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북한은 '핵 보유국'인가?

[현안진단] 북한 핵 논란의 종식을 위하여

북한의 최근 행보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5월과 6월 연달아 열린 북한의 조선노동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는 당과 국가의 권력 기구를 개편하고 김정은을 당위원장과 국무위원장이라는 최고 수위에 추대하였다. 세간의 이목은 김정은의 새로운 직함이 갖는 성격과 의미에 쏠렸고, 3대째 세습하는 독재 권력이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선포하는 대관식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미 집권 5년차에 접어든 김정은의 위상과 권력은 새 직함이 무엇이든지 간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내외에 보여주려 한 것은 대관식 그 이상이었다. 김정은은 이번 대관식 행사를 통해 자신의 왕관이 새로 바뀌고 권력 체제가 확고하다는 점보다는 북한이라는 국가의 위상과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을 절실하게 보여주려 했다고 본다.

북한의 이번 당정 권력 기구의 개편은 지난 세기말 이후의 총체적 국가 위기 상황을 감당해 오던 김정일 시대의 비상 운영 체제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김일성 시대와 외형상 유사한 정상 운영 체제를 새로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외교 고립 등 위기가 계속되면서 오히려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를 받는 가운데 당정 권력 기구를 비상 체제로부터 정상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어쩌면 김정은의 만용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는 최근의 일련의 정치 행사나 무력 시위를 통해 나름의 근거를 내외에 보여주려 하고 있다.

북한은 이제 명실 공히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상과 능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내외의 어려움을 극복할 자신이 생겼다는 것이 바로 7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지난 36년의 당 사업을 총화해 보고한 핵심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당정 권력 기구의 정상 체제 전환으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병진 노선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이를 담보하는 핵무기의 실전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통상 최고 국가 기밀에 속하는 '고출력 고체 연료 엔진 지상 분사 실험'(3월 24일), '최대 발사 심도에서의 냉각 발사 체계 안전성 검증 실험'(4월 24일, 북극성-1/SLBM), 최대 상승 고도와 발사 각도 등을 공개한 '중장거리 탄도탄 발사 실험'(6월 23일, 화성-10/ 무수단) 등 성공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관계자들과 기뻐하는 영상을 애써 보여주는 이유다.

한마디로 김정은은 '핵 보유국으로서 북한'은 어제의 북한과 전혀 다른 상대라는 사실을 내외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화성-10'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시험 발사를 참관하던 김정은(가운데) 노동당 위원장이 발사 성공이 확인된 이후 기뻐하는 모습. ⓒ노동신문

북한의 병진 노선이 전개될 방향

수십 년 형성된 북한의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을 고려하면, 핵 보유에 환호하는 북한 지도부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 7차 당 대회 사업 총화 모두에 첫 수소탄 시험(1월 6일)과 광명성 4호의 발사(2월 7일)를 '반만년 민족사의 특이할 대사변'으로 언급할 정도다.

북한은 이런 자신감으로 당과 국가의 구조를 정상적 체제로 개편했다. 이제부터는 병진 노선 하에 본격적으로 북한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차례다. 병진 노선은 기본적으로 핵무기로 외부의 위협에 대처하면서 재래식 전력 유지에 드는 군비를 감축하여 경제 건설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동안에는 국제 제재와 압력으로 힘들지만, 일단 실전 활용 가능한 무기가 완성되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이 북한의 계산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국제 사회의 대북 규탄과 제재 결의의 계기가 되었던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시험의 수요가 낮아지며, 북한은 이를 '핵 실험 동결 조치(Moratorium)'라는 외교적 레버리지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 현재 북한이 중국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핵무기의 마지막 단계 기술 확보 노력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다.

