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헬조선 '극한 알바' 6인의 증언

[미래정치센터] 알바 호황 시대, 하지만 노동법은 '모르는 게 약'?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청년 체감실업률 역시 3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하니, 청년 3명 중 1명은 실업자인 셈이다. 이처럼 고용시장은 얼어붙고 있지만, 반대로 호황을 누리는 분야도 있다. 바로 '알바'(아르바이트) 시장이다. 하루에도 수천 건의 구인공고가 쏟아진다는 '알바 호황 시대', 청년들은 100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날로 커져 가는 알바시장과는 대조적으로, 근무환경은 열악하다. 헬조선에서 '극한알바'를 하고 있는 청년 6명의 목소리를 들다.

▲ 알바노조가 지난 7월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올라가 "대통령님, 개돼지들이라서 최저임금 만 원은 아깝습니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프레시안(최형락)

학벌 차별, 외모 차별은 일상


대학생 A씨(20)는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왕복 4시간. 초저녁부터 한밤중까지 강의를 해야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강사가 학원에 들어왔다. 그런데 새로 온 강사는 A씨보다 적게 일하면서 같은 월급을 받았다. 당황한 A씨는 원장실을 찾아 이유를 물었다. 원장은 대답은 황당했다.

"그 강사는 서울대 나왔잖아!"


A씨는 학벌을 이유로 임금 차별을 겪은 셈이다. 주변에서는 "노동부에 고발해라", "당장 그만둬"라고 했지만, A씨 그럴 수 없었다. 고발하려고 해도 '노동법'이라는 말에 머리가 아팠다. 또 고발한다고 해도, A씨는 더는 학원을 다닐 수 없을 것이다. 학원 강사는 다른 알바보다 높은 시급을 받는데, 더 나은 알바를 구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A씨는 학력 차별에 입 한 번 벙끗하지 못하고, 여전히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대학생 B씨(24)는 알바를 찾다가 유명 명품브랜드인 L사의 판매직에 응시했다. 일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B씨에게는 상처만 남았다. L사 면접담당자들은 B씨를 보자마자, "당신 같으면 당신이 파는 물건 사고 싶겠는가?", "외모 관리가 엉망이다", "우리는 모델 같은 사람만 쓴다"며 면접 내내 모욕적이고 저급한 언사를 쏟아냈다. 결국 B씨는 눈물을 흘리며 면접장을 나왔다.

다른 명품브랜드인 P사의 울산지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고 있는 C씨(22)는 "화장, 피부, 심지어는 머릿결이나 손톱에 이르기까지 회사는 일상적으로 외모 지적을 한다"며 "많은 친구들이 우울증을 겪다가 금방 그만둔다"고 한탄했다.

시급 4000원 '편돌이', 사장 말 한마디면 바로 해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에게 주목 받는 알바 중 하나가 편의점이다. 업무 강도도 높지 않고, 상대적으로 편한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편의점 알바들, 이른바 '편돌이'들의 증언에는 고충이 가득하다.

대형 편의점 중 하나인 M편의점에서 일했던 D씨(19)는 이미 수개월이 지난 일인데도 자신이 겪은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간단한 면접 후, 출근 일자와 시간이 정해졌다. 시급에 대한 별도의 얘기도, 근로계약서 작성도 없었다. 그렇지만,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경험하는 생애 첫 알바였기 때문에, 마냥 기분이 좋았다. 특히 사장님의 한마디, "시급? 내가 떼어먹을까 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D씨가 받은 시급은 단돈 4000원. 2016년 최저 시급인 6030원에서 2030원이나 적은 금액이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함께 일하는 다른 알바생도 똑같은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어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일은 갈수록 힘들었다. 일손이 바쁠 때는 근무하는 날이 아니어도 출근해야 했다. 물론 추가 수당은 없었다. 특히 즉석식품을 조리해 판매하는 M편의점의 방침상 D씨는 별다른 안전 장비도 없이 조리실에서 음식을 튀겨야 했다. 그 외에도 택배 대리수령, 물품 정리 등 고된 업무가 이어졌다. 매장이 한가해도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잠깐이나마 앉으려고 하면, '앉아 있지 마라', '딴짓하지 말고 일해라' 등 사장의 문자가 빗발쳤다. 사장이 CCTV로 알바생을 감시하고 있었다.

결국 D씨는 지난 6월 편의점 알바를 그만뒀다. 집 근처의 다른 편의점 알바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근처 편의점 사장들이 담합했기 때문이다. 어느 편의점을 가도 시급은 4000원이었다. 무엇보다 D씨는 알바생 정보를 공유하는 편의점 사장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다.

