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능력이 부족해서"…자책하는 김정은, 이유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 다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다며 앞으로 "인민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이례적인 '자책' 발언 배경을 두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1일 정오(평양 시각, 한국 시각 12시 30분)에 발표된 신년사에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더욱 분발하고 더욱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자리에 서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면서 이같은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나는 위대한 수령과 위대한 장군을 믿고 전체 인민이 앞날을 낙관하며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노래를 부르는 시대가, 지나간 역사 속의 순간이 아닌 오늘의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헌신 분투할 것"이라며 "우리 인민을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새해 이 아침에 엄숙히 맹약하는 바"라고 공언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그것도 북한 전역에 발표되는 신년사에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최고 지도자가 '신격화'돼 있는 북한에서 지도자 본인의 입으로 능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깎아 내릴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두고 경남대학교 김근식 교수는 "그동안 김정은이 보여준 '애민의 리더십', 즉 간부에게 엄하고 인민에게 관대한 이른바 '엄간관민'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달리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혀 왔다. 주요 계기 때마다 육성 연설을 진행했고 주민들을 직접 찾아 함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신년사 역시 김 위원장의 이러한 통치 방식의 연장선 아니냐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군림하고 지배하는 수령이 아니라 형식적으로라도 인민의 지지와 동의를 구하는 섬김과 업적의 리더십을 강조한 것"이라며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남한의 현 상황이 김 위원장의 발언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말에 불거진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건 이후 한국 국민들은 비폭력 시위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이 사건을 김 위원장 역시 예의주시했고, 나름의 정치적 위기감을 느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이고, 그동안 통치 방식으로 봤을 때 이른바 '국제적 스텐더드(기준)'에 맞추려는 시도를 많이 해왔다"며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자신의 통치 대상인 인민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 역시 김 위원장이 유학 시절에 봐왔던 서구 민주주의의 특징들을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 내부가 안정화되어 이제는 일정 부분 자리가 잡혔다는 자신감과 함께 앞으로 국제적 기준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단초가 보이는 정도"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북정책 지켜볼 것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인 트럼프 정부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미 관계와 관련해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비판과 자신들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 김 위원장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핵 위협과 공갈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우리의 문전 앞에서 연례적이라는 감투를 쓴 전쟁 연습 소동을 걷어치우지 않는 한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 공격능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대륙간 탄도 로켓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른 것을 비롯해 국방력 강화를 위한 경이적인 사변들이 다계단으로, 연발적으로 이룩됐다"고 밝혀 곧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의 발사 시험도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미국과 중국, 북한 모두 현재는 기싸움을 하고 있는 단계"라며 "북한이 ICBM 부분을 이야기한 것도, 자신들은 (군사적인 행동을 할)준비가 다 됐으니 미국에 더 늦기 전에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고 신호를 주는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트럼프 정부에 대해 발언하지 않은 것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기다리겠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북한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은 지난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과 접촉, 트럼프에 대해 파악하기 전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꾸려지기 전까지는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진정한 민족의 주적도 가려내지 못하고, 동족 대결에서 살 길을 찾는 박근혜와 같은 반통일 사대 매국 세력의 준동을 분쇄하기 위한 전민족적 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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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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