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란에서 블루오션을 찾았다고 말한다. 무려 52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자화자찬하기에 바쁘다. 대다수 언론도 '이란 특수', '제2의 중동 붐' 등의 제목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개척되었다고 보도한다.
하지만 신중하게 봐야 할 것들이 있다. 이란과 맺은 계약의 대부분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다. 앞으로 잘 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란 제재가 완전히 풀린 것도 아니다. 유엔 안보리와 유럽연합이 부과한 제재는 많이 풀렸지만,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는 풀린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이란 내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한테 당한 게 아니냐고.
실제로 미국은 이란에 대한 금융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은행이 이란과 직접 거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접적으로 거래하는 것도 불허하고 있다. 아직까지 테러지원국이자 인권 탄압국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제3국의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이란과의 거래를 트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 핵 문제의 해결과 이에 연동된 제재의 완전 해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란은 핵 합의 이후에도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는데,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 강경론이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 대선 및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핵 합의가 요동칠 수 있다.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직 시 이란과의 협상에는 회의적이던 반면에 경제 제재에는 적극적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란과의 핵 합의가 오바마 행정부 2기 때 급물살을 탄 핵심적인 이유는 클린턴이 국무장관직에서 떠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참고로 클린턴은 이란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대선 공약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가는 8부 능선을 넘은 도널드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 합의를 두고 "미국 외교의 완전한 재앙"이라며 독설을 퍼부은 것으로 유명하다. 누가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이 되든, 이란 핵 합의 이행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들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보면, 한국의 이란 진출은 리스크가 대단히 크다. 잘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나쁜 시나리오는 성급한 이란 투자가 국책은행의 부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이란 투자를 돕기 위해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을 통해 30조 원 가까운 자금 조달(파이낸싱)을 제공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란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은 이걸 이란 정부에 제출하고 이란 정부나 공기업이 저리로 그 돈을 빌려 사업을 발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의 사업이 수익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이란과 미국과의 관계이다. 청와대의 마사지로 이란 언론을 통해 뒤늦게 한국에게 알려졌지만,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란과 한국과의 관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와 방해에 영향받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상호협력의 기본조건이다."
그는 박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하기 사흘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미국은 외국 은행이 이란과 거래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문서상일 뿐이다. 미국은 실제로는 누구도 이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금융제재로 외국 은행조차 이란과의 거래를 꺼린다는 뜻이다.
한국이 이란에 진출해서 이익을 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 시계는 빠르고도 불확실하게 돌아가고 있다. 예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이란과의 관계 개선에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을 공산이 크다. 가장 큰 이유는 재선 전략에 있다.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 및 유대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조차도 1기 때에는 그랬다.
이란 내에서 점증하는 미국에 대한 불만과 미국의 차기 행정부 출범이라는 조합이 한국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샴페인을 터뜨리기에 바쁜 박근혜 정부와 대다수 언론에게 꼭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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