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측근들 "반기문은 보수·여권 후보 아니다"

친박·친문 배제한 '빅텐트' 꾀하는 듯…유승민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곧 입국할 예정인 가운데, 반 전 총장 주변 인사들이 앞다투어 반 전 총장은 보수 진영의 대선 후보 또는 여권의 대선 후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장면이 잇따라 연출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그간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는 보수 진영의 '메시아'로 여겨져 왔다. 그 덕택에 국내 정치·사회 문제 등에 대한 눈에 띄는 입장이나 이해, 해법을 제시한 적이 없었음에도 대선 후보 지지율 1~2위 권을 차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보수 진영의 '정권 재창출' 열망을 한 몸에 받아 단숨에 유력 대권 주자가 되고도 '보수가 아니다'라고 하는 모습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망가진 새누리당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선거 및 국정 운용을 할 만한 '세력'이 없어 기존 정치권의 지원이 절실한 반 전 총장이, 그간 새누리당이 입혔고 자신은 방임했던 '친박' 또는 '보수 후보'라는 색을 빠르게 지워내며 정치권 이곳저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잠재적 지원군들을 규합하려는 모습이다.

반기문 대선 캠프에서 정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그분이 대선에 뛰어들어 만약 정권을 잡는다면 그것 또한 정권 교체이고 정치 교체"라며 "일부 친박 의원이 반 전 총장을 새누리당으로 영입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와 거리를 둬온 분"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의 말은 반 전 총장이 친박계와의 연대에 선을 긋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반 전 총장의 캠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를 MB 그룹과 JP(김종필) 그룹이 만나는 'MJP 연합'이라는 비판 논평이 나오기도 했었다. (☞ 관련 기사 : "반기문 캠프 보니 'MB시즌2' 올드보이 집합소")

또 다른 반 전 총장의 측근인 오준 전 유엔 대사는 이날 "어떤 분이 (반 전 총장에 대해) 외교·안보는 보수고 경제·사회는 중도다 이렇게 표현하신 걸 제가 읽은 적이 있는데 그 표현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반 전 총장이 보수 진영의 후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 전 대사는 문화방송(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에서 "UN이 다루고 있는 경제·사회 이슈들은 우리 국내 정치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중도쯤 된다. 왜냐하면 잘 못 사는 사람들, 개발도상국들을 잘살게 해주려는 노력, 그리고 인권을 탄압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향상하려는 노력, 이런 것이 UN활동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국내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본다면 보수는 아닌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뒤집어 보면 국내 보수 세력은 개발 도상국의 일부 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인권 탄압에 반대하며 소수자 인권을 향상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에 반대한다는 말로, 기실 대단히 논쟁적인 주장이다.

반 전 총장의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충청권 의원 중 한 명인 새누리당 성일종 의원은 이날 반 전 총장은 "여권 후보도 야권 후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방송(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윤준호입니다>에 나와 "반 전 총장의 강점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실용의 개념으로 보고 싶다"며 "이분이 진보나 보수의 개념이 아니고 새로운 대한민국 방향을 설정한다면 많은 의원들이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 전 총장은 많은 세계를 다니면서 현안을 접해보신 분"이라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어려운 상황이 놓여있는데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라고 외치는 반 전 총장 측 인사들은 반 전 총장이 신당 창당을 하거나 기존 정당에 합류하기 보다 '빅텐트'를 구성하고 다양한 정치 세력의 규합을 꾀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상일 전 의원은 반 전 총장이 "주요 정파나 지도자들과 생각을 교환하고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어떤 연대를 자연스럽게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특정 정당에 쏙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 그 뜻이 맞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빅 텐트, 큰 연대를 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이어 "국민의당도 반기문 전 총장과 충분히 연대할 수 있다는 말도 하고 있고 바른정당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느냐"면서 "손학규 전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국민주권회의체 같은 곳에서도 반 전 총장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손 전 대표가 직접 말을 했고 민주당 내에 김종인 전 대표도 반 전 총장에 대해 경륜 있는 분이라 평가했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김종인 전 대표가 "특히 반 전 총장이 개헌과 관련해서 어떤 입장을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을 통해서 냈는데 그에 대해서 평가를 하시면서 나도 만나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서 "두루두루 만나 이야기를 하시는 과정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친박계나 더불어민주당 내 친문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 세력과 큰 틀에서 연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 인식 및 정국 구상에 대해 보수 진영의 또 다른 대권 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무원칙한 연대"라고 비판했다.

오는 25일 바른정당에서 대선 경선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인 유 의원은 이날 오전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한 인터뷰에서 "비박과 비문이면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은 무원칙한 연대"라면서 "반 전 총장은 "대선에 출마하겠다면 보수인지 진보인지 비전과 정책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 의원은 "저는 아직도 그분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며 "그분이 안보는 정통 보수의 길을 가되, 경제나 교육 노동 복지 등은 개혁적인 길로 가는 길에 동의한다면 바른정당을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분이 합류한다면 당연히 공정한 경선을 치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이 반 전 총장이 주도할 정치권의 합종연횡의 '매개'가 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도 유 의원은 연대의 "원칙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그는 "역대 정권에서 보면 개헌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그런 것을 주장해온 분들이 다 있었다"며 "그러면 과거에는 개헌을 가지고 왜 정당이 발생 안 했고, 정치결사체가 없었겠나. 개헌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만 연대를 한다, 정치적 빅텐트가 된다, 그건 저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다른 가치·정책 등에 대한 합의점 없이 개헌 하나만 놓고 선거 연대를 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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