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16주년, 달라진 북한을 상대하는 법

[정욱식 칼럼] 6.15 국가 기념일 지정 마땅하다

이제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분단 이후 최초로 정상 회담을 하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한 지 어느덧 16년이 지나가고 있다. 16년간의 시간을 반으로 나누어 복기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반기에는 '웰조선'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반면에, 후반기에는 '헬조선'의 절망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남북한은 본격적으로 화해 협력 시대로 접어들었고 민족의 소원인 통일의 이정표도 세웠다. 남북 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하나둘씩 풀면서 화해 협력하고 평화 공존하면서 점진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히 정부 간 관계나 남북 경제 협력 업체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꿈에도 그리던 가족과 친지를 만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북한에 갈 수 있었다. 남북한 당국과 민간은 휴전선을 넘나들면서 6.15와 8.15를 함께 기념하고 협력을 다짐했었다. 국제적으로도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6.15 선언을 지지할 정도로 크게 주목받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보수 세력은 2000년 6.15 선언 직후부터 대북지원을 비롯한 남북 화해 협력 정책을 '퍼주기'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남북 정상 회담을 '뒷돈을 주고 한 것'이라니 6.15 선언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니 하면서 정치 공세에 몰두했다.

▲ 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 회담을 위해 평양을 찾은 김대중(오른쪽) 대통령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영접하는 모습. ⓒ연합뉴스

바로 이 지점에서 6.15 공동 선언의 지독한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남북한의 화해 협력'이 본격화된 동시에 '남남 갈등' 역시 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남남 갈등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사상 최초의 민주적 정권 교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리고 남북 대결로 기득권을 유지했던 세력이 만들어낸 정치적 현상이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갈등은 통합의 전제이다. 그러나 6.15 선언 이후 보수 세력이 보여준 행태는 분열을 위한 갈등의 조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그토록 신봉한다는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건강하고 온전한 민주주의의 발전 없이는 남북 관계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그 결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멀어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고령의 많은 이산가족들은 평생의 한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던 북한은 언제부턴가 대다수 국민이 갈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한국 경제의 블루오션으로 일컬어지던 남북 경협도 멈춰 섰다. 관리하고 해결할 수 있었던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이제 손대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렸다.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와 동북아 공동체를 연결하는 '교량 국가'를 꿈꿨던 대한민국은 또 다시 동북아 신냉전의 한복판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잃어버리고 정치적 구호로서의 통일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게 남북한의 화해 협력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를 성공적으로 풀어냈던 6.15 시대로부터 교훈을 추출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정치적 색안경을 벗고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말이다.

일각에선 햇볕 정책이나 6.15를 과거의 일로 치부하려고 한다. 북핵 문제를 비롯해 많은 상황이 6.15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그 적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00년의 북한과 오늘날의 북한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다. 크게 두 가지, 즉 핵과 식량난의 교차가 눈에 띈다.

먼저 16년 전에 북핵 문제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관리되고 있었던 반면에, 오늘날의 핵 문제는 괴물처럼 커졌다. 또한 당시 북한의 식량난은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참혹했던 반면에, 오늘날 북한의 식량 사정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이렇게 달라진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이냐는 쉽게 답할 수 없지만 결코 외면할 수도 없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북한만이 아니다. 북한을 상대하는 남한 정권의 변화 역시 중차대한 문제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 의지가 실종되었거나 흡수통일 및 국내 정치적 이용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다. 하여 '달라진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이냐'는 질문은 '한국은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는 자성적 질문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답을 구할 수 있다.

6.15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길어 올릴 수 있다. 과거가 없는 현재란 있을 수 없고, 미래는 현재의 재구성을 통해 만들어진다. 대북 정책을 비롯한 대외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햇볕 정책을 부정하고 6.15를 폄하한 결과가 어떤지는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대로 계승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햇볕 정책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6.15의 진정한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마침 야당 의원 58명이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공동 선언을 채택한 6월 15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했다. 여당과 박근혜 정부는 야당이 내민 손을 잡기를 바란다. 그래야 달라진 북한을 상대할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생긴다.

평화적 통일은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할 때 낭독한 헌법상의 대통령의 책무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가 최근 신작 <말과 칼 : 헬조선편, 두 가지 한국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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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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