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왜 '자선법'을 만들었나?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양회 '자선법(慈善法)' 통과의 의미는?

중국에서 자선 활동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남의 일에 간섭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다. 좋은 의도를 가진 행위가 자칫 오해를 야기하거나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궈메이메이(郭美美) 사건이나 길에 넘어진 노인을 부축이던 여대생이 가해자로 몰리는 사례가 이러한 통념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여간해서는 남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통념을 거스르는 일이 지난 원추안(汶川) 대지진 현장에서 발생했다.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 바람을 타고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면서 버릇없고 자신만 안다고 치부되던 이른바 '빠링허우(80侯)'들이 자원봉사의 깃발 아래 조직화되면서 중국에서도 자원봉사 등 자선 활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베이징 올림픽, APEC 정상 회의 등 대형 행사뿐만 아니라 지역이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에 자원봉사의 이름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을 사회 자원의 통합과 사회 거버넌스의 활성화라는 제도의 틀 내로 묶어 내기 위한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가 바로 이번에 통과된 '자선법(慈善法)'이라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자선법(中華人民共和國慈善法)'이 지난 제12기 전국인대 제4차 회의에서 통과되어 오는 9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총칙과 부칙을 포함해 12개 장으로 구성되었다. 자선법은 자선 관련 조직, 규모, 활동, 관리 감독, 책임 등 일련의 사항을 법으로 규정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선법이 규정하고 있는 핵심 내용

자선법의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선 활동의 주체를 자연인(自然人), 법인(法人) 그리고 기타 조직(其他組織)으로 분명하게 적시했다. 즉, 자선 활동의 3대 주체를 자연인, 법인, 기타 조직으로 한정한 것이다. 또 자선의 방식도 재산 기부(捐贈財產)와 서비스 제공(提供服務) 등 두 가지로 제한했다.

자선 활동의 원칙으로는 합법적이고(合法), 스스로 원하고(自願), 성실하고 신의를 가지며(誠信), 이익을 추구하지 않아야(非營利)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선 활동이 합법, 자원, 성신, 비영리의 원칙에 의해 진행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법에 테두리 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선 활동이 사회 공덕(社會公德)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며, 국가 안보(國家安全)에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되고, 사회 공공 이익(社會公共利益)과 타인의 합법적 권익(他人合法權益)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합법적인 테두리를 적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 공덕이란 자선법 제5조에서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즉, 자선 활동이 사회 공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이러한 사회 공덕은 바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과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민정부문(民政府門)이 자선 활동을 총괄한다고 명시하여 정부가 자선 활동에 깊이 개입할 여지를 열어두었다.

그럼, 자선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선 활동의 형태는 무엇인가? 자선법에 따르면 자선 활동은 비영리성 조직이 수행한다. 자선법은 이러한 비영리성 자선 조직으로 기금회(基金會), 사회단체(社會團體), 사회 서비스 기구(社會服務機構) 등 세 가지 조직 형태를 거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선 조직을 설립할 때는 설립 신청, 신청 수리, 결정, 등기, 공고 등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하며, 또한 기존 조직이 자선 조직으로 변경 가능하도록 명문화 했다.

자선 조직은 각급 민정부문의 관리, 감독을 받기 때문에 연도별로 연도별 업무 보고(年度工作報告)와 재무 회계 보고(財務會計報告)를 의무 사항으로 했다. 또 자선 활동이 국가 안보와 사회 공공 이익을 위해하는 활동을 종사하거나 지원하는 행위를 할 수 없게 했으며, 법률과 법규를 위반하고 사회 공덕 조건에서 벗어나는 기부를 받지 못하게 했으며, 수익자에게 법률과 법규를 위반하거나 사회 공적을 위배하는 조건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의무화 했다.

자선법은 또한 자선 조직이 해당 조직의 자산 운용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필요 경비를 제외하고 자산 목적에 자산이 쓰일 수 있도록 강제 조항도 신설했다. 예를 들어 관리 경비를 당해 연도 총 지출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급 이상 인민 정부는 자선 정보를 공개할 것을 명시했고, 제70조에서는 정보 공개 사항으로 아홉 가지를 적시했다. 그리고 자선 조직에 세금 우대 방안, 활동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 청산 절차도 분명하게 명시했으며, 위반 사항이 중한 경우 소송을 제기하여 형사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하게 적시했다.

자선법 통과의 정치적 함의는?

사실 중국에서 자선 활동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06년 100억 위안이던 기부액이 2015년에는 1000억 위안을 초과할 정도로 10년 사이에 10배 이상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선 활동이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은 자선 조직의 투명하지 못한 경험과 사회적인 낮은 시각, 그리고 궈메이메이 사건에서 보듯 자선 활동을 일종의 개인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행태에서 오는 사회적 신의 상실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 감독할 유효한 법률의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자선 활동을 경시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13.5' 규획에서 전면적 소강 사회 건설을 위한 결정적인 성과를 내야하는 정책 목표가 제시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유력한 정책 수단으로서 빈곤 탈출이 제시된 시점에서 자선 활동은 사회적 부의 유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좋은 수단으로 재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기부 활동을 장려할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를 제도화하여 사회 각 계층이 자선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법률적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이 바로 자선법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자선 활동을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과 사회 공덕 차원에서 추진한다고 명시한 자선법의 의미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문명과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자선과 기부 문화를 현실로 끌어들여 자선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현 제도의 공감대를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가치의 공감대를 전통에서 끌어내면서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는 효과와 사회 통합, 문화적 자긍심을 함께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은 이미 지난 18기 3중전회에서 사회 거버넌스의 혁신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그 출발은 사회조직의 활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선 활동은 이미 중국 전통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전거에서 출발한 자선 활동의 강조는 사회적 갈등을 줄여나가면서 쉽게 현 상황에 착근하는 정책적 노림수에 잘 들어맞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 전국인대 회의 전경. ⓒwikimedia.org

또한 중국 정치의 체제 안정성 차원에서 사회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에서도 자선법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당-국가 체제에서 체제 안정성은 집권 정당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사회 공간 침투를 줄이고 사회 조직의 자발성을 키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선 활동과 같은 사회 조직의 다양한 활동 공간 마련은 중국 정치의 체제 안정성 차원에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정책 수단인 것이다.

특히 사회 갈등을 국가가 직접 개입하여 처리하기 보다는 사회적 공간을 확충하여 사회가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거버넌스를 전개한다면 중국으로서도 비용을 줄여나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공익이나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자율적 영역을 일정 부분 제약하고 규제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의 부담과 피로를 덜고 사회의 자율적 영역을 넓혀가는 흐름은 장기적으로 국가-사회관계에서 대립적이며 수직적인 관례를 협력적이며 수평적인 관계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번 자선법은 시진핑 입장에서는 자신이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두 개의 백 년' 가운데 첫 번째 백 년에 결정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결정적인 성과가 양적인 성과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진핑은 간부 승진의 평가에서도 양적인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따라서 시진핑이 언급한 이른바 '결정적인 성과' 는 비단 양적인 성과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질적인 성과 역시 결정적인 결과를 산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중화민족의 전통 가치와 미덕을 구현하고 이를 사회통합의 요소로 활용하여 사회 공간을 확충하고 사회 영역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것 역시 결정적인 성과의 하나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전통적 가치는 사회적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선'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의 이름으로 재해석되고, 이러한 미풍양속이 법의 정비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홍양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자선법의 통과가 비단 자선 활동 그 자체의 확대와 성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통합 차원에서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자선법의 통과가 바로 전통적 가치의 도래를 부르는 출발점이 될 수 도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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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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