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여신'이 들려주는 '신의 입자', 그 비밀은?

[프레시안 books] 리사 랜들의 <이것이 힉스다>

지난 3월14일, "신의 입자를 확증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평소 과학 뉴스를 크게 보도하지 않는 한국에서도 신의 입자 확증 뉴스는 꽤나 비중 있게 보도되었다. 그 뉴스원은 유럽원자핵연구소(CERN)의 보도 자료였다. (☞바로 보기 : New results indicate that new particle is a Higgs boson)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중요한 뉴스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입자, 혹은 힉스(Higgs) 입자(신의 입자(God Particle)는 힉스 입자의 별칭이다.)란 무엇인지 아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대체 신의 입자란 게 뭐야?"라는 질문을 여기저기서 많이 듣게 된다.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최근에 출간된 <이것이 힉스다>(리사 랜들 지음, 이민재·김연중·이강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보는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중요한 이유가 둘 있는데, 하나는 얇은 분량(130쪽이 채 안 된다.)에도 불구하고 힉스 입자와 관련된 핵심 사항을 시의 적절하게 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리사 랜들로서, 최근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물리학자이기 때문이다. 랜들이 1999년 라만 선드럼과 함께 발표한 5차원 휜 공간이론은 입자물리학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 <이것이 힉스다>(리사 랜들 지음, 이민재·김연중·이강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다음 한두 가지를 알아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동전을 100번 던지면 앞면이 몇 번 나올까? 확률적으로 50번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동전을 100번 던지면 앞면이 나오는 횟수는 정확하게 50번은 아닐 것이다. 57회가 될 수도, 40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불쑥 갑돌이라는 사람이 당신에게, 자신이 초능력을 발휘해서 항상 동전이 앞면만 나오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고 하자. 우리는 갑돌이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보려고 한다. 이때 갑돌이에게 실제로 초능력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려면 100번 중 몇 번 이상 앞면이 나와야 할까?

이 기준은 대단히 주관적이다. 어떤 사람은 100번 모두 앞면이 나와야 한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90번 이상이면 초능력이 있는 것으로 치자고 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합의된 기준을 갖고 있다. 그 기준은 표준편차를 이용한 것이다.

표준편차는 관습적으로 그리스 문자 시그마로 표현한다. 우리의 동전 던지기에서는 표준편차가 5회이다. (이는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으로 계산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정한 기준은 이렇다. 만약 앞면이 표준편차의 3배(이를 3시그마라고 한다.), 즉 65회(=50+3*5) 이상 나왔으면 초능력을 "관측(observation)"했다, 또는 "증거(evidence)"를 봤다고 말한다. 대체로 2시그마 이하이면 이는 통계적인 잡음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3시그마 이상이 나올 확률은 약 700분의 1이다.

과학자들이 "발견(discovery)"라고 부르기 위한 조건은 표준편차의 5배, 즉 5시그마 이상으로 앞면이 나와야 한다. 100회 던졌을 때 75회 이상에 해당한다. 5시그마 이상이 나올 확률은 무려 350만 분의 1에 이른다. 이는 동전 던지기의 확률분포가 평균값에서 멀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5시그마의 의미는, 갑돌이의 초능력이 없다고 했을 때 그렇게 많은 앞면이 나올 확률이 350만 분의 1 밖에 안 되니까 이런 경우는 그냥 갑돌이의 초능력을 인정해 주자는 뜻이다.

실험 물리학자들이 힉스 입자의 신호를 얻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힉스 입자와 관련된 CERN의 중요한 발표는 지난 2011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는 데이터의 중요도가 3시그마 미만이었지만 2시그마는 훨씬 넘는 값이어서 과학계가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힉스와 관련된 CERN의 가장 중요한 발표는 지난 2012년 7월4일에 있었다. 이날 발표에서는 힉스 탐색에 나선 두 실험그룹 CMS와 ATLAS가 모두 5시그마에 가까운 중요도로 힉스 신호를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힉스 신호가 5시그마라는 말은, 힉스가 없는데 그런 신호가 잡혔을 확률이 350만 분의 1 이하라는 뜻이다. 갑돌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일어났으면 힉스 입자를 발견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날 발표는 전 세계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발표자의 슬라이드에 "5시그마"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표시되자 발표장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그 장면을 인터넷으로 시청하던 나 같은 전 세계 과학자들도 아마 똑같은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 중의 한 명이 그리스의 한 섬에서 휴가를 즐기던 리사 랜들이었다. <이것이 힉스다>가 2012년 7월4일의 발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관측"과 "발견"의 이런 차이를 표준편차(시그마)의 관점에서 구분할 수 있으면 <이것이 힉스다>에서 왜 5시그마가 중요하게 등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2012년 7월4일 이후 힉스 입자가 "발견(discovery)"되었다고 자신들의 논문에 쓰기 시작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날의 발표내용은 완벽한 5시그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CERN의 공식 발표문에는 "발견(discovery)"이 아니라 "관측(observation)"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는 거의 발견에 가까운 관측이다.

