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당당하게 정면 돌파하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백종천이 회의 주재…회고록은 자기 위주 기록"

전직 외교부 장관이 펴낸 회고록, 그것도 500쪽이 넘는 전체 분량 중 9쪽에 담겨 있던 하나의 에피소드가 정국을 뒤흔들었다. 회고록에 담긴 내용은 마치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포장됐고,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매우 유용한' 정치적 공격 도구로 사용됐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기권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송 전 장관은 본인은 끝까지 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주장했으나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국정원장, 안보실장 등은 기권 의사를 굽히지 않았고,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 물어보자고 제안을 했으며, 이를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이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그 회의를 함께했던 인사들은 송 전 장관과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김만복 원장이 북한의 의사를 물어본 것이 아니며, 이미 그 전에 결의안에 기권하기로 결정하고 북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7년 11월 15일과 18일 회의를 주재한 것은 백종천 안보실장이었다. 백 실장에 따르면 15일 회의 결과를 정리해서 결론을 냈고, 소수 의견으로 찬성도 같이 넣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미 15일에 결의안 기권이 결정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이 회의는 파행됐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그는 16일 대통령 주재로 다시 한 번 회의가 열렸으며,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올렸다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이 16일 대통령 면담을 위해 청와대에 갔는데 송민순 장관이 먼저 도착해있었다고 한다. 15일 회의 결과에 따라 송 장관이 대통령을 설득하러 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6일 회의에서도 본인의 뜻을 관철하지 못한 송 장관이 '호소문'을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회고록에서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됐던 또 하나의 사안은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의 행보였다. 회고록에서는 문 실장이 김만복 원장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등 상당한 권한이 있었던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결의안을 논의했던 '안보정책조정회의'는 청와대 안보실장이 회의를 종합하고 주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정식 멤버는 통일부 장관,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 외교안보수석에 비서실장도 배석을 했다. 하지만 비서실장이 이 회의의 결론을 낼 권한은 없었다.

정 전 장관은 "당시 청와대는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의 '투톱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회의를 종합하는 것은 엄연히 안보실장의 권한이다. 그래서 안보실장을 장관급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실제 어떤 발언을 하고 무슨 결정을 내렸을까? 언론과 정치권의 눈이 문재인 전 대표에게 쏠렸지만 그에게서 나온 대답은 "솔직히 말하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이에 문 전 대표의 이같은 발언이 오히려 공격의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 전 장관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망을 가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렇게 대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이 사안에 대해 정면 돌파하려다가 새누리당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우회하거나 다른 문제로 치고 나간다는 식의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그렇지만 상황을 모면하려는 화법으로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사안에 대처하는 능력의 유무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면서 정면으로 현 상황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기훈

프레시안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 회고록이 과연 한국의 정계와 언론계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중대한 사안인지는 의문인데요. 핵심은 2007년 당시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할지, 반대할지, 또는 기권할지에 대해 북한에 물어봤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데요.

송민순 전 장관은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 물어보자고 했고, 이를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수용했다고 책에 기술했습니다. 이 내용을 두고도 '북한에 의견을 물어본 것이다'와 '기권 결정을 통보한 것'이라고 엇갈린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세현 : 그 전에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시 그런 문제를 결정한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사람은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입니다. 비서실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비서실장은 일종의 '옵서버', 즉 관찰자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회고록에는 문재인 실장이 북한한테 물어보자는 김만복 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했다면서 마치 문 실장이 안보정책조정회의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처럼 기술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 때문에 일부에서는 왜 당시 인권 결의안 결정 과정의 책임을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넘기느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 대목으로 인해 이 책이 국내 정치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는 겁니다.

백종천 실장은 회고록에 나온 15일과 18일 회의를 모두 자신이 주재했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전화로 물어 봤거든요. 백 실장에 따르면 15일 회의의 경우 정식 회의였기 때문에 회의 기록관이 같이 배석했다고 합니다. 회의 이후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데, 회의 결과를 정리하여 결론(기권)을 냈고, 소수 의견(찬성)도 부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16일 대통령의 면담을 요청했답니다. 기권 결정에 대해 송민순 장관이 워낙 강하게 반대를 했기 때문에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송 장관이 따로 대통령을 만나서 설득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장관이 대통령 면담을 신청한 것 같습니다.

