년 수백만 명이 죽고 있습니다.
코피 아난의 선택은?

2002년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 기금 15억 달러를 조성했습니다.

2014년 말, 에볼라가 창궐했습니다.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에선 5400명이 사망했고 나이지리아, 말리, 스페인, 미국에서도 감염자가 나왔습니다.
반기문의 선택은?
"새로운 전파 경로가 드러난 말리의 상황을 깊이 우려한다" (2014년 11월 21일 유엔 에볼라 대응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반 전 총장은 2014년 9월, 10억 달러를 목표로 하는 유엔의 에볼라 대응 신탁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했고, 같은해 10월에는 기금 조성이 난관에 부딪히자 회원국들에게 '돈 내라'고 거듭 압박을 가했다. 이에 호주와 베네수엘라, 핀란드, 독일, 중국 등이 수백만 달러를, 영국이 3200만 달러, 스웨덴이 1500만 달러를 추가로 내겠다고 밝혔다.

물론 코피 아난 전 총장 시절 에이즈·말라리아·결핵 퇴치를 위해 조성한 기금과 에볼라 기금의 액수 차이는 상당하다. 에이즈·말라리아·결핵 기금의 모금액은 사실 "15억 달러" 수준이 아니라 현재 '연간' 40억 달러이고, 2002년 창설 때부터 2015년까지 이 기금은 총 200억 달러를 걷었다. 하지만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 사망자 수나, 국제 사회가 대응해 온 역사 등의 면에서 에볼라라는 단일 질병과, 유엔의 오랜 숙제였던 에이즈·결핵·말라리아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특히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건이었던 유엔의 에이즈·말라리아·결핵 퇴치 기금, 일명 '글로벌 펀드' 창설은 단지 유엔 차원에서 추진됐을 뿐 아니라 G-7 정상회의를 통해 합의되고 세계은행과 IMF와도 조율을 거쳤다. 에볼라는 치사율이 무척 높은 위험한 질병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 이외의 곳에서의 감염·발병 사례는 2014년에 처음 나왔다.

'민주주의 확산' 면에서도 동티모르 분리독립 국면에서 활약한 코피 아난보다, 우간다 대선에 '우려'만을 표한 반 전 총장이 미치지 못했다는 게 <직썰>의 평가였다. 그러나 동티모르 사태는 우간다 대선보다는 오히려 남수단 분리독립에 비교할 만한 일이다. 남수단에서는 반 전 총장 재임 기간 중 유엔의 노력으로 평화 협정이 맺어졌다. 남수단은 수단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지 2년 후인 2013년 내전이 발발했고, 유엔은 2015년 8월 체결된 평화 협정을 중재했다.

사실 코피 아난도 부정 선거 의혹이 있었던 2006년 콩고 대선에 대해서는 별 말 없이 넘어갔고, 반 전 총장은 2011년 '아랍의 봄' 사태에서 회원국 국가원수인 이집트·리비아 독재자들에게 하야를 공식 촉구하기도 했다. 같은해 대선 결과에 불복하려던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로랑 그바그보는 반 전 총장이 보낸 유엔군의 손에 체포됐다.

마지막으로 반 전 총장이 '우려'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은 분야는 '지구 온난화'이다. 사실 이는 난센스다. 반 전 총장에 대한 가장 비판적인 외신 기사에서조차, 파리 기후변화 협약은 그의 몇 안 되는, 또는 유일한 성과로 꼽히고 있다. 2015년 11월 30일 파리에서는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렸고, 참가국들은 일명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채택했다. 1년 후인 2016년 11월 4일에는 일명 'G2'라고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다. 지난해 12월 <포린폴리시>는 반 전 총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시리아부터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평화의 측면을 돌아본다면, 그는 그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잘해야 치어리더 정도였고, 그저 강대국들의 결정을 구경하는 구경꾼이었다. 그러나 반기문은 취임 초반부터 끈질기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했고,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이끌었다.

반 전 총장에 대한 비판과 검증은 필요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에 기반을 둬야 한다. 게다가 굳이 무리한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반 전 총장 스스로도 인정했거나 많은 외신에 의해 지적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실패' 사례도 충분히 많다. 예컨대 반 전 총장이 스스로 인정한 '실패'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최근 반 전 총장이 공식 사과까지 한 아이티 콜레라 문제, 역시 그가 스스로 "총체적 실패(collective failure)"라고 언급한 시리아 내전 대응, 그리고 유엔 스스로 '실패'를 공식 문서로 인정한 스리랑카 내전 대응. 심지어 이 가운데는 '우려만 한' 것보다 더 나쁜 사례도 있다.

만약 "전쟁과 평화의 측면"인 '분쟁 조정'과 관련해 반 전 총장을 비판한다면, 예멘 내전보다는 시리아 내전 사태가 더 적절한 사례다. '난민' 측면에서 반 전 총장을 비판한다면, 시리아 난민 구호보다는 스리랑카 사태에서의 실패가 더 뼈아팠을 것이다. '전염병'? '대처'가 문제가 아니라, 반 전 총장이 보낸 유엔군이 오히려 아이티 인구의 8%에게 전염병을 '발생'시킨 놀라운 일도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 반 전 총장을 비판한다면, 다소 논쟁적인 회원국 내의 대선 부정 의혹보다는 차라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를 구금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해 침묵한 사례가 더 적절했을 것이다.

만약 잘못된 사례를 들어, 예컨대 '시리아 난민 구호를 하지 않았으므로 반기문은 난민 대응에 실패했다', '에볼라 사태를 관망만 했으므로 반기문은 전염병 대처에 실패했다'고 비판한다면, 주장의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 결론까지 부정되기 십상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현 유엔 사무총장이 1946년 유엔 결의안을 들어 반기문의 한국 대선 출마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거짓으로 밝혀지는 순간, 자칫 그의 대선 출마가 1946년 결의안 위반이라는 '사실'까지 뒤덮일 우려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에 어긋난 공격은, 오히려 공격받는 측에게 '에볼라 펀드를 조성했으므로 전염병 대응을 잘 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도 아무 언급을 한 바 없으므로 대선에 출마해도 1946년 결의안 위반이 아니다'라고 역공을 가할 소지만 제공한다. 이는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공세와 마찬가지로, 또다른 여론 호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지자이든 옹호자이든, 사실 검증에는 엄밀함을 기해야 함이 마땅하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공과(功過)' 시리즈 후속편으로 이어집니다. 시리즈에서는 스리랑카 내전, 시리아 내전, 아이티 콜레라 사태 등을 차례로 다룹니다. (☞시리즈 목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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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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