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6.15와 8.15에 달렸다

[평화통일시민강좌] <1> 정창현 국민대학교 겸임교수

2015년은 6.15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00년의 한반도는 남과 북 사이에 화해와 교류협력, 평화의 기운이 넘쳐났으며 통일논의가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후 남북의 당국과 민간 교류는 다 끊겨 버리고 남북관계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분단 70년, 광복 70년, 6.15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다시금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나아가 통일을 모색하기 위해 '평화통일시민행동'에서 '평화통일시민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모두 6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강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첫 강연은 지난 10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정창현 국민대학교 겸임교수가 '남북정상회담, 곧 다시 볼 수 있을까'를 주제로 남북정상회담의 경과와 가능성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정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할 생각이 있었다면 '통일대박'을 언급한 지난해에 추진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견제를 넘지 못하고,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남북관계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이제 박근혜 정부 시기에 국내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면서도 "다만 국제행사를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불씨는 미약하게 남아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계기가 중국 정부가 9월 개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이다"라고 내다봤습니다.


정 교수는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지만 6.15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를 화해, 협력 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중국 정부가 9월 개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서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참석할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다음은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 정창현 국민대학교 겸임교수 ⓒ평화통일시민행동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단절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27분,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공항에서 악수를 했다. 이 악수는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의 지정학(地政學)을 뒤흔든 대사건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인들의 가슴속에서 일어났다. 두 정상의 악수를 본 대다수 국민들은 나이와 계층 그리고 좌우를 불문하고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이 감정은 분단 현실에 대한 강력한 현상타파적 에너지로 폭발했다. 그리고 7년 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한 차례 더 열려 남북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안착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구조와 동북아 냉전질서는 예상보다 완고했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됐다. 2009년 8월부터 2011년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물밑접촉이 여러 차례 진행됐지만, '통일철학'도 구체적인 방법론도 없었던 이명박 정부는 헛된 '북한붕괴론'에 빠져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남과 북, 남북정상회담 거론하지만 조건과 상황은 비관적

지난해 남과 북은 다시 남북정상회담의 '기회'를 맞았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1월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며 취임 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했다. 북한 역시 2014년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당국 간 대화 의지를 표명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선다면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메시지였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1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남북 관계에 대해 "우리는 불안과 분단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해 통일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통일시대'를 이야기하고,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한다고 해서 실제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처럼 남북관계와 주변 정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확고한 의지와 '통일철학'이 있는지 불투명하고,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같은 실력 있는 참모진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국가안보실장 따로, 국방부 장관 따로, 통일부 장관 따로, 국가정보원장 따로 발언 내용이 제각각이다. 통일과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것이다.

둘째로,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에서 다룰 사안과 북·미 또는 6자회담에서 다룰 사안을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의구심을 갖는 미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공조'를 이끌어냈고, 북핵문제는 북미 직접대화와 다자회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원칙을 견지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지속적으로 '선(先) 북한의 비핵화'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 외에 2000년의 조건과 비교해 보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망은 비관적이다. 개성공단이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유지되고 있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NLL 논쟁, 종북 논란 등 지난 2년간 국내 정치의 주요 이슈들은 남북정상회담과 거리가 멀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를 논의할 6자회담도 개최 전망이 불투명하다. 남북정상회담 연내 개최를 예상할 수 있는 요인들이 거의 없다. 국내 정국 돌파구용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가설수준이다.

다만 불씨 자체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물밑접촉(민간채널)과 막후접촉(정부채널)을 동시에 가동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사는 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때도 민간과 정부채널이 동시에 동원됐다. 박근혜 정부도 이러한 채널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손을 마주잡고 있다. ⓒ김대중도서관

남과 북은 신뢰와 분위기 조성을 남북정상회담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상호신뢰와 함께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라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핵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혀야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는 국내적 지지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북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은 북미대화가 진전되는 조건에서 정상회담에 나왔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박근혜 정부는 북한 탓만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에 나타난 초라한 성적표를 단지 북한 탓으로 돌리는 변명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능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이나 '통일대박'이란 화두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과거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사례와 이명박 정부의 실패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한변화론'과 '과정으로서의 통일'

박근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면 '북한 붕괴론'이나 '급변사태'란 색안경을 벗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한반도 위기설'을 근원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지름길이자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본전제이다.

'북한붕괴론'은 1980년에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관계를 대화국면으로 이끌어나기 위해서는 '불편한 진실' 하나를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즉 남북대화의 '주도성'에 일정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까지는 남북대화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식량, 비료 등 대북지원을 매개로 이산가족상봉을 비롯해 여러 북한의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제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은 더 이상 남북대화에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9년 핵실험 성공 이후 '안보문제'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식량 생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미 남쪽의 대원지원단체에서조차 대북지원에서 '개발협력'으로 전환해야 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북한 스스로도 2년 전부터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해 농업생산을 높이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북한의 주요한 두 개의 키워드는 실리(개발)와 세계적 추세(개방)이다.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경제협력은 이제 일방적 지원과 원조가 아니라 유무상통 원칙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의 지하자원을 팔아 재원을 마련해 북한의 철도를 현대화는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경제협력을 들 수 있다. 이제 대북 경제지원을 통해 이산가족상봉 등의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초 '통일은 대박'이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이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통일이 가져다 줄 정치적, 경제적 효과를 염두를 둔 것이라면 의미 있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남북의 화해협력을 추진해야 하는 '통일 과정'을 무시하고 단기간에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남북은 첫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 개념에 합의했다. 법과 제도상의 완전한 통일이 아닌 '사실상의 통일'로 가는 프로세스를 상정한 것이다. 그리고 2007년에 있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나온 남북정상선언(10․4선언)은 '사실상의 통일'로 가는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규정했다.

