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사드·한미훈련 '안보 국면' 조성된다

[정욱식 칼럼] 트럼프-김정은, 위험한 불장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새해 첫 일성(一聲)이 심상치 않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대륙간 탄도 로켓(ICBM)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른 것을 비롯해 국방력 강화를 위한 경이적인 사변들이 다계단으로, 연발적으로 이룩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트위터에 "북한이 미국 일부 지역에 도달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의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인 변수는 '핵탄두 장착 ICBM'을 보유하려는 김정은의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트럼프의 대응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 것인가가 될 것이다. 김정은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자신이 공언해온 "핵 억제력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이 문턱에 가까워지거나 넘어서야 미국과의 담판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트럼프는 북한의 ICBM 보유 시도를 '금지선(red line)'으로 간주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게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군사 개입을 줄이겠다는 트럼프의 안보관은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쌍을 이루고 있다.

또 하나는 트럼프가 북한의 ICBM을 자신의 재선 가도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차기 대선과 미국의 정보기관 및 대다수 전문가가 분석하는 북한의 ICBM 보유 시점은 2020년으로 조우한다.

그런데 '우연한 만남'은 시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 신봉자에 가깝다. 이들에게 '예측불가능성'과 '위험 불사형 자세'는 자신감의 원천이자 상대방을 압박하는 심리 전술이다. 이에 따라 안 그래도 불확실성이 지배해온 한반도 정세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우연한 만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미연합군사훈련과 한국의 조기 대선이 조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개 군사훈련은 2월말이나 3월초에 시작돼 4월 중하순까지 지속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시기에 따라 유동성은 있지만 본격적인 대선전과 군사 훈련이 시기적으로 겹칠 가능성이 높다.

이 국면에선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가 주요 행위자로 등장할 것이다. 이미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를 애걸해온 박근혜 정부는 한미연합훈련 시기에 이들 무기를 전개해 북한을 상대로 강력한 무력시위를 벌여달라고 미국에게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사드 문제와 더불어 안보 문제를 최대한 부각시켜 대선을 치르려고 할 것이다.

'안보 국면'은 보수층의 재결집과 '반기문 띄우기'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촛불 민심과 국회가 이들의 '꼬리로 몸통 흔들기' 시도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견제·통제할 수 있느냐가 주요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시기에 자제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오히려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풍향계'로 여길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커진다. 북한은 과거에도 종종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이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희 외무성 미국 국장은 11월 하순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의 전직 관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파악하기 전에는 양국 관계를 해칠 수 있는 도발 등 섣부른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에 대해 더 파악하기 전에는 입 다물고 잠자코 있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2321호 채택에 대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차분한 대응을 보여 왔다.

그런데 한미군사훈련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북미 간의 접촉을 보도한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최선희는 "만일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개최될 경우 북한의 대응은 '매우 거칠 것(very tough)'이라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역시 신년사에서 "우리의 문전 앞에서 연례적이라는 감투를 쓴 전쟁 연습 소동을 걷어치우지 않는 한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 공격능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위협성 경고를 내놓았다. 이는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빌미로 ICBM 시험발사와 같은 무리수를 둘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북한 정권이 착각해서는 안 될 점들이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요소는 다양하다. 이걸 한미군사훈련 실시 여부로 몰아가면서 강수를 두면 미국의 대북정책 풍향계는 강풍에 휩싸일 것이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 한미군사훈련을 대북정책의 '바로미터'로 삼아 강경 대응을 선택한 것이 지난 8년간 북미관계를 그르친 주요 원인이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곧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도 자제력과 담대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자제력의 핵심은 한미군사훈련을 일시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해 새로운 시작의 토대를 닦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담대함의 핵심은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유세 때 밝힌 것처럼 북미정상회담을 포함해 적극적인 대북 협상 의지를 피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만 북한의 ICBM는 "없을 것"이라는 트럼프 본인의 다짐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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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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