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광주 계엄군 발포 결정 관여' 증거 나와

보안사 내부 서적 <제5공화국 전사> "전두환, 노태우 등 회의 참석"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5.18 광주 민중 항쟁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직전, 시민들에게 총을 쏠 수 있도록 하는 군의 자위권 발동 결정에 관여했다는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내부 자료가 공개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18일 공개한 <제5공화국 전사>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 50분 국방부에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주영복 국방부 장관에게 광주에 출동한 군인들의 자위권 발동을 건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제5공화국 전사>는 1982년 5월 신군부 실세인 당시 박준병 보안사령관이 펴낸 책으로, 1979년부터 1981년 4월까지 5공화국 출범 전후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6권의 책자와 3권의 부록으로 구성된 이 책은 3질만 발행돼 청와대와 보안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 내용은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5공화국 전사>를 보면, "(80년 5월)21일 2군사(령부)에서는 사령관 진종채 장군과 작전참모 김준봉 장군이 헬기 편으로 육본으로 올라와 참모총장을 뵙고 이러한 현지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자위권 발동을 건의하였다"고 돼 있다.

이어 "건의를 들은 참모총장 이희성 장군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면서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자'고 하여 세 장군은 국방부장관실로 갔다. 국방장관실에는 장관을 비롯하여 합참의장 류병현 장군,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 수경사령관 노태우 장군, 육사교장 차규헌 장군, 특전사령관 정호용 장군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와 있다.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국방부 회의 2시간쯤 뒤인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계엄군은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고, 당시 김완봉(15·당시 중3)군 등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같은 계엄군의 집단 발포에 대해 최규하 당시 대통령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석환 전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직무대리는 1995년 12월 27일 서울중앙지검 조사에서 "(집단 발포 이튿날인) 80년 5월22일 밤 10시경 최규하 대통령이 전화해 '사격하는 군부대와 지휘관을 확인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정석환 직무대리는 "최 대통령이 군 지휘계통도 아닌 정보부 지부장에게 직접 전화해 물어본다는 것은 당시 계엄사로부터 어떤 상황 보고도 받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최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꺾고 청와대 꺾고 이렇게는 절대 못한다"며 "난 5.18과 무관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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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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