▲ '사실상의 통일' 로드맵 ⓒ정창현

2차 회담에서 남북은 우선 정상회담을 수시로 개최하고, 남북협력을 위한 대화 기구에 대해 합의했다. 남북협력을 위한 총괄수행 조정기구로 총리급 회담, 경제 공동협력을 위한 부총리급 경제회담,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국방 장관 회담 등에 합의했다. 또한 남북 국회(의회)회담에도 합의했다. 특히, 의회 차원의 남북 대화는 정치권력이 5년마다 바뀌는 남측 당국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남북관계가 널뛰지 않고,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면 남과 북 사이에 상당한 의존성이 생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남북이 한 손을 잡는 과정이었다. 이제 나머지 한 손을 잡는 과정만이 남아 있다. 그 과정이 곧 '사실상의 통일'이다. 이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의 교류와 폭을 넓히고, 북·중, 북·러 경제협력을 대체하는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 전망을 여는데 기여할 수 있다.

남과 북은 '북핵'과 '냉전적 정치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처음으로 최고위급회담(남북정상회담)을 직접 언급하며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난해 내놓은 '중대제안', '특별제안',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측근 3인방'의 인천방문 시 발언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제1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립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라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언급에 화답하며,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한 '대통로'란 발언이 정상회담을 의미한다는 점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셈이다.

김 제1위원장이 강력하게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박근혜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1월중에 남북고위급접촉(회담)이 열릴 것으로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북·미 간 '탐색적 대화'를 위한 첫 시도가 불발되고,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계속 걸림돌이 되면서 6자회담과 남북대화 재개 시점은 불투명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이 체제의 안정과 경제난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대화 의지를 보일 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지만 북한은 올해 10월 당 대회 개최를 염두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한 성과를 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북대화에 임하는 남북 간 동상이몽의 간격이 워낙 커 이산가족상봉과 5.24조치 해제라는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외교라인의 갈등과 무능력, 의회의 견제 등으로 상반기 안에 북미대화와 6자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해와 같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다. 이산가족상봉과 대북전단 살포 중지가 변수다. 두 가지 문제('소통로')에 진전이 있어야 '대통로'로 이어지는 국면이 열릴 수 있다. 일단은 서울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6.15공동행사를 남과 북이 함께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측면에서 보면 6.15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를 화해, 협력 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중국 정부가 9월 개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서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참석한 후 별도의 정상회담을 여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 듯하다.

▲ 지난 10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정창현 국민대학교 겸임교수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강연이 열렸다. ⓒ평화통일시민행동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주변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

남북정상회담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남북정상회담은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현안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대화방식이다. 특히 북한은 최고지도자 중심의 '유일영도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남북 정상이 만나 풀기 어려운 여러 현안을 일시에 해결하는 것이 남북 간 가장 빠른 분쟁해결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의 하나로 정상회담을 구상하거나 추진해왔다.

박근혜 정부, 또는 차기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분위기 조성과 고차원적인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남북관계를 풀고 정상회담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남북관계의 의미 있는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북한 붕괴론', '북한체제 불안정론'에 빠진다면 결국은 시간과 허비함으로써 북핵문제, 한반도비핵화까지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둘째,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상수가 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은 과거를 불문하고 계급 계층에 관계없이 통일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만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우리 정부도 성사 여부를 떠나 지속적으로 정상회담을 타진했다.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변수나 선택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셋째, 남북정상회담은 북미대화 및 6자회담과 선순환 구조로 맞물려 진행돼야 성사될 수 있고, 그럴 때 남북관계도 지속 가능한 안정적 국면에 발전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붙인다면 최근 몇 년간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변화에 눈을 돌려고 구체적으로 연구, 학습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문화'로 무장한 북한 젊은 세대의 등장이 미칠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이러한 조건들이 단기간에 조성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북측이 연기된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남측이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회담에 적극성을 띨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큰 그림 속에서 '냉전적 정치구조'를 넘어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일관된 정책'을 내놓아야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실기(失期)한 듯하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할 생각이 있었다면 '통일대박'을 언급한 지난해에 추진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핵문제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견제를 넘지 못하고, 세월호사건의 여파로 남북관계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박근혜 정부 시기에 국내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다만 국제행사를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불씨는 미약하게 남아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계기가 중국 정부가 9월 개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이다. 6.15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를 화해, 협력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9월 북경행사에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함께 참석한 후 별도의 정상회담을 여는 아주 작은 불씨만이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이다.

* 오는 23일(토) 오후 3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시사인> 남문희 대기자의 '급변하는 동북아, 미일동맹과 북중러 사이에 낀 한국외교'를 주제로 두 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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