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돌봄 지원, 영국 돌봄자 운동을 보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영국의 '돌봄 수당'은 어떻게 확대됐나?

내가 '돌봄'에 관심을 둔 때는 박사 논문을 쓰던 2007년. 우리나라 사회복지 분야에 바우처 서비스와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가 만들어지던 무렵이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을 두루 만났다. 돌보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호명은 다양했다. 등장 순서대로 하면 봉사자, 가정 봉사원, 노인 돌보미, 생활 관리사, 요양 보호사. 제도별로 다르게 불리는 '돌봄'의 명단 말미에 '가족 요양 보호사'가 추가되었다.

가족 요양 보호사는 요양 보호사일까 가족일까?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를 통해 시설이 아닌 재가 서비스를 받는 노인의 상당수는 자신의 가족, 즉 배우자나 딸, 아들로부터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가족이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방문 요양 기관에 등록하여 급여를 받는 방식으로 이용자와 요양 보호사가 가족 관계라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방문 요양이 이루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초기에 언론은 서비스는 제대로 하지 않고 요양 보호사 급여만 받아가는 사례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정부는 이용자가 가족일 경우 급여로 인정되는 서비스 시간을 줄여 제도 안에서 요양 보호사와 가족 요양 보호사를 구분했다. 이용자 1인당 하루 4시간을 신청할 수 있는 요양 보호사에 비해 '가족 요양 보호사'는 하루에 60분만 신청할 수 있다.

이러자 다시 언론은 가족 요양 보호사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도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1년 9월. 한 사람을 돌보는 기준으로 다른 요양 보호사보다 30% 이하로 낮아진 급여를 받게 되었는데도 가족 요양 보호사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가족 요양 보호사 방문 요양이 전체의 30%를 차지하던 2011년 8월에 비해서는 감소 추세에 있지만 2-3년이 지나도록 가족 요양 보호사의 비중은 20%를 넘고 있다.

공식적 돌봄 인력인 요양 보호사의 자격과 조건을 모두 갖추고도 제도 안에서 비공식 가족 돌봄자로 존재하는 한국의 가족 요양 보호사. 이들은 요양 보호사일까? 가족일까? 이렇게 우리나라의 가족 돌봄자는 사회복지 제도 안에서 기형적인 형태로 가시화되었다.

영국의 가족 돌봄자 조직, 'Carers UK'

영국의 경우는 달랐다. 1963년 레버렌드 마리 웹스터(Reverend Mary Webster)라는 이름의 독신 여성이 일간지 <더 타임즈>에 편지를 보내 가족 돌봄자 문제를 알렸다. 직장을 다니다가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1950년대 초반 직장을 그만두었던 그는 영국에서 40세 이상 독신 여성 10% 이상이 생활을 위해 임금 노동을 하면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으며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5년 '독신 여성과 피부양자를 위한 전국 회의(The National Council for the Single Woman and her Dependents, NCSWD)'가 결성되었다. 최초의 가족 돌봄자 조직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75년 11월, 영국에서 최초로 가족 돌봄자 수당(Invalid Care Allowance, ICA)이 도입됐다.

현재 돌봄자 수당(Carer's allowance)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ICA는 출발 당시 전업 주부는 신청할 수 없는 급여였다. 비공식 가족 돌봄을 보상하는 성격의 급여이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돌봄으로 인한 노동 손실을 보상하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을 하지 않는 기혼 여성은 신청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주당 35시간 이상 심각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돌보는 연금 연령 이하의 성인이 별도의 소득을 갖지 못했을 때 ICA를 신청할 수 있었다. 기혼 여성만이 아니라 연금 연령을 넘긴 가족 돌봄자도 ICA 수급에서 제외되었다.

그 결과 1985년 가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에서 35시간 이상 일하는 열 명의 비공식 돌봄자 중 단지 한 명이 ICA를 받을 따름이었다. 기혼 여성의 ICA 신청 제한은 1986년 해소되었는데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돌보던 기혼 여성 재키 드레이크(Jackie Drake), 그리고 그를 지원하는 50개가 넘는 시민단체들이 유럽 재판소에 제소하면서까지 싸워낸 결과였다.

1981년 장애가 있는 남편을 돌보던 '기혼 여성' 주디스 올리버(Judith Oliver)는 별도로 돌봄자 협회(The Association of Carers)를 설립했다. NCSWD와 돌봄자 협회 이 두 조직은 1988년 돌봄자 전국 연합(The Carers National Association)으로 통합했다. 이 조직이 'Carers UK'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은 2001년의 일이다. 이후 Carers UK는 나이든 부모님을 돌보건, 장애가 있는 배우자, 형제자매, 혹은 친척과 친구를 돌보건 그리고 돌봄자가 미혼이건 기혼이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간에 이들은 '돌봄자'라는 정체성으로 묶여 단일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왔다.