2012년 12월말에는 힉스를 탐색했던 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가 성능 향상을 위해 2년 간 가동 중단 상태에 들어갔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분석해서 올해 3월 초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모리옹(Moriond) 학회에서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난 2012년 7월4일 관측한 입자가 표준모형에서 예측한 힉스 입자와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물론 데이터의 중요도는 5시그마를 훨씬 넘어섰다.) 표준모형은 자연의 기본 입자와 힘을 설명하는 하나의 모형으로서 6개의 쿼크와 6개의 경입자(전자, 중성미자 등을 일컫는 말), 그리고 네 개의 힘 매개입자로 구성돼 있고, 이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기 위해 하나의 힉스 입자가 도입되었다.

새로운 입자가 표준모형의 힉스와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 입자의 스핀과 반전성이라는 물리량을 분석한 결과 때문이었다. 스핀은 소립자가 내재적으로 고유하게 갖고 있는 회전효과로서 외부 자기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이다. 반전성은 거울에 비췄을 때 그 모양이 같은가(양의 반전성) 반대인가(음의 반전성)를 결정하는 성질이다. 표준모형의 힉스는 스핀이 0이고 반전성이 양인 입자이다. CERN의 과학자들은 새로 발견한 입자 역시 스핀이 0이고 반전성이 양일 확률이 무척 높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바로 이 내용이 이번 3월14일 CERN 발표문의 핵심 사항이다. 이날 CERN은 자신의 웹페이지 첫 화면 전체를 힉스 입자 발견과 관련된 사진들로 채웠다.

그 외에도 3월 모리옹 학회에서는 힉스 입자의 다양한 반응 채널에 대한 분석 결과가 발표되었다. 과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다른 소립자들과 얼마나 강하게 상호작용하는지 그 결합력을 측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거의 모든 경우에 대해 표준모형에서 예측한 결합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CERN에서 표준모형의 힉스에 한발 더 다가섰다고 선언한 데에는 이런 사정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입자가 표준모형의 "바로 그 힉스(The Higgs)"인지 또는 초대칭성 같은 다른 확장된 모형에서 등장하는 여러 힉스 입자들 가운데 "하나의 힉스(a Higgs)"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어쨌든 새로 발견한 입자가 "어떤 하나의 힉스(a Higgs)" 입자인 것은 점점 명확해지는데, 표준모형의 바로 그 힉스라고 특정하기에는 좀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CERN의 3월14일 발표문 제목에 "새로운 입자는 일종의 힉스 보존이다.(new particle is a Higgs boson)"라는 말이 들어갔다.

<이것이 힉스다>는 2013년 3월 발표 내용까지 담고 있지는 않으므로, 책을 읽을 때 이 내용까지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대개는 힉스 입자를 설명할 때 다른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는 입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주체는 힉스 입자라기보다 힉스 장(field)이라고 할 수 있다. 힉스 장은 우주 공간 곳곳에 퍼져 있는 장으로서, 이 장이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바닥상태가 어떤 수학적인 대칭성을 깨면 그 여파로 다른 입자들이 질량을 갖는다. 그리고 대칭성이 깨진 이 새로운 바닥상태 주변에서의 장의 요동이 힉스 입자로 나타난다.

하지만 지면이 넉넉하거나 아주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힉스 입자가 대칭성을 깨면서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한다고 간단하게 말하는 때가 많다. <이것이 힉스다>에서는 힉스 장과 힉스 입자를 구분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힉스의 발견과 함께 다소 다급하게 책을 냈다는 티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그리고 2장과 3장은 저자가 자신의 다른 책에서 해당 내용을 뭉텅 잘라서 끼워 넣는 바람에 같은 내용이 중언부언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런 점들이 약간 거슬리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급하게 책을 내야만 했던 다급함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그만큼 대단한 발견이고 따라서 그렇게 다급히 일반 대중들과 이렇게라도 소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힉스 입자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는 '프레시안 books' 104호(2012년 8월 24일자)에 실린 '과학 수다'를 참고하세요. (☞관련 기사 : 힉스 입자가 뭐냐고? 강남에서 '말춤' 추는 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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