북한의 핵 실험 동결 카드는 북-중 정상 회담, 북-미 대화, 북-일 수교 협상 등 다양한 외교 목표를 겨냥하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과 미-중의 갈등이 구조화되는 한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로 상징되는 국제 사회 전반의 고립주의 경향이 확산되면 대북 제재에 대한 국제 공조의 유지를 어렵게 할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병진 노선의 전략은 재래식 전력 부문의 군비 축소, 특히 병력 감축을 통해 민간 부문 경제 건설에 노동력을 추가 투입하는 방법이 예상된다. 북한이 강력한 국제 재제를 받고 있어 경제 건설을 위한 외부로부터의 투자와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며, 정신력을 강조하는 속도전만으로는 경제 건설에 필요한 내부의 자원 동원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병력 감축은 안보상의 리스크만 관리 가능하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옵션이 된다. 물론 군축을 통해 절대 열세인 남북한 간 재래식 전력의 격차를 줄이려는 북한의 속내도 간과할 수 없다.

과거 김일성도 두 번의 대표적 병력 감축 제안을 한 적이 있다. 1987년에는 남북이 총병력을 단계적으로 10만 명으로 제한하자고 했고, 1994년에도 같은 제안을 하며 주한 미군도 같은 비율로 축소하자고 한 바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행보를 모방하는 김정은의 행태와 병진 노선 자체의 논리로 본다면 북한이 재래식 군축이나 병력 감축을 추구한다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7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사업 총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이) 제도 통일에 매달린다면 통일대전도 불사하겠지만 연방제로 평화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남북 군사 회담을 제안하고,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당 외곽 기구였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헌법 기구로 개편한 것 등은 이런 예상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북한의 핵무기가 완성된다는 것은 안보적 위협과는 별개로 핵 실험 동결(Moratorium)이나 병력 감축 카드와 같이 북한이 외교적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옵션을 새로 만들어주는 반면, 우리에게는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 공조 유지에 큰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지난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AP=연합뉴스

북한 핵 논란의 종식을 위하여

우리는 조만간 지금까지의 북한과는 전혀 다른 북한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십 년 북핵 문제에 대해 규탄하고 논의해 왔지만 막상 핵무기 실전 능력을 갖춘 북한을 대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논의는 전무하다. 오히려 최근에는 북한의 항복이나 붕괴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수년간 소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북핵 문제가 방치된 탓도 크지만, 이제 '전략적 인내'를 넘어 북핵 위협의 현실화라는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비생산적 논란을 정리하고 실질적인 북핵 해법을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첫째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다. 우리가 북한이 원하는 대로 그들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북한의 핵무기를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면서 북한을 '불법적 핵 보유국'으로 규정하면 될 일이다.

따라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궁극적인 결론이 되어야 한다. 핵 보유국 지위 인정 여부를 넘어 북한은 이미 우리를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핵 능력 국가'(nuclear capable country)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핵 위협까지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할 수는 없으며, 이를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는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북 제재가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사실 역사적으로나 국제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추진하는 제재는 없다고 한다. 대부분 제재의 효과는 장담 못하지만 추후 외교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서 압박과 제재를 동원하는 것이다. 대북 제재 국면을 관리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에서 협상이 시작되도록 관련 상황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대북 제재의 끝은 북한의 항복이나 붕괴가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란이다. 북한이 핵 포기 의지가 없기 때문에 대북 협상은 소용없다느니, 북한이 협상에 앞서 먼저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이 이어진다. 북한은 최근 헌법과 당 규약에 핵 보유국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북한의 어느 누구도 비핵화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의 비핵화는 이제 지도자의 의지 여부의 문제를 넘어 위헌이며 반당 행위가 되어 버렸다. 일견 북한 비핵화 길이 막힌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따져 보면 핵무기 자체가 우리에게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에게 적대적인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맹방인 미국 핵무기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북한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 적대 관계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과 적대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의 핵 위협을 높이는 길이라는 점에 인식이 미쳐야 할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장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자주권과 생존권이 위협받지 않으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북한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남북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과연 우리는 북한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근본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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