▲ 영국 돌봄자 연합(Carers UK) 배너. ⓒ양난주


돌봄자 친화적 공동체를 만들자–돌봄자 주간

Carers UK는 영국에서 650만 명에 달하는 비공식 돌봄자를 대변하는 단체다. 영국의 사회복지 제도에서 돌봄자 수당과 연금권을 보장하고 지방 정부의 돌봄자 욕구 사정(need assessment)을 제도화하고 도입하는 데 게 크게 기여했다.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지역 사회에서 가족과 친지를 돌보는 돌봄자들에게 직접 '정보와 지식과 조언을 제공'하고, 부단히 조직하여 '혼자 돌봄을 감당하도록 하지 않는다'는 사명을 실천하는 회원 조직의 활동이다.

영국에서 이번 주, 6월 6일부터 일주일간 연례 '돌봄자 주간' 캠페인이 영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역 사회의 돌봄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단체들이 스스로 이벤트를 만들고 모임을 조직하여 올리는데 그 수가 1300개를 넘는다. 지역 돌봄자들의 티타임 모임부터 지역사회 정치인과의 간담회, 주치의와 병원에서 지역사회 돌봄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방문을 요청하는 행사, 돌봄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운동이나 지식을 알려주는 행사, 그리고 돌봄자들의 파티 등 다양하다.



2016년 올해의 슬로건은 '돌봄자 친화적 공동체 만들기'다. Carers UK는 돌봄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는 지역 사회의 각종 기관과 회사들을 추천하고 초대한다. 돌봄자 친화적이라고 추천받은 기관들은 Carers UK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돌봄 친화적 기업으로 인정된다. 이들의 이름을 마치 벽돌 쌓듯 올려나가면서 돌봄자 친화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취지이다. 참여 기관들은 슈퍼마켓부터 대학, 전기회사, 지방 정부, 병원, 커피하우스까지 다양하다.

영국에서는 지금 비공식 무급 돌봄자 드러내기가 한창이다. 영국 성인 8명 중 한 명은 돌봄자이며 이 가운데 남자가 42%, 65세가 넘는 이가 200만 명이 넘는다. 100만 명이 넘는 돌봄자는 한 명 이상을 돌보아야 하는 '샌드위치 돌봄자'이며, 매일 새롭게 6000명이 돌봄을 책임지고 있다. 한 명의 무급 비공식 돌봄자가 있어 절감되는 비용이 일인당 1만9336파운드인데 돌봄자에게 지급되는 돌봄자 수당이 일주일에 62.10파운드, 1시간당 1.77파운드인 것이 맞는지 묻는다.

돌봄자 수당의 액수도 문제지만, 이를 받기 위해서는 주당 소득이 110파운드 이하여야 하고 연금 등 다른 급여와 중복 지급이 안 되기 때문에 실제 돌봄을 수행하면서도 수당을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한다. 그래도 돌봄자 수당을 받는 사람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1988년 ICA 수급자는 고작 10만 명에 불과했는데, 2010년에는 약 45만 명, 2015년에는 110만 명이 돌봄자 수당을 받았다.

왜, 돌봄을 존중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돌봄의 사회화'가 도입되는 순간, 가족 돌봄은 갑자기 논의에서 사라졌다. 이슈는 순식간에 돌봄을 제공하는 인력과 기관, 그리고 돌봄을 받는 수혜자의 수와 서비스 시간, 재정 등의 문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도,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상당수의 노인에게 요양 보호사가 하루 한번 방문하여 3~4시간 일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 씻어야 하고, 세 번의 식사를 해야 하며, 저녁에는 다시 씻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요양 욕구가 있다는 것은 이 모든 일상을 혼자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제도는 오직 돌봄 대상에게만 주목하며, 요양 욕구를 시간이라는 양, 이용자에게 지원하는 재정의 크기로만 환산하여 지원한다. 이렇게 되니 제도 안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요양 보호사가 제대로 '돌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하지도 못했다. 하물며 가족 돌봄자의 자리는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 가족 요양 보호사는 이렇게 비공식 무급 돌봄자인 가족을 배제하고 있는 제도에서 얼굴을 바꿔 자리 잡고 있는 가족 돌봄자의 초상이다.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이제 거의 83세에 달한다. 이 가운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떠한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아동기와 노인기만 합쳐도 거의 생애 절반 가까이 된다. 사실 성인기에도 각종 사고와 충격으로부터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우리를 돌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애 주기별로 역할을 바꿔가며 수행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돌봄을 인정하고 돌보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여야 진정한 복지 국가로 갈 수 있다.

(양난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은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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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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