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사과? 우리 아이 살려낼 수 있나?"

[현장] 옥시 측 "진심 어린 사과"…피해자 가족 "사과 말고 폐업하라"

"I'm so sorry. I'm so sorry."

뒤늦은 사과였다. 옥시 책임자가 5년 만에 허리를 숙였지만, 피해자 가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아이 살릴 수 있어요? 차라리 처음부터 사과를 했었어야죠. 그동안엔 뭘 했어요?"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옥시의 사과 기자회견은 피해자들의 반발로 파행이 거듭됐다.

오전 11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가 술렁였다. 사프달 대표는 종이를 꺼내고 준비된 기자회견문을 침착하게 낭독했다. 서두 몇 문장부터 "책임을 통감한다",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옥시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아타 샤프달 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프달의 회견문 낭독은 그러나 시작 불과 5분여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피해자 가족들이 단상 위에 난입한 것. 사프달이 "피해를 받으신 분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목을 말하던 참이었다.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프달을 향한 피해자 가족들의 욕설과 고성이 회견장을 울렸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꺼져!"

사프달이 "기자회견 중"이라며 "연단에서 내려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역효과였다.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듯, 피해자 가족들은 더욱 분노했다. 코에 산소통과 연결된 호스를 꽂고 온 피해 생존자 아동은 사프달에게 다가갔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이 아이가 보이냐, 학교도 못 가고, 수영도 못 한다. 어쩔 거냐"며 절규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생존 아동도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연합뉴스

그는 다시 이어진 회견에서 "모든 의혹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저도 마음이 아프다. 저희의 진심 어린 사과들을 받아주기를 바란다"며 회견문 낭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발언이 다 끝나기도 전에 피해자 가족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회견은 다시 파행 상태에 이르렀다. 피해자들은 "어제 뉴스를 보고서야 오늘 기자회견이 있는지 알았다"며 "왜 피해자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기자들이 아니라 우리한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

사프달은 "피해자 그룹에 기자회견에 대한 정보를 줬고, 공유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개별적으로 연락을 하라"고 요구했다. 사프달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했다.

피해자 가족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자, 사프달은 "저도 아버지이고 여러분들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피해자 가족은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인공호흡기 매달고 얼마나 처절하게 갔는지 아느냐"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또, "한국에 2~3년 있다 가는 사람이랑은 얘기할 필요가 없다"며 본사 측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했다. 사프달은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모든 걸 할 때까지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 "검찰 보여주기식 면피용 쇼"

사프달은 이날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사과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프달은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안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이날 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이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안'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날 옥시 측은 '포괄적 보상 방안'을 발표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1,2등급 판정 피해자 가운데 옥시 제품 피해자를 대상으로 보상안 마련, △3,4등급 피해자 및 추가 피해자에 대해선 자체적으로 마련한 인도적 기금 사용 등이다. 등급 기준은 정부 발표를 따르며, 기금액은 지난달 21일 밝힌 대로 2014년에 출연한 50억 원 외 추가로 50억을 더해 총 100억 원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옥시는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지급할 것인지에 대해선 "향후 패널을 구성해 논의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구체적 보상 방식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자, 이날 책임자 대표로 기자회견에 나선 사프달 대표이사는 "오늘 기자회견의 취지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 입은 모든 분들에게 옥시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검찰 보여주기식 면피용 쇼"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최승운 유가족 연대 대표는 사프달의 회견 직후 현장에서 "옥시가 지난 5년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의 눈물을 외면하다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시점에야 사과를 했다"며 "유가족연대는 이 같은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백 명을 죽인 옥시는 사명을 2번 바꾸는 등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사건을 은폐·축소했다"며 "옥시의 자진 철수, 폐업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옥시를 비판하는 비판 성명을 발표하는 도중 울먹이는 피해자 가족 대표 최승운 씨. ⓒ연합뉴스

다음은 취재진과 사프달 대표의 질문 답변 내용이다.

취재진 : 한국 대표로 왔다고 했는데 영국 본사 차원인가, 한국 지사 차원인가.

사프달 : 우선 저는 옥시 코리아 대표다. 저는 또한 영국 본사 대표이기도 하다. 진심 어린 사과를 했을 땐 한국과 영국 본사 모두를 대표한다. 영국 본사 CEO도 정말 미안하다며 자신 대신 사과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발표할 모든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영국 본사에서 지원이 있을 것이다.

취재진 : 5년 간 언론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하지 않다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무엇인가.

사프달 : 먼저 그동안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 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안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이다.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때를 기다린 거다.

취재진 : 정부가 파악한 피해자 사망자 숫자가 있다. 옥시 자체적으로 파악한 집계가 있나.

사프달 : 한국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부가 발표한 수치를 사용한다. 집계된 530명의 피해자 중에 옥시 제품을 사용한 1,2등급 판정 피해자는 178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현재 기존 750명 정도에서 200여 명 정도를 추가해 총 1000명 정도를 대상으로 3차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조사하진 않았다. 과거에도 정부가 내놓은 수치를 사용했고, 앞으로고 그럴 것이다.

취재진 : 당시 판매된 문제의 살균제 개수는?

사프달 : 2004년 51만 개, 2005년 56만2000개, 2006년 44만1000개, 2008년 20만9000개. 2009년 23만 4000개, 2010년 31만 2000개다. 그리고 회수된 시점은 2011년이다.

취재진 : 기자회견에 앞서 동선 따라서 연습도 한 것 같고 고개를 몇 번 숙일지도 정한 것 같은데, 형식적 사과라는 비판이 나올 것 같다.

사프달 : 저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피해자분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전적으로 공감하고 다시 한 번 사죄를 구하는 마음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 말했듯이 전적으로 제가 책임을 지겠다.

취재진 : 옥시 레킷벤키저는 기업 이윤을 한국 국민의 목숨보다 우선하는 기업인가.

사프달 : 아직 이 상태에서 뭘 한다 한들 과거의 잘못을 완전히 청산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력하겠다. 1,2등급 피해자에겐 보상안을 제공하고 따로 조성된 인도적 기금 100억원은 다른 등급(3,4등급)의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겠다. 1인당 보상금액은 피해자들과 논의 후 결정하겠다.

취재진 : 구체적 보상안을 준비하느라 늦어졌다는데 구체적이지 않다.

사프달 : 이번 보상안의 매커니즘은 피해자분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그 분들과 협의해 정할 것이다. 보상안을 정할 패널들은 이해당사자들을 대상으로 7월 중 구성될 예정이다.

취재진 : 한때 관련 조사에서 증거조작 은폐 의혹이 크게 일었다. 또 오늘 보도자료를 보면 일부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하다.

사프달 : 만약에 정말 그렇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우리는 '어떤 잘못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회사 강령에 따라 즉각적 조치 취할 것이다. 또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검찰 수사 협조할 것이다. 영국 본사와 저, 그리고 저희 팀이 책임을 맡고 지침을 짜고 있다.

취재진 : 2011년에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프달 : 지금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도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발표를 위해서다. 유한회사로 전환됐다고 책임과 권한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회사가 보고해야 하는 내용 정도다.

취재진 : 레킷벤키저는 본사 승인 없이도 위험성 있는 물질을 전 세계의 지사가 알아서 각기 출시할 수 있나.

사프달 : 우리는 제품을 제조할 때 세계적 품질 기준을 준수한다. 앞으로도 이런 모든 공정을 감시해서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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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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