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정치인 때문에 '이상한 나라'가 되고 있다"

[이 주의 조합원] '정치하는 프로그래머' 변규홍 씨

프레시안 협동조합 6월 가입자 중 유일한 20대. 단박에 '이 주의 조합원' 대상으로 정했다. 변.규.홍. 습관적으로 이름 석 자를 검색했다. 헐! 구글신은 그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진, 관련 기사까지 한 번에 제공했다.

'정치하는 프로그래머'이자, 녹색당 청년조직 '청년녹색당' 전국위원. 카이스트(KAIST)에서 공부했음. 관심사는 IT와 전산, 대학과 청년 문제 등.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 현재 병역특례 업체에서 군 복무 중.

범상치 않았다. 시대와 호흡하는 인물이던가, 문제적 인물이던가 둘 중 하나였다. 궁금했다. 지난 20일, 변규홍 조합원을 만났다.

▲ 6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신규 조합원이 된 변규홍 씨. ⓒ프레시안(이명선)

"'카이스트 악령'과 함께한 학창 시절"

변 조합원은 지금은 학교를 떠났지만, '서남표식 개혁'이 이뤄지던 시절 카이스트를 다녔다. 자신을 "서남표 1세대"라고 말한 그는 당시를 "'카이스트 악령'과 함께한 학창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서남표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명예교수는 2006년 7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카이스트 총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총장 취임 후 징벌적 등록금제(차등 수업료제)와 100% 영어 강의 등을 시행하며 학생들을 경쟁 교육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2011년 한해에만 4명의 학생이 자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관련 기사 : '서남표식 개혁'? 알고보면 '카이스트판 MB식 전횡')

"서남표 체제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무한비하향(無限非下向)' 경쟁이었다. 기준에 미달한 경우, 실패를 만회할 수 없었다. 재수강하거나, 학기를 연장할 방법도 없이 밑바닥까지 떨어뜨려 재기불능 상태를 만들었다. '더는 기회가 없다'는 압박감이 비극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이후 학교 문화도, 학생 간 정치도 무너졌다."

후배와 친구의 자살을 목도한 변 조합원은 이듬해 학교 문화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실패를 위로해 주며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던" 선후배와 동기가 사라진 것. 그는 "무너져 가는 것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학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동아리연합회 회장 등 학생회 일에 집중했다.

"흔히 말하는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학교의 일방적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학생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학생회는 최소한의 민주성을 가지고 운영되어야 하며, 크든 작든 회의 내용은 반드시 기록되고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변 조합원의 생각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회의 속기록 공개에 대해 "'대의 민주주의'를 내세워 밀실회의를 정당화"하는 등 이견이 많았다.

"기록은 중요하다. 컴퓨터가 수행한 모든 활동 내역은 자동적으로 기록된다. 또 각종 프로그램을 이용해 변경/삭제/생성된 것을 감시한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록을 통한 재확인과 유지보완이 가능해야 한다."

▲ 카이스트 학생과 서남표 총장의 간담회가 진행된 2011년 4월 한 학생이 총장의 사과와 개혁 폐기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하는 프로그래머'를 꿈꾼다

변 조합원은 학생회 활동을 하며 "정치는 남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것을 직접 협상과 합의를 통해 얻는다는 점을 배웠"다.(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70호 '진보 3당원을 만나다' 중) 이진법을 사용하는 컴퓨터처럼 "내가"와 "직접"이라는 두 단어가 무한 연산을 했을 터. 무엇보다 녹색당 강령이 그린라이트(green light)가 됐다.


"대표자를 뽑아서 일을 맡기는 대의민주주의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직접·참여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녹색당 강령 '직접·참여·풀뿌리민주주의' 중)

그는 친구 진달래 씨(전 서울대 동아리연합회 회장, 6.4지방선거 인천시의원 녹색당 비례대표 출마)를 따라 강남 가듯 당원이 됐다. 변 조합원은 당시만 해도 "원자력 발전소 덕에 전기를 싼값에 쓰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녹색당과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20대 청년이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채 피폭됐다는 뉴스에, 원자력안전위원회 속기록을 직접 찾아볼 정도로 '탈(脫) 원전주의자'가 됐다.(관련 기사 : 20대 직원 입사 한달 만에 피폭…업체는 숨기기 급급)


"사고 업체는 국정감사에서도 몇 차례 지적을 받은 곳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속기록에 업체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나름대로 투명한 나라다. 하지만, 이를 대중에게 알리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정당이 없다. 녹색당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리고 싶다."

그는 2년째 청년녹색당 전국위원으로 활동하며, 녹색당에서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당은 이번 4.13 총선에서 변 조합원이 제안한 '1인2표 누적투표제'를 적용해 비례대표 후보 다섯 명(황윤, 이계삼, 김주온, 구자상, 신지예 등)을 선정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당 득표율 미달로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에서 '정치'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신뢰하는 후보를 고르고, 그 사람을 국회에 들어가게 하는 것도 정치다. 직업이 정치가 아닌 사람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훅, 질문을 던져봤다. 직접 정치할 생각은 없느냐고. 변 조합원도 에두르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한 번은 해보고 싶다. 직업을 '정치'로 삼는다면, 최대한 짧게 할 생각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경우, 정치가 직업인 사람이지만 정치와 동떨어져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란, 밥하고 빨래하는 일상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이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을 바꾸겠다고 정치를 하니, 점점 '이상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 팝아트 작가 이하 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 ⓒ이하

"조합원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변 조합원에게 <프레시안>과의 인연을 물었다. 그는 대뜸 지난 4월 9일 <프레시안>에 실린 이계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과 문화학자 엄기호 박사의 대담을 언급하며, 자신이 속기했다고 말했다. 변 조합원이 속기한 내용을,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 최종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관련 기사 : "왜 녹색당 찍냐고?" "확 뒤집어야 사니까!")


"4.13 총선 전, 녹색당의 교육 정책을 알리고자 한 대담이었다. 기사가 발행된 뒤, <프레시안>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러던 중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광고 없는 기사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마침 보너스를 받은 게 있어, 주저 없이 가입했다. 물론, <프레시안> 기사는 녹색당 당원이 되기 전부터 보고 있었다."

이어 그는 "프레시안 조합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며 구내식당과 편의점 등 무너지고 있는 대학생활협동조합을 지적했다.

"전국 대학가에 '아침밥 1000원' 바람이 불고 있다.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매끼 밥을 만드는 노동자의 처우는 어떨까. 서울대는 밥값을 1000원으로 낮추면서 생기는 손실은 학교 측이 후생복지기금 등을 출연해 메울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라는 허울에 소외된 구성원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협동과 상생을 통한 최상의 복지가 무엇인지 같이 얘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협동에 대한 고민만큼 변 조합원이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프레시안은 다양한 민주주의 시스템을 실험할 수 있는 그릇(플랫폼)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협동조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조합원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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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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