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파이더맨이 실제로 존재한다

[프레시안 books] <과학하고 앉아 있네-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

조금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겠다. <과학하고 앉아 있네-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김상욱·원종우 지음, 동아시아 펴냄) 서평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해야, 앞으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쓸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지성인이라면 과학 상식도 어느 정도는 갖춰야 좋지 않겠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킵 손의 중력 이론이 어쩌고, 중력이 우리 차원 너머의 힘이라서 어쩌고 할 정도까진 아니어도, 'F=ma' 공식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이야기할 정도 수준의 지식은 가지면 좋지 않겠느냐, 평소에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불행히도 소싯적부터 수학, 과학을 멀리한 탓에 과학 이야기만 나오면 움츠러드는 내게, 과학 담당 기자 출신의 데스크가 이 책의 서평을 맡겼다. 이참에 공부 좀 해보라며. <과학하고 앉아 있네-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는 현대 물리학의 정수라 할 양자역학을 문외한도 편안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준다기에 용기를 갖고 책을 폈다.

'과학하고 앉아 있네' 시리즈는 <딴지일보>의 '파토'로 잘 알려진 원종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로, 자연과학, 우주물리학 등 우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여러 과학 상식을 설명한다. 이 책은 그 시리즈의 하나로, 원종우가 물리학자 김상욱(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과 함께 진행한 방송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 이어 더 깊이 양자역학의 세계를 이야기한 <과학하고 앉아 있네-김상욱의 양자역학 더 찔러보기> 편도 있다.

▲ 마블 코믹스의 인기 캐릭터 스파이더맨은 다세계 이론을 적극 차용했다. 스파이더맨은 널리 알려진 숙적들과 싸우지만, 때로는 다른 우주에서 넘어온 자신과도 얽힌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차원의 나는 일하는 대신 농땡이를 피우며 만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whatculture.com

책은 고전 역학의 기초부터 다세계 이론과 초끈 이론에 이르는 최신 물리학 가정(이론)까지 찬찬히 전진한다. 뉴턴의 중력 이론부터 슈뢰딩거의 고양이 가설에 이르기까지, 웬만하면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물리학 이론이 등장한다. 그러니 물리학의 세계를 미처 접하지 못한 사람이 둘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며 인류가 쌓아온 위대한 지식의 세계를 살짝 엿볼 계기를 얻을 수 있다.

다만, 그래도 어렵긴 어렵다. 글을 대충 따라가면 사물은 원자로 이뤄져 있고, 원자를 감싼 전자는 서로 밀어내는 힘을 가진다. 고로 내 주먹에도 전자의 힘이 있고, 네 얼굴에도 전자의 힘이 작용하니 내가 당신 얼굴을 때리면 내 주먹은 당신 몸을 통과하지 못하고 내 주먹만 아플 것이다, 정도의 이야기는 이해하겠는데, 그 너머로 상상력을 뻗치기는 쉽지 않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책인데도, 물리학의 정수를 꽉꽉 눌러 설명하는 두 저자의 호흡을 따라가기 바빴다.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내 멋대로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 스파이더맨이 있다. 스파이더맨의 몸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그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과 그 주변을 공전하는 전자로 구성된다. 이 원자핵, 원자를 둘러싸고 전자가 공전한다. 고로 스파이더맨은 무수한 원자로 이뤄진 존재다. 양자역학은 바로 이런 원자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설명하고자 고안된 이론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왜 스파이더맨도 원자가 모여서 이뤄진 것인데, 왜 양자역학은 스파이더맨의 운동은 설명하지 못할까?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의 구분에 대한 김상욱의 설명을 읽고 또 읽어 봐도 아리송하다.

책은 이제 (만화나 영화에서도 차용하는) 다세계 이론으로 달려간다. 여기서부터는 김상욱의 말대로 물리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가설이다. 하지만 매력적이다. 스파이더맨이 빌딩 숲을 진짜로 돌아다니는 우주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고로 우리의 우주는,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여러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의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과학하고 앉아있네-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원종우·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펴냄) ⓒ프레시안
아무래도 이 책만으로 최소한의 과학 상식이 있는 사람인 척하기는 조금 어려운 모양이다. 똑똑하기로 이름난 전국의 물리학도만 모은 대학 강당에서 몇 학기에 걸쳐 이뤄지는 학습 내용을 책 한 권 읽고 이해한 양 따라가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 같다. 다만, 우리 몸을 쪼개고 쪼개면 결국 원자와 전자로 구성된다는 사실, 그건 너와 나, 우리와 그들 사이에도 다를 게 없다는 사실, 어쩌면 우리는 텅 빈 우주와 마찬가지로 텅 빈 존재일 뿐이라는 관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반갑다.

이 책은 모든 사상이 철학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덕분에 둘의 대화를 편안히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냉혹한 수의 세계에만 살 것 같은 과학자에게서 이 시대를 가장 최전선에서 고민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옛 신학자를 바라보듯, 우리의 먼 후손은 지금의 과학자를 바라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들은 이라면 알겠지만, 어느 순간 둘의 대화는 가히 신적이며 철학적 존재론으로까지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물리학자들이 이 세계를 탐구한다는 대목이야말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부분이며,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너무 실용적이긴 하다만, 적어도 나처럼 물리학의 기초 상식도 없는 이도 이 책을 한번 훑어보면 주변 사람에게 물리학 이론을 다 아는양 이러저러하다고 자기 나름의 체계로 이야기할 최소한의 근거를 준다는 점이다. 과학의 시대를 사는 이라면 최소한의 과학 이론 상식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똑똑한 아이에게는 과학(공학)을 가르쳐야 하는 법인 것 같다. 장담하진 못하겠으나, 여유 되는 대로 이 위대한 세계를 더 공부해 볼 가치는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다른 누구도 아닌 리처드 파인만이 말하지 않았나.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

다행이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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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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