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을 버려야 '강성대국' 된다

[현안진단] 조선로동당 제7차 당 대회에 즈음하여

당 대회의 의미와 김정은의 의도

북한의 집권 노동당이 당 대회를 36년 만에 소집했다. 당 대회는 노동당의 최고 지도기관이다. 당 대회에서는 당 강령과 규약을 수정하며, 당 노선과 정책의 기본 문제를 결정하고 당 중앙위원회 등 주요 당직 선거도 실시한다.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는 중앙위원회와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당을 지도하기 때문에 규약상 5년마다 소집해야 하는 당 대회가 열리지 않아도 당 사업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36년간 열지 않았던 당 대회를 소집한 것 자체만으로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지도부가 당 대회 소집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기본 노선과 정책변화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조선로동당의 노선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이번 당 대회 준비 과정에서 북한은 이미 각본과 결론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에서 당 대회는 조선 노동당의 업적을 평가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는 핵심적인 정치적 행사이다. 집권 이후 뚜렷한 경제적 성과도 없으며, 사상 최강의 대북압박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비전의 제시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 대회를 개최하는 김정은의 의도는 자명하다.

김정은은 36년 만의 당 대회를 통해 명실상부한 자신의 시대를 선포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윗대와의 영속성, 백두 혈통의 정체성 확인 정도라면 굳이 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 대회를 여는 것은 당의 힘을 빌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물'이라는 포장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코자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당 대회는 격랑에 휩싸인 북한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로지 김정은 자신만을 위한 공허한 정치적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당 대회가 한반도 평화, 그리고 북한 주민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요구사항을 밝히고자 한다.

핵 보유는 강성대국의 길이 아니다

우선 이번 당 대회가 북한의 미래를 개척하는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 20여 년 핵 개발 정책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솔직한 검토와 진지한 사업총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를 통해 강성대국(强性이 아닌 强盛, 富國强兵)을 이룬다는 꿈, 즉 핵으로 안보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국력을 쏟아 왔고 이제는 핵무기 기술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수단인 핵 보유가 아니라 그 목적인 안보와 경제 여건이 실제 나아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수단은 수단으로서의 효능을 가질 수 없으며, 목적을 달성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뿐이다.

우선 안보 측면에서 핵무기는 자국의 안전을 담보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북한은 "내외 적대세력의 끈질긴 정치·군사적 압력과 위협 공갈, 가혹한 경제봉쇄와 제재책동을 단호히 부셔 버리면서 정치·군사 강국, 핵 강국, 우주 강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섰다"며 자위하고 있지만, 핵무기 보유 자체만으로 국가안보가 절대 수준에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 지난 1월 6일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를 통해 정부성명을 발표하고,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리춘희 아나운서 ⓒAP=연합뉴스

과거 소련은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이었지만 해체됐다. 리비아는 핵무기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독재정치의 모순으로 붕괴됐다. 핵무기와 국가안보는 결정적 등식관계에 있지 않다. 오히려 공고한 평화를 수립하는데 핵무기가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과거 남미 국가들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핵 개발을 포기한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런 국가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핵무기 개발로 재래식 군비경쟁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여 경제개발에 활용한다는 것도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는 자의 궤변에 불과하다. 핵보유국이 되었다고 군비를 줄인 나라는 없다. 전쟁은 재래식 전력 없이 핵무기만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원이나 자금을 자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나라들이 핵 개발을 시도하면 국제제재로 경제개발에 엄청난 장애를 받아왔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는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안보를 튼튼히 하거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지정학적으로나 지경학적으로 갖추지 못한 나라다.

지난 36년간 당 사업을 총체적으로 검토하는 이번 당 대회가 그동안 신앙처럼 굳어진 핵 개발 만능주의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그 이해득실을 냉정하고 실용적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인민생활 향상을 당 활동의 최고원칙으로 세워라

이번 제7차 당 대회는 김정은 집권 이후 첫 번째 대회이다. 과거 6차례의 대회는 모두 김일성 시대에 소집되었다. 김정일은 한 번도 이를 소집하지 않았는데 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이 생전에 "북한 인민의 생활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당 대회를 열지 않겠다"고 언급한 까닭이다. 이는 북한에서 상식처럼 회자되는 말이다.

김정일 정권은 북한이 역사상 가장 어려운 국난 상황에 봉착해서 당의 지도노선을 새롭게 구상할 여력이 없었고 김일성의 유훈 통치에 의존해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당 대회를 열 수 있게 된다는 자체가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려는 의지나 형편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북한은 정치 강국, 군사 강국, 경제 강국이라는 목표 수순을 가지고 강성대국을 추구하고 있다. 부국강병(강성대국) 자체는 어느 나라나 추구하는 목표다.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정치 강국을 이루고 핵 보유로 군사 강국을 달성했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경제 강국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경제 강국의 실질적 내용은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빼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북한은 이번 당 대회를 준비하면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경제부문의 '70일 전투'를 벌였다. 이 밖에도 비록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지만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북한은 여러 가지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는 명백하다. 스스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서 경제성과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경제 외적인 노력도 함께해야만 한다. 대외관계를 개선해서 외부와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고 대내적으로도 인민들이 활기를 다시 찾아 건설과 생산 활동에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북한이 50~60년대 '천리마 운동'으로 경제적 성과를 낸 것은 다른 요인도 있지만 당시 당의 군중 노선이 인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인민의 지지와 공감은 일방적 지시명령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 '천리마 운동' 역시 당이 인민에게 일방적인 지시명령을 내리기 시작한 후부터는 힘을 잃었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애민'은 활발한 토론을 보장하는 데 있다

노동당이 스스로 자랑하던 민주적 집중제는 당론 결정 이전에는 당내토론을 활기차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사상투쟁이라고 불렀고 치열한 당내토론 즉 사상투쟁은 훌륭한 노동당원의 책임이라고 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번 제7차 당 대회는 활발한 내부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인민이 감당하고 있는 현실을 당이 제대로 파악하고 인민이 절실히 원하는 부문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인민에 실질적으로 복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 이기주의나 종파주의로 치부하며 인민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

▲ 지난 1월 1일 새해를 맞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애민'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번 제7차 당 대회를 준비하면서 발표된 공동구호도 "위대한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자"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구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당 대회 참가자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인민의 생활향상을 최고의 가치에 놓고서 스스로 당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활기찬 당내토론을 벌여야 한다.

당 지도부도 북한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당내토론을 종파주의라는 구실로 막음으로써 모처럼의 중요한 대회를 행사비용만 낭비하는 형식적인 정치선전행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36년 만의 당 대회가 김정은만을 위한 공허한 정치행사로 끝날 경우 정권의 미래는 그 만큼 어둡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시시각각 옥죄어 오고 있는 국제제재의 피해는 김정은이 그토록 강조하는 '애민'의 대상인 북한의 일반주민이 될 것이며, 그 후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직시할 때다.

노동당 대회는 또 언제 열릴지 모른다. 이번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북한이 건설적인 미래로 가는 디딤돌을 놓고 핵무기 없는 강성대국을 여는 절호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애민'이다. 이번 당 대회에 참가하는 대표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현안진단'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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