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이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거부권에 대한 언급은 공식적으로는 없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를 '검토' 범위에 포함시켜 놓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임위에서 수시로 청문회가 열리면 자칫 행정부가 마비될 수 있다", "즉각 개정돼야 한다"는 말도 청와대 관계자발(發)로 언론에 새어나왔다.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종전까지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 또는 '법률안 심사를 위한 경우'로 제한됐던 청문회 개최 요건에 '법률안 이외의 중요한 안건의 심사나 소관 현안의 조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위원회 의결이 있을 때'를 추가하고 있다.
핵심은 '소관 현안'이라는 표현이다. 예컨대 가습기 살균제 문제 같은 여론 관심이 큰 사안의 경우, 관련 법안이 만들어져 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회부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국정조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여야 원내지도부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소관 현안의 조사'를 위해 청문회를 열 수 있게 됨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소관으로 하는 국회 상임위는 거의 즉시, 여야 합의 없이도 청문회를 열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이 법은 '상시청문회법', '365일 청문회법'으로도 불린다. 미국 의회의 운영 방식을 본딴 것이기도 하다. 법안 내용의 근간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2014년 11월 20일 발표한 국회 개혁 제안(국회운영위원회에 제출된 '국회 운영제도 개선 관련 국회법 개정에 관한 의견)'이었고,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여야 원내지도부 합의 하에 운영위와 법사위를 통과했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 사령탑은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그러나 지난해 7월 15일 법사위를 통과한 이 법안은,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후 친박 원내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끄집어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한 것은 정 의장이다.
정 의장은 이에 대해 20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미 이것은 양당이 합의했고, 상임위-법사위 다 통과하고 자구심사까지 끝나서 본회의에 온 것"이라며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본회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일정을 잡는 것은 전적으로 국회의장 권한이지, 의장이 (여야 합의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하는) '로보트'냐"고 불쾌감을 비치기도 했다.
정 의장이 겨냥한 것은 '국회의장의 독단'이라고 하는 등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누리당 친박계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전날 법안 통과 후 "어제까지 여야 수석들이 국회법 개정안은 안건으로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며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국회법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상당히 유감"이라고 했다. 김 수석부대표는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안건을 (의장) 단독으로 올린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라는 당 방침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됐지만, 야당 의원들이 대부분 찬성한데다 새누리당 탈당파 무소속 의원 및 일부 비박계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결국 법안이 통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전날 본회의를 앞두고 '국회법 개정안은 당내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만큼 부결시켜 달라'는 취지의 메모를 의원들에게 전달했으나, 결과는 재석 213인 중 가(可) 117, 부(否) 79, 기권 26이었다. 새누리당에서도 이병석, 정병국, 윤영석, 민병주 의원은 찬성표를 던졌고, 새누리당 탈당파인 유승민, 강길부, 안상수, 조해진 의원도 찬성했다.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전 대표는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수정안과 원안에 다 반대하라고 해서 반대했는데, (당 방침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바람에 통과돼서 씁쓸하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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