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박근혜 '이란' 마케팅, 한 방에 훅 간다

[정욱식 칼럼] 국민 혈세 낭비한 MB 자원 외교 재판?

박근혜 정부의 '이란 마케팅'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이란 순방을 계기로 제2의 중동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1일에는 청와대에서 '이란 방문 경제 성과 확산을 위한 민관 합동 토론회'를 직접 주재했다. 추락하던 지지율이 이란 방문을 계기로 반등한 것에 고무된 탓이 커 보인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란 특수'라는 나무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이란 관계를 중심으로 짜여진 '국제 정치경제 체제'라는 숲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나는 지난 글에서 미국의 이란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고 양국 관계의 미래도 불확실성이 큰 만큼, 한국의 이란 진출은 리스크가 대단히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이란 '잭팟'? 청와대가 말하지 않은 '리스크')

최근 상황 전개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란 경제 호황이 여전히 '그림의 떡'에 머물면서, 이란-미국-유럽연합(EU) 사이의 감정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는 4월 말에 "미국은 실제로는 누구도 이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이후에도 "쇠고기는 어디 있나?"라는 말이 이란 내에서 유행할 정도로 핵 합의의 경제적 효과가 부진한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유럽 은행들은 이란에 파이낸싱을 제공하면 여전히 유효한 미국의 이란 제재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유럽 은행들이 이란과의 거래 와중에 미국의 금융 규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150억 달러 이상의 벌금을 냈다는 통계 수치는 이러한 공포심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로저 코헨은 "위험과 수익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유럽 은행도 벌금을 상쇄할 만큼의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없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이란 투자가 주로 파이낸싱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도 만만치 않은 대목이다.

▲ 박근혜(가운데)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각)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오른쪽)와 면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존 케리, '미국 핑계 대지 말라'

그러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반격하고 나섰다. <에이피>에 따르면, 그는 5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유럽 은행가들과의 미팅에 앞서 이렇게 힐난했다.

"만약 유럽 은행가들이 이란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 않거나 좋은 거래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국 때문에 할 수 없어!'"

더 이상 미국 핑계를 대지 말라는 것이다.

케리는 지난달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외국 은행이 이란 은행과 기업들과 거래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방해할 생각이 없다. 다만 외국과 거래하는 이란 은행과 기업이 핵 문제 이외의 이유로 미국의 제재 목록에 올라 있지 않을 때 국한해서 말이다."

미국은 핵 합의 이후 핵 활동과 관련해서는 이란 제재를 해제했다. 이건 주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 해제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란의 테러 지원 및 인권 탄압을 이유로 대부분의 제재, 특히 금융 제재는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외부에서 이란 은행이나 기업의 실소유주나 유관 기관을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핵심적인 제재 대상인 이란 혁명수비대이다. 미국은 이 기관이 이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그런데 외국 은행이 자신과 거래하는 이란 기업이나 은행이 이란 혁명수비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또 있다. 대부분의 국제 거래는 달러로 이뤄지고 있고, 이에 따라 미국 금융 시스템을 경유하게 되어 있다. 이건 이란과의 거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미국 금융 시스템 이용 및 달러화 거래 자체를 불허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란과의 비즈니스는 상당한 리스크와 함께 혼선을 수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이 있다. <에이피>에 따르면, "아시아와 유럽의 은행들은 현행 미국 법과 금융 규제가 허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서화된 확인을 요청해왔다". 이란과 거래하더라도 미국이 기소하거나 벌금을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껄끄러워 해왔다"는 것이 <에이피>의 보도이다.

미국 대선과 이란 대선

리스크는 경제 및 금융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대선 및 중간 선거 결과도 이란 핵 합의 및 경제와 관련해 중대 변수이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이란 대선도 내년 6월로 예정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로저 코헨의 지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6일 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미국의 정책이 이란 핵 합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혁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강경파인 하메네이 사이의 균형이 핵 합의를 가능하게 한 정치적 조건을 만들어냈다"며, "하지만 오늘날 미국이 그 균형을 와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위에서 소개한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 유지와 이에 따른 이란인들의 불만 고조가 내년 이란 대선에서 강경파의 집권으로 이어질 공산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핵 합의를 최대의 외교 업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의식해 "국제 투자자들이여, 안심하고 이란에 투자하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안심하기에는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일부에서도 이란 제재 해제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

'이란 잭팟'에 도취된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망각한 채, 정권의 나팔수 노릇만 해버리면, '이란 붐'은 수십조 원의 국민 혈세를 낭비한 이명박 정부의 자원 외교의 재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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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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