▲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서봄 역할의 고아성의 모습. ⓒSBS

최저임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편의점 알바생 E씨(24)는 최근 갑작스레 해고를 당했다. 손님이 호의로 건넨 선물이 화근이었다. 편의점의 '1+1' 음료수를 산 손님이 사은품으로 받은 음료수를 E씨에게 건넸다. E씨는 손님의 호의가 담긴 음료수를 받아마셨다. 손님이 나가자, 사장이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사장은 "니가 뭔데 그걸 먹고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 E씨는 손님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사장은 듣지 않았다. 손님이 준 선물이어도 '가게 물건'이기 때문에 사장의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E씨가 계속 항변하자, 사장은 E씨에게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라며 해고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업주가 해고 30일 이전에 해고를 예고하지 않으면 해고 노동자에게 해고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E씨는 사장을 찾아가 이러한 사실을 설명했다. 사장은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 E씨가 경찰공무원 준비생이라는 것을 알고, '횡령죄로 고소하겠다', '조서 쓰면 기록 남아서 경찰 못한다'라며 오히려 E씨를 협박했다. 결국 E씨는 해고수당을 포기했다.

법보다 무서운 '사장님'알바 100명 중 4명만 법적 조치


이뿐만이 아니다. 알바생들은 주휴수당을 꿈꿀 수조차 없다. 소셜커머스 C사의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F씨(19)는 퇴사 후 미지급된 주휴수당을 받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었다. 고용노동부가 C사 측에 주휴수당 지불을 명령하자, C사는 F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신고할 수 있느냐", "다시는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며 마지못해 수당을 지급했다. 그런데 F씨가 계산한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문제는 근로계약서였다. '읽어볼 필요 없고, 그냥 사인하고 옆 사람한테 넘기라'고 했던 그 근로계약서에 '꼼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F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0시간을 일했지만, 계약서에는 8시간만 정규 근무시간으로 적혀 있었다. 나머지 2시간은 '초과근무'에 포함돼 주휴수당 산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야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보게 된 F씨는 별수 없이 나머지 수당을 포기했다.

그저 '운이 없었다' 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많은 이들이 부당한 근로환경에 노출돼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 '알바몬'이 알바경험자 11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85.7%가 '알바 근무 중 갑질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갑질 유형으로는 '불합리, 부당한 지시 및 요구'(38.9%), '이유 없는 화풀이'(29.9%), '인격적인 무시'(24.8%) 등이 있었다. 갑질을 하는 대상으로는 '사장·고용주'(38.3%), '상사·선배'(20%)로 직장 내 갑질이 60%에 달했다.

그러나 직장 내 갑질에도 불구하고, 법적 고발이나 신고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알바는 많지 않았다. 응답자 대부분이 '일단 참는다'(72%)거나 '그만둔다'(14.7%)고 응답했다. '법적 위반 사항 등을 확인해 철저히 대응한다'는 응답은 겨우 4.7%밖에 되지 않았다.

학벌 차별을 당한 A씨는 "알바 대부분이 최저임금 정도만 알고 있지 노동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며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시간이나 비용 때문에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외모 차별을 겪은 B씨는 "아무래도 사장님을 고발한다는 게 내키지는 않는다"며 "그런 껄끄러운 일에 시간과 노력을 쓰기보다는 새로운 알바를 구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밝혔다.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한 E씨는 "사장이나 고용주는 근로계약서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불편해한다"며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알바는 10%도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법 가르치는 선진국"권리를 알려주는 건 국가의 의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알바생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기껏 하는 일이라고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 자신이 겪은 고충을 털어놓고 다른 알바생과 공유하는 것뿐이다.

'청년유니온'에서 노동 상담을 하는 이기중 노무사는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법 교육이다. 업주와 알바생 모두 노동법을 알아야 부당한 일을 저지르지도, 당하지도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를 알려주는 건 국가의 의무"라면서 노동법 교육 의무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연수원이 발간한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 실태 보고서'(2003)에 따르면, 미국·일본· 영국·독일 등의 선진국은 노동 문제와 관련된 광범위한 사안을 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노동자와 사용자 간 임금 협상 등의 노동 문제를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고 있다. 또 프랑스는 모든 고등학생에게 노동자의 단체교섭 전략을 가르친다.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청년 전태일은 이해할 수 없는 말투성이인 근로기준법 법전 앞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생들도 근로기준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행여 법을 안다고 해도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처우는 나아질 수 없다. 내게 무슨 권리가 있는지, 내가 무엇을 주장할 수 있는지, 오늘도 편의점에서, 학원 구석에서 한숨만 쉬고 있는 청년 전태일에게 알려줘야 한다.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알려주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국가의 의무다.

위 기사는 미래정치센터 청년기자단 조다운 학생(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취재로 작성됐습니다.

미래정치센터는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특히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이해에 부응하는 정책개발과 연구, 시민교육을 수행하는 전문 연구기관으로 2012년 12월 창립됐습니다.

연구소는 청년·학생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지나쳐버린, 혹은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2015년 초 청년기자단을 구성했습니다. 청년기자단(단장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은 청년 문제를 비롯한 정치 및 생활 의제에 대한 고민을 양질의 콘텐츠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정의당과 청년 간 직접적·지속적 소통의 장이 됐으면 합니다.(☞ 미래정치센터 바로 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