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테마주' 하락했으니 기자가 책임져라?

[기자의 눈] 공론장의 실종, 그 천박함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맹자가 양(梁)의 혜왕을 찾아갔다. 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우리 나라를 찾으셨으니, 우리 나라에 어떤 이익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하필이면 왕께서는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왕이 '어떡하면 내 나라에 이득을 취할 것이냐' 하시면 귀족들은 '어떡하면 내 집안이 이로울까' 할 것이고, 서민들은 '어떡하면 내가 이로울까' 할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로움만 좇는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지지 않겠습니까?"

지난 23일 <프레시안>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2017년 한국 대선 출마가 1946년 제1차 유엔 총회 결의안에 위반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대선 출마하면 UN총회 결의안 위반)

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뜨거웠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은 항의 전화로 들끓었다. 기자도 많은 항의 메일을 받았다. '권고 조항에 불구한데 보도 방향이 너무 단정적이다', '해석의 다양성이 있는 문제다' 정도의 점잖은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피드백은 그보다 더욱 열렬했다. 편집국 간부를 바꿔달라는 요구에 전화를 받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국장은 대뜸 "씨×년"이라는 욕설을 듣기도 했다.

편집국 전화와 독자의 이메일을 분주하게 만든 '피드백'의 대종은 이렇게 요약된다.

'반기문 테마주 샀는데, 네놈들 기사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다. 수백만 원 손해가 났으니 책임지라'

반기문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된 기사가 정치권이 아닌 증권시장에 파문을 일으키다니 당혹스러웠다. 굳이 하버마스를 원용하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이며 공익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한다. 잠재적 대선 주자나 유력 정치인 등 유명인 개인의 이름을 딴 '○○○ 테마주(株)' 따위의 현상을 이미 있는 사실로 인정한다고 해도, 언론의 보도 때문에 주가가 변동되는 것까지 해당 언론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세태요, 민심인 모양이다. 시민 교육의 결여에 따른, 한국 사회의 천박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못내 가슴이 아프다. 수천 년 전의 고대 중국만도 못한 게 '민주화 이후 30년'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반기문 테마주' 건만이 아니다. 핵발전 쓰레기를 쌓아둘 방폐장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내 집값(땅값)에 미칠 영향'으로 수렴된다. 수백 년 고도(古都)인 서울의 재개발 문제 역시 '아파트 값'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교육 문제는? 당연히 '내 아이 수능 점수'가 걸린다. 그런 다양한 이해관계 변수를 풀기 위해 있는 것이 정치이고 대의 민주주의이지만, 적어도 '나의 이익만이 중요하고 다른 것은 알 바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에게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 헌법 전문(前文)은 고귀하게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 대한 국민은 (…)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다시 <맹자>를 찾는다. "하필이면 이익을 찾느냐. 모두가 자신의 이로움만 좇는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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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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