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간당 100만 원 강의료'는 깨끗?

이준구 교수 "내 평생 그런 강의료 받아본 적 없다" 일침

공익과 관련된 업무 종사자들의 부패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이른바 '김영란법'의 시행령이 입법 예고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내수 위축을 초래하는 비현실적인 법이라는 등 관련업계의 반발과 규제 대상자들의 속앓이 때문이다. 규제 대상자에는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 예정인 시행령에 따르면,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 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또 선물 금액은 5만원 이내로, 경조사비 상한액은 10만 원 이내로 제한했다.

외부 강의에 대한 상한액도 설정했다. 공직자의 경우, 장관급은 원고료를 포함해 시간당 40만 원, 차관급은 30만 원, 4급 이상은 23만 원, 5급 이하는 12만 원을 상한액으로 정했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에는 민간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직급별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 원까지 사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규제 대상자들 중 상당수는 이런 규제에 대해 "사람 사는 세상에 어느 정도 오고 가는 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부패'를 좋아하는 것이 원래 보수의 모습은 아니다.


▲ 한국농축산연합회, 화훼협회, 과수연합회 소속 농민들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집회를 열고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농·축산·과실류 및 화훼류를 제외할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정도가 '공짜'일 수 있을까

'진정한 보수 경제학자'를 자부해온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10일 김영란법에 대해 불편해하는 규제 대상자들의 의식이 얼마나 부패에 찌든 것인지 질타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교수는 김영란법 규정 자체가 오히려 너무 느슨하다고까지 질타했다.

이 교수는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글을 통해, 재벌그룹이 제공하는 해외연수 초청 명단에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도 (찜찜해서 실제로는 연수 기회를 거절한 교수) 지인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 지인이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한 재벌그룹을 비판하는 글을 쓰자, 이 그룹의 한 임원은 "그 교수 우리 돈으로 해외연수까지 갔다왔으면서 그런 글을 쓰면 어떡하나?"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내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이 에피소드는 나로 하여금 처신에 극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안겨 줬다"면서 "이 세상에 공짜라는 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만큼 내 발목이 묶인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먹으면 안 됩니다"라고 당부했다.

또한 이 교수는 시간당 강의료 상한선이 장관은 50만 원이고 교수는 100만 원이라는 김영란법 시행령 규정에 어이없어 했다.


이 교수는 '나는 지금까지 시간당 100만 원을 넘는 강의료는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뭐하러 그런 고액의 강의료를 지급하겠습니까? 터무니없이 높은 강의료를 받는다면 그것을 받는 순간 발이 묶이는 걸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금도 "시간당 100만 원 정도 강의료 명목으로 받는 공짜가 왜 없냐"고 생각하는 규제 대상자가 부지기수인 것이 현실인 것 같다.

다음은 이준구 교수의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글의 전문이다.

오늘은 내 지인이 경험한 일로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상당히 오래된 얘기입니다만, 언젠가 모 재벌그룹이 교수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룹의 수익성이 아주 좋아 그런 사업을 벌일 생각을 했나 봅니다.

나도 초청대상에 포함되어 두 번이나 해외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벌이 별 다른 이유 없이 교수들의 여행경비를 대준다는 게 뭔가 찜찜해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다리를 놓은 분이 내가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좋은 기회를 박차 버리다니 이상한 사람이구나라는 표정이요.

내 지인도 초청대상이 되었는데 나와 똑같은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그분이 그 재벌그룹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 재벌그룹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 재벌그룹의 임원들 사이에서 그 글에 대한 얘기가 오가는 중에 어떤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교수 우리 돈으로 해외연수까지 갔다왔으면서 그런 글을 쓰면 어떡하나?"
이건 그 지인에게 직접 들은 얘기인데, 그분도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재벌그룹의 총수가 그와 같은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아무 사심 없이 교수들의 견문을 넓혀 준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자유롭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말을 한 임원은 혜택을 받고서도 배은망덕한 일을 했다고 비난하고 있었던 거죠.

다행히 내 지인은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초청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임원이 오해를 했던 겁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 분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면 망신살이 뻗친 것 아니겠습니까?

내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이 에피소드는 나로 하여금 처신에 극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안겨 줬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라는 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만큼 내 발목이 묶인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먹으면 안 됩니다.

어제 김영란법 관련 기사를 보다가 혼자 실소를 터뜨린 대목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밖에 나가 강의할 때 받는 강의료에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다는 대목에서요.
시간당 강의료 상한선이 장관은 50만원이고 교수는 100만원이라나요?

그것이 명예교수인 나에게도 해당되는 규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시간당 100만원을 넘는 강의료는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고명한 사람들이 시간당 몇 백만원씩 강의료를 받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요.

그런데 어디서 시간당 몇 백만원의 강의료를 제의하면 그것도 의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뭐하러 그런 고액의 강의료를 지급하겠습니까?
터무니없이 높은 강의료를 받는다면 그것을 받는 순간 발이 묶이는 걸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나처럼 활용가치가 없는 '듣보잡'에게는 그런 제의가 들어올 리 만무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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