16일 이재정 장관은 대통령 면담을 위해 청와대에 갔고 백 실장은 배석하라고 해서 관저에 갔답니다. 백 실장이 관저에 가서 보니 송민순 장관이 먼저 와있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고 보는데 15일 회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던 송 장관이 다음날에 대통령을 설득하러 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날 오후 회의에서도 본인의 뜻을 관철할 수 없었던 송 장관은 '호소문'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송 장관이 호소문을 썼다는 것 역시 16일 회의에서도 기권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후 백종천 실장은 송 장관이 기권 결정에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기권 방침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18일 저녁 서별관 회의를 소집했다고 했습니다. 이 회의는 공식 회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도의 기록자는 없었답니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다양한 NSC 형태가 만들어졌는데, 비서실장이 이 회의에서 결정 권한을 가질 만한 위치인가요?

정세현 : 역사적으로 살펴봤을 때 통일부 장관이나 안보실장 등이 회의를 주도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4월 7일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면서 북핵 위기가 불거진 뒤 우리가 대처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겼습니다. 외무장관 얘기 다르고 안기부장 얘기 다르고 통일부총리 얘기가 다르니 대통령이 혼란스러웠던 것이죠.

결국 김영삼 대통령이 외교안보수석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관계부처 장관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데 유관부처 장관들끼리 정책 조정을 끝낸 뒤 그 결과를 자신에게 보고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법제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행령도 없이 대통령 지시에 근거해서 자문기구로 성격을 규정하고 의장은 통일부총리가 맡았습니다. 여기에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 외교안보수석, 비서실장 등이 멤버로 참석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때도 회의 결과를 종합할 권한이 비서실장한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오면서 이 회의가 NSC 상임위원회로 바뀌었습니다. 이때는 NSC 사무처는 없었고, 의장은 통일부 장관이 맡았습니다. 이 때는 비서실장이 NSC 회의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때 그대로 이어집니다. 대신 노무현 정부 때는 NSC 사무처가 생겼기 때문에 사무처장 겸 안보보좌관이 의장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통일부 장관,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 외교안보수석이 공식 멤버였습니다.

그러다가 NSC 사무처장 겸 안보보좌관이 안보실장으로 바뀌면서 회의 주재를 안보실장이 맡게 됐고 회의 이름도 '안보정책조정회의'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도 배석을 했지만 비서실장이 이 회의에서 결론을 내는 역할은 아니었습니다. 청와대가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투톱체제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종합하는 것은 엄연히 안보실장의 권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보실장을 장관급으로 만들기도 했구요.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대선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준비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기에 앞서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에 문 실장을 대통령의 대신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정세현 : 물론 문재인 실장이 대통령의 심중을 잘 헤아린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권 결의안 투표에 기권하는 것을 유도하거나 회의를 좌지우지했다는 것까지로는 연결할 수 없습니다. 엄연히 회의를 주재하는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새누리당에서는 인권 결의안 표결과 관련해 북한과 ‘내통’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정세현 : 이걸 ‘내통’이라고 성격 짓는 건 하나만 일고 둘은 모르는 일입니다. 새누리당은 앞으로 북한과 전혀 대화할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남북 간에 빈번하게 회담과 교류, 왕래가 일어나면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탐색전을 벌입니다. 그런 탐색전이 없으면 남북 간 관계를 풀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쪽의 전략을 탐색하기 위해 꾸준히 접촉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 운을 띄우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정도의 탐색과 조율은 한미 간에도 해야 합니다. 이런 거 없으면 외교 못하지요.

게다가 2007년 말에는 남북 정상회담과 총리급 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탐색전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이었죠. 따라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 물어보자"는 노골적 표현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북한은 협조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경계하고 견제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보 기관에서 상대방의 분위기를 떠보려 하는 것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 필수 요소입니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가 재임 기간 동안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불참과 기권, 찬성 등을 왔다 갔다 한 것을 두고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정세현 : 그건 당시 상황과 맥락을 살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재임했던 2003년에는 표결에 아예 불참했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 때인 2004, 2005년은 기권했습니다. 당시 외교부는 기본적으로 결의안에 찬성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는데 NSC의 다수가 기권으로 가니까 그걸 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기훈
2006년에 인권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핵 실험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해 10월 9일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인권 결의안에 찬성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찬성으로 결론을 내렸을 겁니다.

