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의 진실, 미친 독재자!"

[프레시안 books] <무함마드 평전>, <사우디아라비아>

알라만이 유일한 신이다. 내(무함마드)가 알라의 사도임을 사람들이 믿을 때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기도하고 세금을 낼 때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나는 받았노라.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의 피와 재산을 보호할 것이다.

유명한 이 말은 전승되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이자 최후의 선지자 무함마드가 말하고, 행동하고, 다른 이의 행위를 묵인한 내용을 기록한 책 하디스 내용의 일부다. 이슬람교 포교의 상징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원칙의 정점이다. 이슬람교를 따르는 이가 아니면 무찌르라는 원리, 나아가 정교 일치 사회의 원리가 바로 이 말에서 생겨났다.

그런데, 전 세계 무슬림이 따르는 가장 중요한 이 원칙의 출처가 조금 이상하다. 어째서 이토록 중요한 원리가 코란(무함마드가 알라에게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을까. 더 이상한 건, 무함마드의 이 말을 들은 이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라는 데 있다. 이 말은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지내던 시절 만난 거지인 아부 후라이라가 전했다. 다른 이 누구도 무함마드가 저런 말을 하는 걸 듣지 못했다.

무함마드 사후, 권력 공백과 반란으로 고심하던 이들이 이 말을 필요에 따라 원칙으로 내세웠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전승되는 수만 개 중 적잖은 하디스는 무함마드 사후 혼돈의 시기에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너도 나도 권력을 잡고자 '자신만이 들었다'는 무함마드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 출처를 알기 힘든 말들은 현재까지도 무슬림의 생활 원리가 되어 세계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무함마드의 전기 역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리되었다. 이슬람 최초의 제국이었던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아바스 왕조는 이미 동으로는 중국까지, 남으로는 북 아프리카까지, 서로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뻗어나간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필요가 있었다. 제국을 구성한 각 지역 사람들은 고유의 전설과 신화를 갖고 있었고, 이슬람교는 그 표피에 위태롭게 덧씌워졌을 뿐이었다.

특히 같은 신을 섬기는 그리스도교도와 유대교도를 억누르기 위해, 예수와 무함마드 중 누군가의 권위는 더 힘을 받아야 했다. 제국은 무함마드 사후 130년이 지난 이때서야 무함마드의 전기를 만들어 배포했다. (비록 어느 신화나, 심지어 예수의 부활을 주장하는 신약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무함마드 전기에 어느 정도도 많은 윤색이 가해졌을지 짐작 가능한 부분이다.

당대에도 전기를 쓴 이븐 이샤크는 적잖은 학자들에게 엉터리 취급을 당했다. 현대 들어 무함마드를 가공의 인물로 해석하는 파격적 가설도 나왔다. 이 가공된 신화를 삶의 기반으로 삼아, 이성이 종교를 대체한 21세기에도 '이교도'를 마구잡이로 처벌하는 이들, 예컨대 이슬람국가(IS) 지도자와 같은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무함마드 평전>(하메드 압드엘-사마드 지음, 배명자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은 폭탄 같은 책이다. 모든 무슬림에게 신성 불가침의 존재인 무함마드를 인간의 지위로 끌어내려 그의 성격과 콤플렉스를 분석하고, 공과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경외의 대상에게 도덕적‧역사적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던 이집트 카이로 출신 이슬람 연구자인 저자는 전해 내려오는 무함마드의 말씀에서 점차 모순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비판적 이슬람 연구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가 저서 <이슬람 파시즘>을 통해 폭력적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판하자, 근본주의 집단은 그에게 죽음의 파트와(종교적 의견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법 이상의 권위를 가진다.)를 선고했다.

이 책은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과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당시의 사건과 무함마드의 결정을 끊임없이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무함마드가 이슬람교 전파를 위해 무기를 지닌 부족과 동맹을 체결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저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 알카에다의 탄생, IS의 탄생을 겹쳐 보여준다. 최초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이슬람교를 포교할 때,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무함마드의 이슬람교는 평화를 이야기했다. 훗날 무함마드는 군사 부족과 동맹을 맺어 스스로 평화를 깼다.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걸 도와준다면, 방대한 영토와 성노예를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후 무하마드의 언어는 폭력으로 가득해진다. 무함마드의 방식이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궐기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IS 병사들이 1400년 전 무함마드가 했던 일을 고스란히 따라 한다. (…) IS는 시리아의 라카를 점령한 후,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적용했던 공동체 규칙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죄인'에게 똑같이 신체 형벌을 내렸다. (…)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함마드의 초기 공동체를 세세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다. 현대 세계를 외면하는 현실 도피 형식의 신성 국가를 꿈꾼다.

