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백남기 상황 보고' 파기, 증거인멸 아니라고?

[전진한의 알권리] 반복되는 경찰의 불법 행위, 걱정된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10월 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국감에서 경찰청이 고(故) 백남기 씨에게 물대포를 쏜 민중총궐기 당시(2015년 11월 14일)의 상황속보를 파기했다고 김정우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밝혔다. 또한 이철성 청장은 '증거인멸'이라는 의원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증거인멸이 아니고, 내부 규칙상 일반 상황속보는 읽고 바로 파기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관련 문서를 보면 '열람 후 파기(이면지 사용금지)'라고 명확히 적시 되어 있었다.

경찰청의 이런 비슷한 행태는 몇년 전에도 있었다. 지난 2010년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의 동향을 감시하는 정보활동을 지시한 경찰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다. 이 문건은 서울경찰청 정보계 직원이 경찰 내부망을 통해 일선 경찰서 정보관에 전달했다. 당시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가공무원법, 선거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국회에서 이 문건을 요청하자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은 "삭제해서 없다"고 답변하면서 "첩보·정보 보고는 등록 대상 기록물에서 제외하고 열람 뒤 파기할 수 있다"는 경찰청 훈령을 근거를 내세웠다.

당시 공안기구의 권한남용을 감시하기 위한 인권·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모임인 공안감시네트워크가 2010년 11월 17일 공공기록물 위반 등으로 경찰청장을 고발했으나,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몇 년 시차를 두고 유사한 사례가 같은 기관에서 반복해서 발생한 것이다. 경찰은 그 실체도 모호한 '내부 규칙', '훈령' 등을 내세우며 법적용을 피해나가고 있다. 그러면 경찰의 이런 태도는 합법적인 일일까? 이에 대해 분석해보도록 하자.

▲ 이철성 경찰청장. ⓒ연합뉴스

우선 공공기록물 시행령 16조(기록화 및 기록관리대상) 에는 '공공기관은 공식적으로 결재 또는 접수한 기록물을 포함하여 결재과정에서 발생한 수정내용 및 이력 정보, 업무수행과정의 보고사항, 검토사항 등을 기록물로 남겨 관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업무수행과정의 보고사항, 검토사항을 기록물 남겨 관리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생산된 기록은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26조(보존기간)에 따라 기록물의 보존기간은 영구, 준영구, 30년, 10년, 5년, 3년, 1년으로 구분하여 보존하게 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도 법에 따르면 반드시 적용해야 하며, 그 예외 사항을 법에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생산된 문서는 각자 보존기간이 도래하게 되면 공공기록물법 제 27조(기록물 폐기) 규정에 따라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서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무단파기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 어디에도 내부규칙, 훈령 등으로 법 적용 제외를 두지 않고 있고 반드시 1년 이상 보존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법에도 위반되는 모호한 근거조항을 들어, 자신들의 정당성을 항변하고 있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에 다름없다. 이에 대해 기록관리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이상민 박사도 SNS에 글을 올려 "공공기록법에 의하면 당연히 기록물 무단 폐기이지요. 경찰법에 관련 보고서 폐기조항이 있을 리 없지요. 경찰청 내부 규정이 있다면 상위법 위법이니 그간 무단 폐기 위법 사항이 더 있었나 조사할 필요가 생깁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보고서도 고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시간대의 보고서 5건이 파기된 것으로 밝혀졌다. 증거인멸을 의도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다시 정리하면 공공기록물법을 위반한 내부규칙 및 훈령은 법체계상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면 마땅히 효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한 반복되는 경찰청의 이런 문서 파기 행위는 더는 방관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특히 국가세금으로 구입한 장비로 인해 농민이 사망했는데도, 관련 문서를 파기한다면 향후 경찰청의 권력은 어떻게 감시할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된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공권력은 반드시 불법과 탈법을 동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반복되는 경찰청의 불법 행위가 걱정 되는 것은 기우일까? 향후에도 같은 사건들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공권력의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내부 규정으로 기록을 파기했다'고 대답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런 불안감을 끝내기 위해서도 향후 국회 차원에서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