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찮은 탈북자 사건, 민변도 '종북'이라고?

[정욱식 칼럼] 무엇이 탈북자 인권을 지키는 길인가

이른바 '북한 종업원 집단 탈북'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 논란은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소재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던 북한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출해 4월 8일 한국에 입국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건 발생 80여 일이 지나면서 논란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반면에, 정부 여당과 일부 언론은 인신보호 구제 청구에 나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 대한 마녀사냥에 나섰다. '종북'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권침해 단체'라는 딱지까지 붙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따져봐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지배인을 포함한 13명이나 되는 종업원이 이틀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것부터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순식간에 집단 탈북을 감행한다는 것은 감시망이 촘촘히 짜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개 1개월 정도가 걸리는 국정원의 현지 조사가 이틀 만에 마무리되었다는 것도 이상한 대목이다.

또한 총선을 닷새 앞두고 통일부가 청와대의 지시로 집단 탈북을 발표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기존에는 정부가 탈북 주민들과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탈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집단 탈북은 우리 정부가 3월 8일 발표한 단독 대북 제재의 파급 효과"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제재의 효과를 부각시켜 총선 승리를 도모하려고 탈북자 및 가족의 인권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한국으로 입국한 북한 식당 탈북자들 ⓒ통일부

사건 직후부터 '남조선의 납치극'이라고 주장한 북한은 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하면서 같은 식당에서 일한 종업원과 가족들을 동원해 여론전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북한의 한 단체는 국정원의 조사를 받는 12명의 여성 종업원이 단식투쟁을 벌이다 일부는 실신했거나 사망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듯 의문은 꼬리를 문 반면에 정부 당국의 속 시원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자 민변 등 국내 일부 단체들은 변호인 접견을 요구했다. 자유 의사에 의한 탈북 여부, 종업원들의 건강 상태, 종업원들의 현재 심정 등을 확인하기 위해 법치주의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불허했다.

기실 이때 국정원이 민변의 접견을 허용했다면 논란은 이렇게 커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국정원은 자신이 인정한 변호사의 접견만 허용하면서 '자유 의사로 탈북했다', '종업원들은 건강하다'는 등의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6월 하순이 되면서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변이 제기한 인신보호 구제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21일 심문에 종업원들을 출석시키라고 국정원에 통보한 것이다. 그러자 국정원과 보수 언론은 민변을 종북 단체로 몰아붙였다. 종업원들이 법원에 출석해 '자유의사로 탈북했다'고 말하면, 북한 내 가족이 처형당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북한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대리인을 출석시키기로 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민변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탈북자단체연합은 민변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이유로 검찰에 고발했다. 민변도 국정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내의 대표적인 인권 단체인 민변을 인권침해 단체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민변이 종업원들의 북한 내 가족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27일 국회에서 민변의 인신구제 청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더구나 "이 문제는 탈북자에게 당신의 생명을 선택할 것이냐, 가족의 생명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이 아니냐"라는 한 국회의원의 극단적인 질문에 "네"라는 답변까지 내놓았다. 같은 날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이와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도 거들고 나섰다. "지금 우리의 분열을 꾀하며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들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민변을 특칭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종북 척결'을 외치는 것 같아 크나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적대적 분단체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어 그 매듭을 풀기가 대단히 어렵다. 모순은 다차원적이면서도 복합적이다. 우선 남북한 당국 사이의 대립과 경쟁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제재의 효과를 과시하기 위해 집단 탈북을 서둘러 공개했다. 그러자 북한은 종업원 가족들과 동료 직원들을 동원해 '납치극'이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맞서고 있다.

이러한 충돌 장면은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남북한 당국의 프로파간다 전쟁에 북한 종업원과 그 가족들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드는 대목이다.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집권 세력과 국정원의 정치화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는 2012년 대선에서 불거진 댓글 사건과 'NLL 파동', 이듬해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국정원의 유오성 간첩조작, 북한 무인기 파동, 통합진보당 해산 등의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집단 탈북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들은 종업원들이 식당에서 벗어난 지 이틀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것은 국정원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관례를 깨고 다음날 바로 청와대의 지시로 집단 탈북을 발표한 것은 닷새 앞으로 다가온 '총선용'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북한 인권문제를 둘러싼 보혁 간의 갈등도 이번 논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부 보수 세력은 북한 인권문제를 북한과 국내 개혁진보 진영을 싸잡아 공격하는 무기로 삼아왔다. 이에 반해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의 의도에 경계심을 표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국 인권문제 개선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북한 인권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이번 논란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은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해왔던 민변이 무슨 자격으로 집단 탈북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느냐"고 힐난한다. 반면 진보 진영은 집단 탈북 발표 때에는 인권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정부가 최근에는 인권을 운운하면서 종업원들의 법정 출석을 불허하는 행태를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더구나 이번 사건의 법정 다툼의 두 주체는 국정원과 민변이다. 국정원은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오성을 간첩으로 둔갑시키려고 했다가 민변이 조작 사건임을 밝혀내면서 크게 망신을 당한 바 있다. 그리고 원한을 품은 국정원은 보수 언론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등에 업고 민변을 '종북'과 '인권침해단체'로 몰아붙이려고 한다. 간첩조작 사건에서 국정원의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했던 검찰도 탈북단체들의 민변 고발을 기회로 탄압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된다.

국정원은 종업원들을 법원에 불출석시켰고, 조사 기간인 2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나원에 보내지 않고 있으며, 관례적으로 이뤄져 왔던 통일연구원의 인터뷰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법률 대리인을 통해 '자유의지로 탈북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우려해 법원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간접적인 얘기만 흘리고 있다. 이렇게 국정원이 종업원들을 꽁꽁 숨김에 따라 진실도 밝혀지기 힘들게 됐다. 다만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탈북자들의 인권, 한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또다시 시험대에 올려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를 슬기롭게 풀기 위해서는 민변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격부터 자제되어야 한다. 민변이 '탈북자와 북한 내 가족의 인권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식의 공세는 근거도 없고 합리성도 상실한 것이다.

일각에선 인신보호 구제가 예비 탈북자들에게 심리적인 공포심을 안겨줘 탈북을 저해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유가려 씨 사례는 이 두 가지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오성 씨 여동생인 유가려 씨는 국정원의 합심센터에서 장기간 구금되었다가 인신보호 구제 절차에 의해 풀려난 바 있다.

이게 2년 전의 일인데, 그 이후로 이 문제로 인해 탈북자 수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는 없다. 오히려 작년부터 다시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이 통일부의 발표 내용이다. 또한 민변이 간첩조작사건을 밝혀내고 이 과정에서 인신보호 구제 신청을 통해 국정원에 의해 탄압받던 탈북자를 구제한 것 자체가 탈북자 인권 증진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또한 북한 종업원이 법정에 출석해 '자진 탈북' 의사를 밝히면 북한 내 가족이 위험이 처할 것이라는 주장 역시 지나친 감이 있다. '자진 탈북'이라는 주장은 국정원에 의해 이미 나온 바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당사자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정원이 열린 태도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종업원들이 다른 얘기를 할까봐 두려워 그들의 보호(?) 기간을 늘릴수록 국정원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질 것이다.

*위 칼럼은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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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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