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13명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프레시안 books]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펴냄)는 모든 것이 끝난 곳에서 시작한다.

1999년 4월 20일의 콜럼바인 고등학교가 출발점이자, 그라운드 제로다. 이날 이곳에서 13명이 사망했고, 24명이 부상당했다. 두 명의 학생이 동급생과 교사에게 총질했다. 책의 지은이 수 클리볼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사건 가해자 가운데 하나인 딜런 클리볼드(Dylan Klebold)의 어머니다. 이 책은 미국 현지에서도 ‘가해자의 어머니가 17년 만에 침묵을 깼다’는 식의 설명으로 큰 화제가 됐다.

책은 비통함으로 가득하다. 살인자의 엄마는 17년을 악마가 되어 버린 아들에 매달렸다. 왜 컴퓨터를 좋아하고, 대학 입학을 앞둔 아이가 악마가 되었을까. 왜 사려 깊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부모와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을까. 엄마는 끊어지는 애간장을 부여잡고, 해답을 찾아 여생을 방황했다. 이 책은 그 절절한 대답이다.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나뉘었다. 앞부분이 사건 직후의 충격을 다룬다면, 뒷부분은 충격을 직시한 후 짚어가는 여정이다.

기쁨으로 키운 아이가 살인마로 변한 직후, 일상은 무너진다. 엄마는 그 과정을 솔직하고 상세히 책에 풀어놓았다. 내 아이가 그랬을 리 없다는 믿음은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가 살인마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보다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좌절감에 엄마는 오열한다. 읽는 이는 상상만으로도 이 대목에서 저자가 엄청난 용기를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들을 잃은 인간으로서 가질 법한 자연스러운 비애를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믿음은 경찰의 최종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무너진다. 경찰은 두 아이가 어떻게 다른 아이들을 죽였는가를 상세히 설명했다. 내 아이가 결코 에릭(딜런의 공범이며, 대량 살인을 주도적으로 계획한 인물)에게 억지로 이끌려 이 살상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내 아이가 입에 담기 힘든 행동을 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었음을, 내 아이가 더 많은 아이를 죽이기 위해 학교에 폭탄을 설치했음을 알아낸다. 이제, 딜런은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애써 부여잡았던 모든 믿음의 끈이 무참히 끊어져 버렸다.

▲ 콜럼바인 총기 사건 가해자의 내면을 다룬 영화 <엘리펀트>.

완전히 무너질 뻔했던 저자는, 그제야 현실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이제 저자는 본격적으로 딜런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왜 내 아이가 괴물이 되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전문가를 만나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아들의 본모습을 하나 둘 알아가게 된다.

에릭이 죽이기 위해 학교에 갔고, 죽이다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면, 딜런은 죽기 위해 학교로 갔다. 죽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죽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딜런은 2년 전부터 죽음을 계획했다. 진학할 대학이 정해졌고, 본인과 가족 모두가 만족했을 때 딜런은 이미 살해에 사용할 총기를 구입해 뒀다. 사건 직전까지도 딜런은 예전과 변함없이 행동했다. 그제야 엄마는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의 의미를 깨닫는다. 내 아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살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을 차근차근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두에게 철저히 숨겼다.

이후 저자는 딜런의 손에 희생된 아이들을 기리기 위해, 딜런처럼 자살의 길로 접어드는 아이를 막기 위해 자신이 안 모든 것을 책에 기록하고, 강연으로 설파한다. 아이가 부모 몰래 절망의 길로 빠져드는 징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FBI의 전문가, 대학 교수와 함께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뿌리를 조사해간다. 저자는 아들의 죽음을 직시하고, 이와 같은 비극의 재현을 막는 것이 살인마 엄마의 도덕적 의무임을 명확히 한다.

이 책은 따라서 청소년 자살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등의 의미를 지닌다. 10년이 넘게 아들의 죽음에 매달린 끝에, 저자는 부모는 아이의 거짓말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알린다. 절망을 향해 돌진하다 순간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대도, 이에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오히려 자살을 최종 결심한 후, 태도를 긍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딜런은 이런 모든 모습을 거쳤다. '이제 괜찮아 질 거야'라고 주변 모두가 안심할 때, 실제 딜런은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그저,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비밀을 철저히 숨겼을 뿐이다.

딜런은 2년 동안 큰 좌절을 겪었다. 그 사실은 누구도 몰랐다. 딜런은 오직 에릭과만 '네추럴 본 킬러 계획(총기 난사 계획)'을 공유했고, 자살 의지를 공유했다. 불행히도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운다고 확신했던 저자도 무너지는 아이의 내면을 알지 못했다. 책의 후반부 내내 저자는 지금 아는 사실을 당시 알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되묻는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고통이 절절히 다가오는 대목이다.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펴냄). ⓒ반비
콜럼바인 총기 사고는 미국 사회에 커다란 물음을 던졌다. 당대의 정치인은 <둠>과 같은 폭력적 게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총기를 규제하지 않는 미국의 현실을 꼬집고, 이 문제를 게임에 돌리는 미국 정치인을 비판했다. 거장 구스 반 산트는 <엘리펀트>에서 두 아이의 모습을 잔잔히 조명했다. 사건은 후대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공대, 샌디 훅 초등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에서도 악몽이 재연됐다.

이 세상 누구보다 이 문제에 매달린 저자는 함부로 이 사건을 단언하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이 게임 중독자였다는 말은 헛소리다. 폭력적인 음악이 사람을 살인마로 만든 게 아님도 명확하다. 총기가 더 큰 피해를 낳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너지는 아이들의 내면을 붙잡고, 그 신호를 알아채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저자는 책 곳곳에 "어떻게 아들이 살인마가 되는 걸 모를 수 있었다는 말이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여러 차례 간접적으로 대답한다. 아들의 자살 징후를 완벽히 알기란 어렵다, 나는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다. 함부로 정답을 찾아가지도 않는다. 저자의 용기에 인간적인 존중심이 생기고, 결국 아들의 아픔과 분노, 잘못을 모두 품은 엄마의 사랑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인간애가 가득한 책이며, 성실한 물음과 끈질긴 조사의 결과가 세밀히 담긴 책이다. 그리고, 세계 최악의 청소년 자살 국가가 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가족을 더 이해하고픈 사람이라면, 특히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관련 전문 서적을 읽기 전에 반드시 체크해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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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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