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 정비 작업 중 사망한 19세 청년 김 씨의 이야기가 언론을 뒤덮는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런 광경은 생경하리라. 여태 언론은 비정규직의 죽음에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의 비극이 사회적 약자의 죽음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의 애틋한 사연에 주목할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
수많은 김 씨가 죽어 나간다. 그들은 대개 정규직과 같은 업무에 배치되어, 정규직보다 더 위험한 일에 종사하며,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언제 잘릴지 모를 위협을 느낀 채, 하나부터 열까지 차별에 시달린다. 그러다 죽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하다 죽은 노동자 수는 1810명.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추정된다.
이 불합리한 구조를 입증하는 대표적 산업이 조선업이다. 조선업은 수직 계열화되어 있고, 여러 분야 산업 기술이 총망라된다는 점에서 한국식 성장 모델을 상징한다. 자연히 비정규직 차별의 모습도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오랫동안 노동 분야를 취재한 <프레시안>의 허환주 기자는 조선업 노동자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 2012년 한 조선 업체에 위장 취업했다. 국내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하도급 업체의 하도급 업체였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2012년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를 비롯해 지난 수년간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 실태를 기사화했다. <현대조선잔혹사>(후마니타스 펴냄)는 그간 취재 결과를 응축한 고발장이다. (☞관련 기사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우리가 신문 지상으로만 바라보던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말은 책의 낱장을 덮은 다양한 이야기로 구체화한다. 통근 버스에는 정규직 노동자 자리가 지정돼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앉지 못한다. 정규직 노동자가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샤워장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온 몸에 검댕과 기름, 먼지를 뒤집어썼으니, 어쩔 수 없이 찬물로 샤워해야 한다.
안정적인 출퇴근 환경은 먼 나라 이야기다. 파견 업체와 연 단위 계약을 한 후, 그의 일터가 어디가 될 지를 정하는 자는 따로 있다. 가족과 이별 아닌 이별을 항시 감내해야 한다.
이뿐이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게 문제다. 노동자는 항시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지은이가 직접 겪은 아찔한 상황이 기록되었다. 안전 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다. 강사는 "일하다 다치는 건 집중을 못해서"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지은이가 일한 조선소에서는 2000년 이후 매년 한 명 이상이 죽어나갔다.
총 6장으로 나뉜 책에서 초반 두 장은 지은이의 생생한 경험담이 주를 이룬다. 끈적한 지역 사투리로 글맛을 낸 도입부를 넘어가면, 2014년 한 해 1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현대중공업 이야기를 시작으로 처참한 비정규 노동의 민낯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프레시안>에도 이미 기사화 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주목할 필요가 없는 ‘남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죽음들은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 씨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잊혀서는 안 된다. 이는 노동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가속화한 노동의 비정규화가 낳은 괴물이 가장 약한 노동 계급을 죽인 사건이다.
책은 단순히 생산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조선업의 하도급 구조를 파헤치고, 하도급 회사 경영자의 이야기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하도급 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도 제안했다. 핵심 주제는 본문의 소제목 중 하나로 드러난다.
"일하는 데 목숨을 걸어도 되는 걸까?"
현행법의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정부의 대책이 실효성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책은, 불행히도 우울한 현재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달라진 건 없다. 김 씨의 죽음이 증명하듯, 숱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건만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명목 아래에 이야기된 건 구조 조정뿐이었다. 책은 남의 이야기로 여겨진 참담한 현실을 정면 응시하고, 이제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외친다. 힘 있는 르포르타주다.
현행법의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정부의 대책이 실효성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책은, 불행히도 우울한 현재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달라진 건 없다. 김 씨의 죽음이 증명하듯, 숱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건만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명목 아래에 이야기된 건 구조 조정뿐이었다. 책은 남의 이야기로 여겨진 참담한 현실을 정면 응시하고, 이제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외친다. 힘 있는 르포르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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