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생명 위협하는 '총선 북풍', 여기가 끝?

[정욱식 칼럼] 전가의 보도 북풍, 투표로 꺾어야

박근혜 정부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또다시 '북풍'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겨레>는 11일 통일부가 4.13 총선을 닷새 앞둔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을 발표한 것은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기존 관례에 따르면, 정부는 탈북 주민들과 북한에 남은 가족 등의 신변 안전을 위해 탈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통일부는 이런 관례를 들어 집단 탈북 공개에 반대 의견을 냈으나 청와대의 의해 묵살당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정치적 판단이 인권적 판단을 압도한 셈이다.

고난의 행군과 핵 능력 강화가 만나면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은 '제재 효과'이다. "집단 탈북은 우리 정부의 단독 대북 제재(3월 8일 발표)의 파급 효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제재의 목적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재의 본래 목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는 데에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북 제재 시행 이후 북한은 연일 핵 억제력 강화를 과시하고 있다. 영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북한의 핵 보유량이 계속 증가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이에 반해 전방위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대북 경제 봉쇄는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에 위협이 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5만4000명의 근로자와 수십만 명의 가족들은 1차적인 피해자들이다. 북한이 해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 근로자들은 급감하는 손님들과 상납금을 내라는 북한 당국의 지시 사이에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 광산에서 일하는 주민들도 선박을 타고 있는 선원들의 처지도 매한가지 일 게다.

정부는 이러한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적 위협이 북한 당국에게 압박 요인이 되어 핵과 미사일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한 달 동안 목도한 것은 또다시 고난의 행군에 내몰리고 있는 북한 주민과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김정은 체제의 교차이다.

'코리아 아마겟돈'의 위험성은 이렇게 잉태되고 있다. 정부와 극우 보수 진영은 한편으로는 김정은 체제를 더 악마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붕괴되기를 기대한다. 마치 집단 탈북이 그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대다수 언론은 정부의 충실한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최악의 무책임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번 집단 탈북 공개 파문에서 확인된 것처럼, 정부는 입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운운하지만, 실은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다. 또한 남북한이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는데 '북한 붕괴론'에 기대어 해야 할 바를 방기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궁핍화와 핵 능력 강화가 계속 교차하면 김정은 체제는 '굶주린 야수'가 되고 만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북한이 붕괴 위기에 처하고 남한이 흡수통일을 시도하면 그건 평화적인 통일이 아니라 '거대한 버섯구름'을 동반한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코리아의 암담한 미래가 아닐 수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16일 국회에서 국정 연설을 가졌다. 이날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북풍 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투표로 '북풍' 심판해야

선거 때만 되면 극우 보수 세력이 '북풍'을 들고 나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증세가 더 심해졌다. 2012년 총선 때에는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하거나 재검토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북 좌파'로 몰아세웠다. 201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이 김정일을 만나 북방 한계선(NLL)을 포기한 발언을 했다'며 블록버스터급 북풍을 선보였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국가' 안보기관들은 '정권' 안보를 위해 컴퓨터 앞에서 온갖 악행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이 다가오면서 북풍 증세는 절정에 달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와 무관한 개성 공단을 전면 중단하면서 이를 야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테러 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북한의 테러 위협을 부풀렸고, 이에 성공하자 사이버 테러 방지법을 직권상정하기 위해 북한을 세계 최강의 사이버 테러 부대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집단 탈북 사건을 서둘러 공개해 북풍의 대미를 장식하려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이 정도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내년(2017년) 대선에는 북풍과 색깔론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집권 세력과 그 공존 세력에게 '북풍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점을 국민들이 보여주면 된다. 아니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외교 안보와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심판해주면 북풍이 발붙일 곳도 사그라질 것이다.

북풍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우리 공동체의 삶을 베어버리기 전에 투표로 꺾어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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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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