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과 40년 동거했어요. 유산은…"

[양지훈의 법과 밥] 배우자 있는 자의 혼인

직업 군인 A는 1950년대에 B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A는 B와 불화하여 이혼할 의사를 갖고 B와 별거를 하던 중, 다른 여성인 C를 만나 40여 년간 동거하였고 그 사이에서도 두 명의 자녀를 두게 됩니다. 이후 A는 C와 계속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이전 법률혼 관계에 있던 B에게 이혼 문제를 논의하였지만 B의 거절로 이혼하지는 못했습니다.

군인인 A가 2014년경 사망하자, 수십 년간 사실혼 관계에 있던 C는 A의 군인 연금을 받을 목적으로, C와 A가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확인받기 위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과연, C의 사실혼 관계는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민법 제810조는 '배우자 있는 자는 다시 혼인하지 못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한 번 혼인(결혼)하면, 이혼하기 전에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남성이 여러 여성과 혼인이 가능하다면 이는 일부일처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가족법 체계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 됩니다.

상속 문제만 해도, 한 명의 아버지 아래 여러 어머니와 자녀들이 있는 경우 계산법 자체가 복잡해지고, 혼인과 자녀 출산 시점에 따라서 복잡한 법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이슬람국가 중 몇 나라는 여전히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일부 소수 민족의 경우 일처다부제를 가족 질서로 수용하는 것을 볼 때, 결혼 제도 역시 사회 문화적 구성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법제에 따라 배우자가 있는 경우 다시 혼인하지는 못하지만, 사례에서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A와 B는 50여 년 동안 혼인 신고만 되어 있는 껍데기뿐인 법률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실제 A의 부인이라고 할 만한 자는 신고된 B가 아닌 40년간 동거를 같이 했던 C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의 군인 연금 수급권 판단 문제에 앞서 A와 C의 혼인이 과연 유효한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효와 취소의 구분

우리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법률 용어인 '무효'와 '취소'를 먼저 구분해보겠습니다. 이 구분이 우리 사례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둘을 구분 짓는 것은, 쉽게 말해 '당장 효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무효란 '존재하지 않음'과 같은 말이지만, 취소란 '일단 존재하지만 없는 것과 같이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 어렵나요? 혼인 관계를 놓고 보면,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지만, 취소할 수 있는 혼인의 경우 일단 혼인한 상태는 유효하되 이를 취소하여 없는 것과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민법상 혼인 무효 사유의 대표적인 예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입니다(민법 제815조). 영화 <파이란>에서의 최민식과 장백지처럼, 부부 관계를 설정할 의사가 없는데 여성의 국내 취업을 목적으로 형식상 혼인 신고를 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 때 혼인 관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으며, 설사 최민식과 장백지 사이에 실수로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그 아이는 혼외자가 되는 것입니다.

혼인 취소 사유에는 근친혼이나 바로 우리 사례와 같은 이중혼이 해당합니다(민법 제816조). 이중으로 혼인을 하더라도 무효의 경우와 달리 두 혼인 모두 일단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한 명의 남성이 두 여성과 이중으로 혼인 신고를 했을 때, 두 여성 중 실질적인 혼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다른 혼인 관계의 취소를 구할 수 있습니다. 취소란 '일단 존재하지만 없는 것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인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제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집니다.

그렇다면 만일 이중 혼인 관계에 있는 한 여성이 나머지 혼인 관계에 대한 취소를 구하기 전 남성이 사망한 경우 각각의 여성은 온전히 상속권을 갖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중혼은 취소 사유에 불과하고 남성의 사망 시점에 여전히 두 여성은 배우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속권 역시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중혼이 법률로 보호되는 예외적인 경우

우리 사례에서, A는 B와 법률혼을, C와는 사실혼을 유지하는 이중 혼인 관계에 있습니다. 만약, A와 C가 이중 혼인일지라도 법률혼이라면 문제는 간명하게 해결됩니다. 취소하지 않은 C와의 두 번째 결혼 역시 유효하므로 C는 연금 수급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본대로 C는 사실혼관계에 있을 뿐이어서, 이 경우에도 'C에게 법률적 부부에 준하여 보호해주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이미 '중혼적 사실혼 관계일지라도 법률혼인 이전 혼인이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바 있습니다. 중혼적 사실혼 관계의 경우까지 원칙적으로 법이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전(前)혼인 법률혼이 실체 없이 이혼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전혼만을 보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이 경우는 후(後)혼인 사실혼을 보호해주겠다는 정책적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례를 실제 다룬 하급심 법원은, 위 대법원 법리를 적용하여 중혼에 해당하는 C의 경우에도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A가 C와 법률혼이 아닌 이중혼을 유지했을지라도, B와 이혼할 의사가 있었으며 실제 46년간 동거한 자는 C였다는 점을 중하게 판단한 것입니다.

가족법의 영역은 재산법의 영역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재산법이 합리성을 추구하고 타산성에 기초한다면, 가족법은 윤리적이고 비타산적입니다. 그래서 가족법의 분쟁 해결에는, "인격의 존엄과 남녀평등을 기본으로 하고 가정의 평화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가사 소송법 특유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가사 소송법 제1조).

결론에 있어 이중혼 관계에 있던 C를 보호하는 법원의 판단은 가사 소송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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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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