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는 헬조선, 2017년 대선이 갈림길

[프레시안 books] <말과 칼>

정욱식은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 군축' 운동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온 이 분야의 전문 지식인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언젠가, 지금은 정의당 의원이 된 김종대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과 그를 묶어 '우리시대의 병가(兵家)'라고 일컬은 적도 있다. 그런 그가 <말과 칼>(유리창 펴냄)이라는 새로운 책을 냈다.

'두 가지 한국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부제를 가진 <말과 칼>은 책의 내용과 구성 양면에서 독특한 시험을 했다. 300쪽 남짓한 이 책의 반쪽은 '헬조선편'이고, 또 다른 반쪽은 '웰조선편'으로 편집되었다. 그래서 앞 뒤 표지가 다르다. 이 면에서 볼 때 다른 면은 책이 거꾸로 되어 있다. 땅콩집(duplex home)처럼 한 권의 책 속에 내용이 상반된 두 권의 책이 합본된 이유는, 두 가지 사고 실험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명료히 보여주려는 의도에서다.

원래 사고 실험은 과학소설(SF) 작가들의 전유물로, SF는 과학이나 과학 기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어떤 가설 내지는 개념(idea)을 미래 사회에 투사함으로서 현실을 되비쳐보거나 현실 세계가 나아갈 방향과 교훈을 얻고자 한다. 이와 같은 사고 실험에서 출발했기에 <말과 칼>은 일종의 허구(픽션)를 품게 된다. 지은이가 쓴 '저자의 말'을 보자.

단체 활동을 하면서 써온 책이 벌써 10권을 훌쩍 넘었다. 분류하자면 모두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다. 대부분 존재감이 별로 없는 책들이다. 사람들이 좀 더 재밌고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쓸 수는 없을까? 소설이 떠올랐지만, 이건 내 능력 밖이었다. 그래서 독특한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소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논픽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 말이다. '세미 픽션(semi fiction)'이라는 말과 '소셜 픽션(social fiction)'이라는 말을 떠올려 봤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소셜 픽션은 외국에서는 하나의 장르가 되고 있다는 한 출판인의 말을 듣고는 써보기로 했다. 뒤집어 읽으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었다. 이 책의 '형식'이다.

다음(DAUM) 백과사전은 소셜 픽션을 "특정한 사회 이슈 또는 공간을 주제로 제약과 조건 없이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사회 혁신 기획"을 담은 소설이라고 밝히면서, 소셜 픽션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가치 또는 조건을 이렇게 명시한다.

첫째, 소셜 픽션의 가치는 제약 조건 없이 먼 미래를 상상한다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이 방법은 어려운 사회 문제의 해결을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둘째, 소셜 픽션은 비전과 목표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데, 이 방법은 일이 방향을 잃지 않고 오래갈 수 있게 해준다. 셋째, 긍정적 상상이다. 사회나 조직에 대해 긍정적 상상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미래가 적극적 구성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키우게 되어 사회 구성원들의 비전에 대한 관여도를 높이고 변화를 향한 행동도 더 많아지게 한다. 넷째, 소셜 픽션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상상하도록 함으로써 공공 정책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 류제승(오른쪽) 국방부 정책실장과 토머스 밴달 미8군 사령관이 지난 3월 4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에서 사드 배치 협의를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 구성 협약 약정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2017년 12월 20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말과 칼>은 내년에 있을 이 선거에서 야권 연대(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후보가 당선된 경우와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경우, 남한의 사드(THAAD) 배치 결정이 부르게 될 한반도와 동북아의 운명을 사고 실험에 부치고 있다.

이 책에서 새누리당 당선자는 사드 배치에 적극적이고, 야권 연대의 당선자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새누리당 당선자가 '헬조선편'의 주역을 맡았고, 야권 연대의 당선자가 '웰조선편'의 주역을 맡았다. 하지만 두 편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분기하기 이전인 선거 국면에서 새누리당이 사드 배치에 다걸기를 한 것과 달리, 야권 연대는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 정론을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야권 연대는 사드 배치 '찬성․반대․신중론'으로 나뉘어 우왕좌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론으로 사드 배치 반대를 정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의당 역시 마찬가지다. 정의당만이 사드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였다." (웰조선편, 10쪽)

2017년 선거는 새누리당이 장기 집권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분수령이지만, "경제가 개판"(헬조선편, 8쪽)이 되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곤경을 "안보 문제, 북한 문제로 돌파"(헬조선편, 15쪽)하고자 새누리당이 꺼내든 것이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한미 양국이 '암묵적'으로 합의를 본 사드 배치 결정이다. 미국은 한미가 공식적으로 사드 배치에 합의한 것처럼 말을 흘리고, 한국은 그때마다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3노(NO)'로 일관하지만, 이면에서는 공식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사드 배치를 선거 쟁점으로 내세우는 속셈에는 안보 프레임으로 결집될 50대 이상의 보수층이 2030 세대보다 350만 명이나 많을 뿐 아니라, '신냉전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2030 세대의 북한 혐오가 강하다는 셈법이 깔려 있다.