물론 당시에도 정부 내에서 기권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에 협조하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소위 '아픈 곳'을 직접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었겠죠. 그런데 노 대통령의 스타일로 봐서는 이번에 우리가 확실하게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했을 것이고, 그래서 찬성으로 결론을 냈을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 해인 2007년, 남북은 10월 정상회담에 이어 11월에는 총리급 회담을 했습니다. 상황이 바뀐 겁니다. 전년도에 찬성했으니까 올해도 계속 찬성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상황이었죠.

또 2006년의 결정은 우리가 국제 기준에 맞춰 북한 문제를 다루겠다는 것보다는 북한이 핵 실험을 했다는 특수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분노가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너희들(북한)이 우리 입장 전혀 안 봐주고 맘대로 하면 우리도 너희 입장 생각 안 하고 우리 맘대로 하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줘야 할 필요도 있었다고 봅니다.

프레시안 : 당시 한국 정부가 미국에는 기권 방침을 통보하지 않고 북한에는 이를 전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세현 : 미국에 통보하는 것이 의무사항입니까? 북한에 통보했는데 미국에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이 마치 죄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게 미국을 상전으로 여기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고 봅니다.

북한한테 기권한다는 것을 사전에 통보하는 것은 정상회담과 총리급회담을 진행하고 여러 가지 후속 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기 위한 일종의 절차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중요한 대북 제의는 판문점 라인을 통해 미리 북한에 알려줬습니다. 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결정된 것을 통보하는 것이죠. 이러한 제의가 나갈 것이니 알고 있으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굳이 이렇게 미리 알려준 건 북한이 우리 제안이나 입장에 협조하라는 취지였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3월 드레스덴 선언을 꺼냈을 때 북한에 아무런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북한의 드레스덴 선언 거부로 나왔습니다. 미리 알려줬다면 어땠을까요?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송민순 전 장관, 호소문까지 올린 이유는

프레시안 : 2007년에 결의안 문제를 결정할 당시 나름의 상황과 맥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송 장관이 호소문까지 쓰면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일단 송민순 장관 본인은 직업 외교관 출신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정치적 동지'들 아닙니까?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나 문재인 비서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일종의 측근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런 점에서 송 장관은 '송민순 대 노무현 진영' 간의 싸움에서 본인이 밀렸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결정 과정에서 본인이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 대학교로 출근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함께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기본적으로 외교부와 통일부 간에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도 송 장관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낸 이유라고 봅니다. 외교부는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국제관계로 봅니다. 그런데 통일부는 민족 내부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봅니다.

외교부는 북한과 관계를 국제관계로 보기 때문에 북한을 국제 기준에 맞춰서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니 이런거 운운하면서 봐주면 안된다고 생각하죠. 이런 맥락에서 외교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 외교부 장관이 공식 수행원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과 북한 김일성 주석 간 정상회담이 추진될 때 외교부 장관이 공식 수행원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고 볼 수 있는 통일안보정책회의의 주요 멤버들은 이건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왜냐하면 남북관계가 단순한 국제관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외교부는 남북 정상회담에 외교부 장관이 같이 가지 못하면 앞으로 한미 관계를 풀어나가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북한과 관계된 일에 외교부가 빠질 수는 없습니다. 북핵 문제를 비롯해 북한과 관련된 사안에서 국제적인 협조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통일부한테 맡겨야지요.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통일부를 만든 거 아닙니까. 외교부가 남북관계에까지 통일부와 동등한 지분으로 개입하려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2007년 당시도 이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도 국제적 기준에 맞춰서 활동을 해야 앞으로 대북정책을 풀어나가는데 미국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다고 했다면서요? 그런데 이건 곧 우리가 외교를 독자적으로 하지 못하고 미국에 기대어 외교를 하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한미 양국이 군사적으로는 동맹을 맺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일정 부분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한다고 해서 우리도 찬성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미국이 찬성하는데 우리가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미국이 우리를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남북관계에 국제적 기준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2001년 11월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금강산에서 진행했는데, 남북 장관급회담은 상호주의에 따라 서울과 평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6차 남북 장관급회담 장소를 평양이 아닌 금강산으로 제안한 겁니다. 당시 홍순영 통일부 장관은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했고 회담 장소를 두고 남북 간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당시 회담을 금강산에서 열었는데, 이 때 다음 회담 날짜를 잡는 문제를 두고 남북이 옥신각신하면서 회담 일정까지 하루 연장했지만, 결국 회담은 결렬됐습니다. 당시 홍순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보는 청와대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남북관계도 국제관계 기준에 맞춰 풀어 나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접점을 만들지 못했었지요.

