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군형법에서는 조문 번호가 92조의6으로 바뀌고 조문 내용도 "제1조 1항 내지 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으로 일부 바뀌었으나 대체적인 취지는 같다. 이 조항은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한 조항으로 지목돼 비판받아 왔고, 19대 국회 때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에 의해 개정안이 제출된 적도 있다.
헌재 "추행=군기 침해(O), 성적 자유 침해(X)"…"동성애자 차별" 주장엔 "합리적 차별"
헌재는 28일 내린 결정에서 "구 군형법 제92조의5 중 '그 밖의 추행'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며 "청구인은 92조의5 전체에 대해 심판 청구를 하고 있으나, 당해 사건에서 재판의 전제가 되는 부분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고 심판 대상을 제한했다. 이는 '계간' 또는 '항문성교'에 대한 판단 자체는 이번 결정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로 인해 결과적으로 92조의5(구법 기준)는 온전히 살아남았다.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92조의5)에서 말하는 '그 밖의 추행'이란 결국 강제추행이나 준강제추행을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면서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내렸다.
헌재의 이날 결론은 '추행'을 정의한 대법원 판례와 다르다. 대법원은 2013년 9월 판례에서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즉 형법이나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등 일반 형사법에서의 '추행'은 '피해자의 성적 자유 침해'를 의미하는데, 유독 군형법에서의 '추행'은 '군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에 대한 침해'라는 얘기다.
헌재는 그 까닭에 대해 "심판 대상 조항은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 생활을 영위하고, 군 조직 전체의 성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 주된 보호법익은 '개인의 성적 자유'가 아니라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이라고 지난 2011년의 헌재 결정을 인용해 주장했다.
즉 "이 조항의 입법 목적은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고 (중략) '개인의 성적 자유' 등 개인적 법익은 주된 보호법익이 아니"라는 게 헌재의 견해다.
그렇다면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을 지키기 위해 동성애 행위를 징역으로 형사처벌하는 셈이 된다. 헌재는 이 부분에 대해 "이 조항으로 인해 군인들이 받게 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제한 정도가, 이 조항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 및 군기의 보호', 나아가 국가의 존립과 모든 자유의 전제조건인 '국가안보'라는 공익보다 크다고 할 수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을 일탈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헌재 결정문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다음 부분이다.
"청구인은 심판 대상 조항이 동성 군인 사이에만 적용된다면,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을 이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과 비교해 자의적으로 차별하는 것이므로,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판 대상 조항은 동성 군인 사이에 성적 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므로…, 중략)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과 이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을 차별하기 위한 목적에서 규정된 것이 아니다.
심판 대상 조항이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군대는 동성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으며,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고, 이를 방치할 경우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군대 내의 특수한 사정에 따른 것이므로, 이성 사이의 성적 행위를 한 군인과 비교하여 어떠한 차별 취급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는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된다. 따라서 심판 대상 조항은 평등 원칙에 위반되지도 아니한다."
즉 92조의5에 의해 결과적으로 이성애자에 비해 동성애자를 더 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이는 합리적 이유가 인정되는 '합리적 차별'이라는 것이다.
반대 의견 "강제성 있는 경우만 처벌해야"
이같은 헌재 결정에 대해서는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도 반대 의견이 개진됐다. 헌재의 합헌 결정은 5대4라는 아슬아슬한 숫자로 이뤄졌다.
김이수 재판관 등 4인의 헌법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심판 대상 조항은 범죄 구성 요건으로 오로지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이라고만 규정함으로써, 형법이나 성폭력처벌법에서와 같이 '강제성을 수반하는 행위'만이 이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음란한 행위'까지 이에 해당하는지를 법 해석 기관에 맡겨놓고 있다"며 "이는 형벌 체계상 용인될 수 없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김 재판관 등은 "'강제력에 의한 추행'과 '당사자 간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는 그 보호 법익이 다를 뿐 아니라 가벌성(처벌 가능성) 및 비난 가능성에 있어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고, '강제력에 의한 추행'도 그 강제성의 정도에 따라 처벌을 달리 해야 마땅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성이 없는 '당사자 간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가 강제성이 가장 강한 '폭행·협박에 의한 추행'과 동일한 형벌 조항에 따라 동등하게 처벌되는 불합리성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재판관 등은 이어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당사자 간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가 심판 대상 조항의 '추행'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모호하지만, 만약 이러한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까지도 '추행'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이 경우에는 군의 전투력 보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형사 처벌의 범위에서 제외함이 마땅하다"고 '계간 등 추행'을 처벌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설사 아직 우리나라 군의 현실을 고려해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도 형사 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더라도 '군영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만 처벌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이 부분과 관련 "형사 처벌은 최후수단성이라는 원칙에 맞게 해야 하고, 구체적 법익을 침해했을 때 하는 것"이라며 "군인의 영내 성관계가 형사 처벌을 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군기 등에) 위험한 행위라면 이성 간 성관계도 처벌하지 않을 합리적 이유가 없다. 영내 질서를 해쳐서 군의 특수성을 침해한다고 본다면 이성 간의 관계에도 적용해서 차라리 영내에서의 모든 성행위를 금지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법이 똑같은 인간을 다르게 처벌하는 것"이라는 일침이다.
홍 교수는 다만 "형사 처벌 외에 징계 등 다른 수단도 있다"며 "저는 개인적으로 징계 사유 정도는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동성이 아닌 이성 간의 직장 내 애정 행위 등도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회사 사규에 따라 징계 대상은 되고 있지 않느냐는 맥락이다.
한편 이날 결정에서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은 계간과 마찬가지로 동성 사이의 성적 행위에만 적용되고, 또한 '군인' 사이의 성적 행위에만 적용될 뿐 '군인'과 '민간인' 사이의 사적 생활관계에서의 성적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이 조항의 의미를 한정하는 해석도 했다.
현행 군형법이 "항문성교 등 추행"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추행"이 '당사자 간에 합의된 음란 행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면, 이성 간의 '항문 성교' 역시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군인·군무원 등에 대해 '항문성교 등 추행'을 하면 처벌하는데, 그러면 이 조항이 군인 간의 '추행'만을 대상으로 하는지, 군인과 민간인 사이의 행위도 규율하는지 명확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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