누가 승리를 차지하든 차기 정권은 박근혜 정권이 암묵적으로 미국과 합의한, 사드 배치 여부라는 중대한 시험을 마주하게 된다. 작중의 새누리당 대통령 당선자 손시열은 당선자의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대화를 통해서도, 제재를 통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드 배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헬조선편, 24쪽)라고 말하며, 사드 배치를 강행한다. 손시열은 사드 배치 뿐 아니라 한국의 핵무장 추진 가능성을 을러대며, 1991년 남한에서 철수한 전술핵을 재배치 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한다.

'헬조선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한에 사드를 배치해야만 하는 미국의 강한 필요와 새누리당의 대북 강경책이 결합하면서 끝내 사드 배치를 강행하게 된다. 그 결과 한국은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휘청거리게 되고, 미국 또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라는 원치 않는 전략적 손실을 얻게 된다. 북한의 주판알은 남한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반길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인 손해라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사드가 남조선에 들어가면 보시다시피 남조선과 중국과의 관계, 중미 관계 모두 악화됩니다. 러시아도 계속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 공화국에는 큰 전략적 이익입니다. 그리고 조중 간의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관계도 강화될 것입니다. 실제로 남조선이 사드 배치를 발표한 직후부터 단둥에서 세관 및 겸역 절차가 눈에 띄게 약화되면서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만난 진창이도 조중 수뇌 회담을 비롯한 양국 간 관계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헬조선편, 89쪽)

한편, '웰조선편'에서는 야권 연대의 당선자인 최서희가 남한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힐러리 클린턴 정부 안의 매파(국방성․CIA)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물리친다. 사드를 남한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공세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설득할 논리가 있어야 한다. 최서희는 1999년 10월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 윌리엄 페리가 작성했던 '페리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하자고 제안한다. "포괄적인 관계 정상화 및 평화협정을 체결을 단계적으로 추진"(웰조선편, 54쪽)하고자 했던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이 '새로운 제안'으로 받아들이면서 본격화 되었으나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백지화 된 바 있다.

최서희는 상호 군축과 한미 군사 훈련 축소․참관 등의 구체적인 유인책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인 '체제(안보) 위협'을 해소해주고, 대신 북한으로 하여금 지그프리트 해커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의 '3개의 노(NO)' 원칙을 수용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한다. '3개의 노'란 ① 북한이 핵무기를 더는 추가하지 않고 ② 핵무기 성능을 개선하지 않으며 ③ 외국에 핵무기 판매와 기술 이전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북한의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세 가지 원칙으로 되어 있다.

지은이는 현재 한국의 위기가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가 맞물"려 있는 형국이라면서, "이 복합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살길은 제2의 북방 정책"(이상 웰조선편, 141쪽)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주도했던 냉전 시대의 '지정학적 감옥'에서, 중국이 부상하는 반전(反轉) 시대의 '지경학적 허브'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으로 반전의 시대가 가져올 천금 같은 기회를 박찬다면, 우리는 김정은이 이렇게 장담하는 것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제도(체제) 경쟁은 이제부터야. 남조선 경제는 저렇게 엉망이지, 젊은이들은 무슨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고 있지. 난 처음에 남조선 애들이 헬조선이니 뭐니 해서 우리 공화국을 모독하는 얘긴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남조선은 저렇게 꼴아 박고 있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있으니 이제 한 번 해볼 만한 거 아냐." (헬조선편, 91쪽)

▲ <말과 칼>(정욱식 지음, 유리창 펴냄). ⓒ유리창
지은이는 북핵과 엠디(MD, 미사일 방어 체제)에 대해 10여 년 넘게 공력을 쌓아왔다. 그 공력을 쉽게 풀어 쓴 <말과 칼>은 지은이의 '새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감이 없는 책은 결코 아니다.

첫째, 이 책은 한국에서 '소셜 픽션'을 표방한 선구적인 작품이다. 앞으로 이 장르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향후 소셜 픽션을 이야길 할 때, 첫 머리에 거론될 책이다. 둘째, 이 책은 내년에 있을 선거전의 일면을 미리 보여준다. 야권 후보는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사드 배치를 쟁점화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정밀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N포 세대 청년들의 경제적․심리적 '박탈 담론'으로 전유된 헬조선 담론에 근본적인 분석틀과 극복 방향을 제공한다.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이 '신냉전 세대'와 겹치는 한, N포 세대가 헬조선에서 헤어날 길은 없다.

이 책 '헬조선편'과 '웰조선편'의 결론은 한반도의 군축과 평화 운동이 헬조선의 출구라는 것을 한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다. 헬조선은 분단 70년을 훌쩍 넘기고 답보된 통일 운동, 70년 넘게 극한 대결을 유지해온 한반도의 전시 상태가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다. 평화 운동 없는 분단 상태가 헬조선이 되어 한국의 미래 세대를 억누르게 되리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사고 실험이 아니고서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우리는 이 중대한 암묵지를 오랫동안 모른 체 외면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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