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개헌, 대통령 임기보다 중요한 건 자치분권"

[인터뷰] "중앙 예산 70%는 행정비로 소모…주민 삶과 상관 없어"

임기 6년 차를 맞이한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2017년도 대선을 앞두고 '자치 분권형 개헌론'을 꺼내들었다.

최문순 도지사는 19일 서울에서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중앙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에만 주목하지만,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돈을 지역으로 나누면 대통령 권한 문제는 얘기할 필요가 없다"며 "개헌론에서 4년 연임제냐, 단임제냐 하는 논쟁보다 핵심은 분권"이라고 말했다.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최문순 도지사는 "중앙 부처에서 내려 보내는 사업비의 70%가 행정 비용으로 사라져 지역 주민에게까지 효과가 도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중앙과 지방의 권한이 8 대 2 정도인데, 적어도 6 대 4 정도는 예산과 사무가 지역으로 넘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최문순 도지사는 시도지사협의회 차원의 분권형 개헌안을 만들었다. 이 방안을 내년 대선 후보들과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평창 올림픽 과정에서 가리왕산 개발,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 등 지역 사회 현안도 언급했다. 최문순 도지사는 "환경 정책이 주민의 삶을 옥죄면 안 된다"며 "환경 보호 구역을 넓혀서 확실히 보존하되, 이용 구역도 넓히는 선진국형 방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운동과 관련해서도 최문순 도지사는 "투쟁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노동 운동 방식은 참패했다고 본다. 진보도 진보해야 한다. 보수에게 존경받는 진보가 돼야 한다"며 덴마크의 실업 보험 제도를 도입해 시범 사업하고 있는 강원도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인이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19일 서울에서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자치 분권형 개헌론'을 제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2017년 대선, 자치 분권 중심 개헌해야"


프레시안 :
올림픽이 지역 사회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지에 대해 이견이 있다. 평창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 문제와 가리왕산 훼손 문제가 불거졌다. 한나라당 김진선 전임 지사가 유치를 시작해서 삼수 만에 성공한 만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과제가 있는데, 평창 올림픽과 관련한 구상이 있나?

최문순 : 이번 올림픽이 큰 관점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위기의 병목에 묘하게 서 있다. 병목을 잘 통과하면 우리도 선진국에 진입하고, 병목을 통과하지 못하면 헤어나기 힘든 상태로 갈 것이다. 1988년 올림픽이 한국이 정치 경제적으로 발전한 시기에 열렸다면, 30년 만에 다시 열리는 평창 올림픽은 그만한 역동성을 보여야 한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올림픽 시기에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11%에 달했고, 6월 민주 항쟁을 통해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그렇다면 2017년에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개헌을 해서 제7공화국을 열고, 2018년에는 성숙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강원도에서는 유럽처럼 노사정 대타협 방식으로 각각 고통에 공동 대처하고, 이익이 생기면 나눠가지는 방식을 시범으로 시작했다.

프레시안 : 최근 시도지사협의회장에 선출된 최문순 지사도 내년 대선이나 정치 개혁과 관련해 중앙 정치에서 역할을 할 계획인가?

최문순 : 시도지사협의회의 가장 큰 과제가 '자치 분권 중심의 개헌'을 내년 대선 국면에 반영하는 것이다. 시도지사들이 분권형 개헌안을 공통으로 마련했다. 이 안을 내년에 개헌 공약을 내는 대선 주자와 공론화할 계획이다. 중앙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만 주목하지만, 중앙에 모인 권력과 돈을 지역으로 나누면 대통령 권한 문제는 더 얘기할 필요가 없어진다. 4년 연임제냐 단임제냐 하는 논쟁보다 핵심은 분권이다.

프레시안 : 개헌안에서 자치 분권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보나?

최문순 : 우선 예산과 사무, 두 가지가 지역으로 넘어와야 한다. 지금은 중앙과 지방의 권한이 8 대 2 정도인데, 헌법에 명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6 대 4 정도는 가줘야 한다.

지방 분권을 하면 지역 주민의 삶이 바뀐다. 예를 들어 정부가 이번 일자리 관련 추가경정 예산안을 17조 원 정도 짰다. 중앙 각 부처가 내려 보낸 일자리 사업의 종류가 190가지더라. 그 중 행정 비용이 70%가 든다. 지역 주민에게까지 효과가 도달하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재명 성남시장도 저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예산이 현장으로 내려가야 도달률이 높은데, 중앙에서 여러 프로세스를 거쳐 현장과 거리가 먼 정책들에 돈이 다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한 해 국가 예산이 400조 원인데, 현장 도달률을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나눠주는 것이다. (☞관련 기사 : 최문순 "룰라식 '직접 복지'로 패러다임 바꿔야")

ⓒ프레시안(최형락)

"카지노, 지역 경제 유발 효과 별로 없더라"

프레시안 : 도의회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다수인 것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강원도지사에 5년 넘게 재직 중인데 어려움은 없나?