프레시안 : 남북관계에서 통일부와 외교부, 국정원 모두 각각 고유의 역할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정세현 : 외교부는 남북관계에서 결정된 사항을 두고 국제적인 협력을 끌어내는 외교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남북관계를 결정하는 데까지 관여하려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미관계 결정하는데 통일부도 같이 해야 합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기훈
그런데 기본적으로 외교부는 자기들이 남북관계에 당연히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미관계나 대외관계에도 북한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미 관계를 결정짓는데 통일부는 전혀 역할이 없습니다. 외교부 업무 중에 북한과 관련된 업무에 통일부는 배제돼있는 상태에서 남북관계는 미국이나 중국과 협조 때문에 자기들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외교부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회고록에 보면 남북이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것을 발표 직전에야 알았다는 부분이 있던데, 이는 외교부 장관이 남북관계에 대해 다 알아야 한다는 뜻을 은연중에 보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반대로 생각하면 다소 무리한 요구입니다.

예를 들어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일부 장관한테 미리 알려주나요? 발표 직전에 국무회의나 안보정책조정회의 때 알려주는 것이죠. 업무 영역의 문제인데, 외교부는 '내꺼는 내꺼고, 니꺼도 내꺼'라는 식의 행태를 보여 오기도 했습니다.

국정원과 통일부는 역할 분담이 확실히 돼 있었습니다. 남북이 물밑으로 오가는 것은 국정원이 주도했고 통일부는 공식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국정원은 지금 북한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동향이 어떤지 등을 전달해주고 통일부는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수월하게 진행시켜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북쪽의 의도를 미리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회담에서 합의문을 만들 때 우리가 상황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국정원과 통일부가 역할 분담을 잘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프레시안 : 회고록이라는 것이 학술적인 의미에서 인용해서 쓸 수 있는 자료가 아닐 정도로 객관적인 사실을 담기가 힘든데요.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들은 이 회고록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세현 : 원래 회고록은 자기 위주로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회고록은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로 활용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저자 본인에 대한 정당화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고록을 통해 분위기는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에 나온 회고록이 학술적 객관적 근거 자료로 많이 인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송 장관도 얘기했지만, 새누리당이 회고록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건 문제입니다.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문제를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터졌던 서해 NLL 문제 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정면 돌파해야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시 상황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오히려 여당에게 공격의 빌미를 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기억나지 않는다" 말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망을 가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렇게 대응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의 원래 성격과 화법을 보면 저런 식의 대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중요한 말을 할 때도 직접적인 표현을 잘 안합니다. 성격 탓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성격을 좀 벗어나서 당당하게 치고 나가야 합니다.

특히 문 전 대표가 인권 변호사 출신 아닙니까? 북한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관련해서 북한에 물어보자고 했으면 분명 그 사실을 정확히 기억할 텐데,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기억에 없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치고나가야 합니다.

10.26 후 신군부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하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허문도 실장이 5공 청문회에 불려나갔는데 "기억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묘한 표현을 쓰면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쓱 지나가 버렸습니다. 책임이 면탈된 것이죠.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런 화법은 책임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이 사안에 대해 정면 돌파하려다가 새누리당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우회하거나 다른 문제로 치고 나간다는 식의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을 모면하려는 화법으로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안에 대처하는 능력의 유무 문제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정치 공세를 깨고 나가려면, 이러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려면 좀 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당시 회의 참석자 중에 노무현 대통령을 뺀 나머지 멤버가 모두 생존해있으니까, 이들끼리 다시 모여서 그때 상황을 재연해보자는 식으로, 그 정도로 세게 치고 나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한 사고입니다. 단순히 이 사안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는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 전 대표가 이 문제를 제대로 공세적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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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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