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략' 일본-'돌파구' 북한…수상한 북일

[현안진단] 미중을 비집고 들어오는 일본, 출구도 전략도 없는 한국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 정책 관련 민간 싱크탱크인 평화연구원의 '현안진단'을 연재합니다. 평화연구원은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와 관련한 현안 문제에서 양극단의 갈등을 지양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2주에 한 번씩 발행되는 평화연구원의 '현안진단'은 냉철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현안을 진단하고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는 칼럼으로, 그간 많은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진단과 합리적인 대안을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다케이 도모히사 일본 해상막료장(왼쪽, 우리의 해군참모총장에 해당)이 지난 3월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아 헌화한 뒤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보관련법 시행과 일본의 '대전략'

일본에서 지난 3월 29일 0시를 기해 안보관련법이 시행되었다. 안보관련법은 '존립위기사태', '중요영향사태', '국제평화공동대처사태' 등의 새로운 개념 하에 일본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특징이다. 이는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만 최소한의 방위력으로 대응한다는 전수방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서, 이웃 국가들은 일본의 새로운 적극적 안보정책으로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안보관련법이 시행되는 데 대해 이해는 하면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투명성의 확보'를 거듭 요구했다. 한반도에서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서는 한국의 동의 없이는 인정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에서의 자위대 활동에 대해서도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이 우려하는 것은 일본의 커다란 변화에서 보면 지엽적인 문제이다. 일본이 한반도의 긴급사태와 관련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길은 이미 1990년대 이래의 보통국가화 노선 및 미일 동맹 긴밀화를 통해 닦아 놓았다. 이번 법안 시행은 이를 위한 마무리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이번 법안 시행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닌 일본의 남쪽을 향하고 있다. 즉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보하는 것이 변화하는 일본 국가전략의 핵심이다. 일본은 현재 남중국해를 시야에 넣은 '대전략'을 구상 중이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당연히 중국은 경계하고 있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포위망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중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남중국해로 일본이 자위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필리핀과 베트남은 일본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환영하고 있다. 서사제도 및 남사제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 중인 이들 두 국가는 미일 동맹과의 연계를 중시하고 이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베트남의 군사 교류에 더해 일본과 베트남 사이의 군사 교류도 실시되고 있으며, 캄란만의 군항을 미국과 일본에 개방할 가능성도 모색되고 있다. 필리핀과 일본의 군사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필리핀 해군은 일본 해상자위대와 처음으로 공동훈련을 실시한 바 있으며, 자위대의 주둔에 길을 터주는 지위협정도 체결될 예정이다.

안보관련법이 시행되던 날, 한반도에서는?

일본에서 안보법안이 시행되던 3월 29일, 방한 중이던 일본 해상자위대 수장 다케이 도모히사(武居智久) 해상막료장이 국립 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을 참배했다. 다케이 해상막료장은 28일에는 정호섭 해군참모총장, 30일에는 한민구 국방장관과 이순진 합참의장을 면담하여 고위급 인사 교류, 구조 훈련, 대 해적 작전 등 한국 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간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현안은 안보관련법의 시행이었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다케이 해상막료장이라는 인물이다. 다케이는 이미 2009년에 일본 해상방위 전략으로서 'TGT삼각해역'의 방위개념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다. TGT삼각해역이란 도쿄(Tokyo) 괌(Guam) 타이완(Taiwan)을 잇는 해역으로, 그의 주장은 이 지역의 안전 확보가 미일 동맹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동중국해에서의 중국 봉쇄가 핵심이다. 안보관련법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그 중심이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일본의 구상은 인도-태평양 안보 개념과 미-일-필리핀, 미-일-베트남이라는 두 개의 삼각협력의 증진으로 확대되어 전개되고 있다. 다케이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일본의 지지와 일본의 안보관련법 시행에 대한 한국의 이해가 서로 교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3월 29일 같은 날, 북한은 원산에서 동북방 북한 내륙 지역으로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에서는 3월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대보도를 들어, 발사 시험이 서울을 타격목표로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군의 "초정밀 타격수단의 첫째가는 타격 대상이 청와대"이며 북한의 대구경 방사포들이 "청와대를 순식간에 초토화할 격동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북한군 전선대연합부대가 26일 발표한 '최후통첩장'은 북한의 집중 화력 타격권 안에 "청와대와 반동 통치기관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와 동시에 북한 매체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로 워싱턴을 공격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또 다른 매체는 백악관과 펜타곤이 화염에 휩싸인 가상의 모습을 제작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3월 말부터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핵 안보 정상회의에 대한 견제와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의 강경한 발언과 행동들에서 일본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그들의 방식으로 일본에게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외교부는 올해 신년 담화에서 한일 위안부 타결을 비판하고, '20만의 조선 여성에 대한 성노예 범죄'는 '국제적인 특대형의 반인륜 범죄'로서 그 피해자는 북에도 있다고 하면서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 속내는 북일 교섭을 재개하자는 것이다. 재일조선인들의 잇따른 규탄대회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은 중단된 일본과의 교섭 재개를 통해 대북 포위망을 벗어나 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014년 10월 29일 평양을 방문한 일본 대표단이 북측과 납치자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일본 대표단 단장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왼쪽에서 두번째는 특별조사위원회의 일본인 유골 분과를 맡고 있는 김현철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국장 ⓒAP=연합뉴스