최문순 : 인사 문제와 같은 서민들의 삶과 멀어진 문제들은 도의회에 양보하고, 그 과정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다. 강원도립대학 등록금 연 24만 원을 얻어냈다. 무상 급식도 전국에서 제일 많이 한다. 노인들을 위해 8평짜리 주택 100호를 짓고 있다. 서울로 출퇴근하실 주민들에게 도유지에 싼 표준 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프레시안 : 최근 경북 경주에 큰 지진이 난 뒤로 삼척 원전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데, 도지사로서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최문순 : 시와 도에서는 절대 못한다고 하고, 정부는 원전 건설 계획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해서 대치 상태다. 시도에도 행정 권한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중앙 정부에서 밀어붙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착공했어야 하지만, 지금은 대치 상태이고, 그렇다고 백지화된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 : 강원도에서는 새만금 카지노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인적으로 강원랜드가 썩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강원랜드는 폐광촌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데 새만금 카지노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최문순 : 사람들이 카지노가 지역 경제를 부흥시키리라는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강원랜드 연 매출은 1조2000억 원 정도 된다. 한국 방송(KBS) 연 매출액 정도이다. 직원 2000명이 상주하며 내는 경제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주변에까지 미치는 경제 유발 효과는 별로 없다. 새만금도 답답하니까 그런 제안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새만금에 카지노가 들어선다고 해서 새만금이 번성하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강원랜드 수익금을 지역 사회에 환원할 방안은 없나?

최문순 : 강원랜드 매출의 일정액을 탄광 지역 4개 시군에 보내지만, 근본적인 종자돈 역할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강원랜드를 하나의 기업으로 봐서 수익률을 최대한 높이는 쪽으로 감사와 경영 평가를 하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 기여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다만, 폐광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를 살리고자 종합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관이 주도해 사업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중심이 돼 숙박업, 음식점, 수공예품을 파는 마을을 만드는 식의 모범적인 도시 재생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주민 참여가 중요하다. 전에 관 주도로 오투와 동강시스타라는 리조트를 만들었는데, 이 리조트들이 잘되더라도 기업 하나가 잘 되는 것이지, 태백 시민들과는 상관이 없더라.

ⓒ프레시안(최형락)

"환경 정책이 주민 삶 옥죄면 안 돼"

프레시안 : 최문순 지사는 언론 운동, 시민운동가 출신인데, 가리왕산 파괴 논란, 오색 케이블카 설치 논란 등으로 도지사가 된 다음에는 달라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도민들의 생활 향상 욕구를 챙겨야 하는 도지사로서의 소회가 궁금하다.

최문순 : 나는 진보의 진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산별 노조위원장 출신에 천안함 폭침설에 문제 제기도 했던 나를 이념 성향으로 보면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은 새누리당 출신 중에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보수에게 존경받는 진보가 돼야 한다.

가리왕산이나 설악산 케이블카와 관련해서도, 나는 환경 정책을 싹 바꾸고 있다. 태백산을 국립 공원으로 지정하는 등 환경 보호 구역을 넓혀서 확실히 보존하되, 이용 구역도 넓히는 방안이다. 이게 핀란드나 스위스 같은 선진국형이다. 지금은 보존한다고 해놓고 편법으로 다 해준다. 공무원들이 골프장 허가는 팍팍 해주면서 서민들의 (개발) 경로는 막아버린다. 이렇게 환경 정책이 뒤틀어져선 안 된다.

내 슬로건 중 하나가 환경 정책이 주민의 삶을 옥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도 철학을 바꿔야 한다고 설득했다. 일괄해서 묶어놓으면 박정희 방식, 국가주의 방식이다. 강원도에서 환경이라고 하면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주민들이 "우리 못 살게 한다"고 한다. 40, 50년 동안 나뭇가지 하나 못 꺾게, 건물 개보수도 못하게 하니까 폐허가 됐다고 한다.

프레시안 : 진보 진영이 말하는 환경 보호는 주민 생활을 도외시했다는 것인가?

최문순 : 주민과 괴리된 것이다. 서로 관점이 다르다. 환경도 그렇고 노동도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의 노동 운동은 투쟁으로 돌파하려고 하는데, 참패했다고 본다.

최근에 '겐트 시스템(노동조합이 실업 보험을 관리, 운영하는 제도)'을 배우려고 노동조합, 공무원, 시민사회가 다 덴마크에 갔다. 덴마크에서는 전 국민의 70~80%가 노조원이다. 우리는 왜 9%밖에 안 되나? 그 차이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보고 자본과 정부가 받아들일 노동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관련 기사 : 스웨덴의 실업보험 제도: 겐트 시스템)

겐트 시스템은 이렇게 운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조합비를 매달 1만 원 낸다면, 덴마크에서는 그보다 많은 26만 원 정도를 내고, 사측도 26만 원, 국가도 26만 원을 낸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숙련도와 충성도를 높일 수 있어서 좋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해고 됐을 때 '해고 수당'이라는 안전망이 생긴다. 노동자는 해고되더라도 싸우지 않고, 사측은 비정규직을 고용할 이유가 없다. 조선업도 잘나갈 때 이런 제도를 도입했어야 한다. 돈을 모아뒀다가 불황기에 물량이 적게 들어오면 쉬라고 하고, 그동안 노동조합에서 '휴직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강원도도 이와 비슷하게 노동자 10만 원, 사측 10만 원, 도 10만 원씩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향후 행보를 묻겠다. 일단 평창 올림픽을 잘 치르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다음에 강원도지사 삼선에 도전하실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지자체장들처럼 대권에 도전하실 계획인지 궁금하다.

최문순 : 저는 평창 올림픽을 '자본주의적인 메가 이벤트'로만 볼 게 아니라고 본다. 정치 경제적인 의미로 보고 있어서, 평창 올림픽이 최대한 대한민국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마무리 할 계획이다. 삼선은 좀 지루한 것 같더라. (웃음)

프레시안 : 자치 분권 개헌 등 앞으로 행보에 관심 갖고 지켜보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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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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