무함마드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부족별로 쪼개진 이슬람을 통일 문명으로 키웠다. 통일된 언어인 아랍어를 사막에 뿌렸고, 구술 문화 지역이던 이곳에 책(경전)을 전파했다. 칼과 코란을 들고 그는 사막을 무릎 꿇려 아랍 제국의 토대를 닦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평화롭게 지내던 대부분 부족은 종교의 이름 아래 피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무함마드는 죽기 전 8년 간, 무려 80회의 전쟁을 치렀다. 거의 매 달 전쟁에 골몰한 셈이다. 양 극단을 오간 그의 해석은 훗날 사막의 후손들을 종교의 이름 아래에 극심한 내분과 테러의 수렁에 빠뜨렸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부터 이 책을 이슬람 바로 알기가 아닌, '이슬람 비판적 읽기' 목적으로 썼다고 강조한다.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마저 신성모독으로 여기는 도그마에 갇힌 이슬람을 바로 바라보기 위해, 균형추를 반대편으로 기울였다는 뜻이리라. 결국, 이 책은 한편으로 (비록 이슬람교의 창시자에 관한 이야기지만) 무슬림을 멸시하는 우리의 색안경을 더 짙게 만들 여지가 크다. 독자는 이 책의 강력한 메시지를 다른 무엇과 비교하며 스스로 균형을 잡아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과감한 해석은 책 곳곳에서 흥미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서 태동한 갱단 마피아(Mafia)와 이슬람 조직을 비교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마피아'라는 언어가 아랍어로 '면제' 혹은 '보호'를 뜻하는 '마피아(maa’fia)'에서 유래했으리라는 가설을 제기한다. 이슬람교로 무장한 아랍 정복자들은 831년 비잔티움 제국을 팔레르모에서 몰아낸 후, 이 지역에 곧바로 보호세 납부와 상납 의무를 도입했다. 이는 칼로 무너뜨린 부족에게 무함마드가 강요한 제도였다. 아랍인의 관습 역시 이 땅에 들어왔다. 마피아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강력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와 뒤틀린 명예 관습이 이때 이 땅에 새겨졌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시칠리아 지방에서는 지금도 명예 살인이 자행된다. 이러한 문화는 특히 아랍에서 두드러졌다.

책에 묘사되는 무함마드는 신 종교 지도자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독재 정치가로 급변하는 인물이다. 저자는 소비에트 혁명 이전의 레닌과 이후의 레닌의 모습을 무함마드의 변모에 빗댄다. 메카의 혁명적 종교 창시자 무함마드는 칼로 정복을 시작한 후, 권력욕과 지배욕에 휘둘리며 점차 전쟁광으로 변한다. 부하에게는 약탈과 강간을 허용하고, 이를 신의 이름으로 합리화해줬다. 무슬림이 아닌 자를 죽여도 된다는 원칙에서는 편집광적 모습마저 엿보인다. 저자는 권력을 잡은 후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무함마드의 모습 중 특히 당대의 기준으로도 문란했던 여성 관계를 비판하고, 나아가 그가 현대 기준으로 자아도취와 과대망상, 강박증, 편집증, 피해망상 등에 시달린 환자였으리라는 추정까지 제기한다. 여러 모로 무슬림이 쓴 책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주장을 여럿 담았다.

이 책의 내용을 현대 사회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저작물이 있다. 역시 최근에 나온 <사우디아라비아>(캐런 엘리엇 하우스 지음, 빙진영 옮김, 메디치 펴냄)다. <월드스트리트저널> 편집장을 지낸 저자는 무함마드의 신정이 살아 숨 쉬는 와하비즘 국가의 사람들을 취재한 중요한 책을 펴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G20 정상회의 회원국이지만, 무슬림 사회에서도 특히나 강력한 근본주의적 정책을 고수하는 국가다. 면면을 살피면, 여러모로 IS가 꿈꾸는 제국의 모습을 재현한 나라에 가깝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62년이 되어서야 노예 제도를 폐지한 나라, 여전히 참수형을 집행하는 나라, 마법 용의자를 사형에 처하는 나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에게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 관광 비자 발급을 하지 않는 나라, 극장을 금지한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묘사되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전제 정권에 순응하고, 강요되는 율법 아래에 무기력해졌다. 무함마드가 처음 칼을 든 이 땅에서 1000년이 넘도록 이슬람 율법에 억눌린 이들이 어느덧 스스로를 신 앞에 내려 놓아버린 모습을 저자는 사우디아라비아 보통 사람의 삶에서 발견한다. 권력자의 부패나 예외주의까지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시절과 닮았다. 무함마드는 간음하지 말라 가르치고, 아내는 네 명까지만 거느리라고 신도들에게 강조했지만, 자신은 예외의 존재로 여겼다. 그는 13명의 아내를 거느렸고, 심지어 6살 짜리 아동과도 혼인했다. 왕가의 자금줄인 사우디 최대 기업인 아람코 내부에서는 여성의 운전과 극장이 허용된다. 뇌물을 바친다면, 율법이 금지한 웬만한 금기가 허용되고, 일 처리도 빨라지는 현실 앞에 사우디 사람들은 분노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는 모든 중동 문제의 축소판"이라는 주제 의식을 담았다. 어쩌면, 이슬람교 태동 당시 무함마드의 저 극단적인 양면적 태도가 모든 중동 문제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이스라엘 정권의 폭압적인 팔레스타인 난민 지배와 석유 자원을 노리는 서구 국가의 탐욕이 사막을, 나아가 세계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대인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몇몇 근본주의적 이슬람 국가의 모습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원인을 우리는 무함마드에게서 찾아볼 필요는 있다. <무함마드 평전>은 세계의 화약고의 탄생 과정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는 화약고를 낳은 살아있는 화석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 <무함마드 평전>(하메드 압드엘-사마드 지음, 배명자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사우디아라비아>(캐런 엘리엇 하우스 지음, 빙진영 옮김, 메디치 펴냄).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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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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