핵안보 정상회의, 이면의 현실

일본에서 안보관련법이 발효된 직후인 지난 3월 31일(현지 시각)부터 이틀 동안 워싱턴에서 핵안보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는 한-미-일-중의 정상들이 회동해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장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대북 제재 강화를 중심으로 뭉친 한-미-일 3국과 제재와 대화를 병행 모색하자는 중국 사이의 의견 조정이 관전 포인트로 제시되었다. 정상회담 개최에 앞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대책들이 논의되겠지만, 추가 도발 시 북한을 가혹하게 응징하는 방안도 논의할 것'이라고 발언함으로써, 그 결과에 관심이 모였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 말고 뚜렷한 성과에 대한 보도는 들리지 않았다. 미중 간에 어떠한 조정이 있었는지, 추가 도발 시의 가혹한 응징 방안에 대한 논의나 추가 합의가 있었는지 불확실한 채로 있다. 오히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불참에 더해 미중 간에는 북핵 이외의 기타 현안에 대한 논의가 길게 이어졌으며, 미일 간에는 오키나와 기지 이설과 관련한 불편한 관계가 부각되는 등, 북한을 둘러싼 5개국 공조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임이 드러났다.

주목할 것은 일본의 행보이다. 혹자는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중일 회담이 개최되지 않았다고 하여 역사문제를 둘러싼 중일 간의 냉각된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일 관계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3월 25일, 일본은 주중대사에 요코이 유타카(横井裕)를 임명했는데, 그는 일본 외무성의 중국어 연수 그룹 출신이다. 이른바 '차이나 스쿨' 출신의 기용은 2006~2010년 주중대사를 역임한 미야모토 유지(宮本雄二) 이래 없던 일이다. 중국에 폭넓은 인맥을 가진 요코이의 기용에서 대중 관계 개선에 대한 일본 측의 노력을 볼 수 있다.

또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핵안보 정상회의에 출발하기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대북외교 과제로 '납치, 핵, 미사일 문제'를 들었는데, 그 순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일본은 납치 일본인 문제를 제일 큰 현안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북 압력 수단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도 열어 놓는 일본의 대북외교기조를 드러낸 회견이었다. 북일 국교정상화는 납치 일본인 문제로 정치 입지를 넓힌 아베 총리가 정치가로서 간직해 온 야망이기도 하다.

우리 '대전략'의 문고리는 남북관계에 달려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 및 미국의 국익과 관련해서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시할 자산으로,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이 두 가지 동맹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원활하게 활용하는 것이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국익을 실현할 가장 현실적인 전략으로 선호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로 기능부전에 빠져 있던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데 미국이 발 벗고 나선 것은 바로 이러한 전략상의 고려 때문이었다.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일 3각 관계를 안정시켜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이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국면에서 한국이 너무 강경 일변도로 앞서 나가는 바람에 미국은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듯하다. 미국은 중국과 북한을 직접 만나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한일 관계의 비중이 저하되었다. 동시에 한국의 전략적 위상도 저하되고 있다. 사드(THAAD)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에 직접 협상이 진행되고 있고, 북한의 평화협상 공세에 미국이 대응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궁극적 해법인 통일은 한국 외교의 장기적 목표이면서 동시에 한국이 동아시아의 질서 형성자로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적극 활용해야 할 지렛대이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끌어간다면 미-중-일의 전략에 영향을 줌으로써 자주적 외교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북관계는 동아시아 정세의 일대 전환기에 한국판 '대전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근년에 들어와 한국이 대북 압박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한의 강요된 변화에 '올인'하는 외교를 전개하는 동안 미-중-일 3국은 각기의 '대전략'을 갖고 숨막히는 질서 재편 게임을 벌이고 있다. 특히 미중의 양강 구도에 일본이 '대전략'을 갖고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문을 두드리는 북한에게 '대전략'을 구사하는 일본이 언제 문을 열어줄지 모를 일이다. 출구도 전략도 없는 한국의 외교를 보며 한국이 죽을 쑤어 일본에 넘겨 주는 꼴이나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현안진단'은 평화연구원 홈페이지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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