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할 수 있는 것…확성기 볼륨 조정?

[한반도 브리핑] '돈키호테' 돼버린 남한,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최고수준의 대북제재(?)

지난 3월 2일 발표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는 유엔 70년 사상 비군사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재의 기본인식을 담은 전문 12개 항과 내용 및 이행계획을 담은 본문 52개 항, 그리고 부속서 5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소형무기 포함 무기거래를 전면 금지하고, 북한 광물의 대외교역을 금지했으며, 해운 및 항공 운송을 차단함으로써 금지품목의 거래를 전면적으로 봉쇄했다. 또한 북한당국으로 유입되는 대량살상무기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거래를 봉쇄했으며, 제재대상 단체와 개인 리스트를 확대했다.

거의 모든 조항에서 'Decides'(결정한다)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이행을 의무화했는데, 기존 제재안들이 핵개발에 직접 연관된 분야와 북한당국의 불법적 행위에 한정하던 것과는 달리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제재의 가능성을 명기하고 있다. 제재안 자체만 놓고 보면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한국, 유럽연합, 미국 등 유관국들의 독자제재도 나왔다. 특히 미국은 의회를 통과한 독자제재법안 H.R.757과 그 시행령이라고 볼 수 있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광물거래와 인권침해, 사이버 안보, 검열, 그리고 대북한 수출 및 투자분야에 대한 포괄적 금지조항을 적용했다. 특히 북한 정권의 주 수입원으로 지목되어온 노동자 해외 송출에 관련된 제재안을 담았으며,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은행을 제재하는 소위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조항을 담았다는 점에서 논란과 함께 유엔제재 수위를 뛰어넘는 강력한 제재라는 평가가 나왔다.

▲ 2일 (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이사국들이 만장일치로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AP=연합뉴스

제재의 실효성 여부

제재안 자체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는 틀리지 않지만, 실천에 있어 효과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제재가 핵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했는데, 과연 제재수위를 높인다고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즉 문서에 규정된 방안과 실천은 다른 차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로는 가장 강력했던 2013년의 결의안 2094도 실행에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이행보고서를 제출한 국가는 193개 회원국 중에 20%인 42개국에 불과했다. 유엔전문가패널(POE)의 평가 역시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 결여로 실천수준이 매우 낮음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과의 무기거래나 군사훈련 등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제재실행보다 싼 값에 무기를 수입하고 군사훈련 받는 것을 우선한다.

결국 이번에도 관건은 중국의 실천 의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일단 중국정부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의안 통과 이후 반복적으로 제재의 책임 있는 실천을 약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예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남아있다. 대부분의 북중 경제관계는 국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몫인 데다가, 민간기업 차원 위주로 교역에 관련된 많은 이익을 얻어왔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이들의 불만과 경제적 피해를 각오하고 밀어붙일 것인지 미지수다.

다음 물음표는 북한이 이미 오랜 기간 제재를 받아오면서 일종의 면역과 학습효과, 그리고 회피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번에 금지된 항공 및 로켓유는 이미 2013년 이후 중국의 제재로 수출이 감소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밀수를 통해 이를 보충해왔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 이후 '성공신화'로 인식되어온 금융제재도 마찬가지다. 당시 2500만 달러의 북한 관련 의심계좌 50개를 동결하는 조치를 시행했고 상당한 효과를 봤다. 그러나 당시에는 상황과 조건이 특수했다는 점, 또 제재효과의 핵심조건은 미국이 우연한 경로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북한고위층의 금융거래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북한은 오랫동안 국제금융거래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현금이나 물물교환, 심지어 범죄조직을 통해 거래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제재의 효과는 정보전에 달려있다. 즉 무역과 금융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거래하거나, 북한자산을 보유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파헤치는 미국의 정보능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BDA처럼 미국과 연결되어 있을 경우 미국의 거래 단절 압박을 통해 대북제재가 발동될 수가 있다. 중국의 은행이나 기업들 중에는 대북거래를 통해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데, 중국의 단호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은 북한과의 불법적 거래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

오바마의 행정명령에서 논란이 된 북한의 국외노동자 송출 금지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포괄적 세컨더리 보이콧이 되기 어려운 것은, 행정명령은 하위법체계로서 유엔제재와 미국의회의 제재법안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상위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 유엔제재안의 대원칙이 북한 주민의 생계에 관한 제재는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행정명령을 대통령이 의회로 보낼 때 동봉하는 서한에도 적시했다. 오바마는 법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미국의 제재가 북한 주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정부 당국을 향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모두를 종합하면 해외인력이 벌어들인 외화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총괄하는 북한 당국이나,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단체나 개인으로 흘러들어 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에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제재의 국제정치적 함의

제재의 실효성 여부와 함께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이번 제재안이 미중 사이의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트리거조항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강의 제재는 7주간이라는 최장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것이 제재에 담긴 국제정치적 함의다. 즉 '대화유도를 위한 제재'와 '북한 주민의 생계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원칙(또는 제한조건) 위에 서 있다. 무차별적인 시행으로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제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비군사적 제재, 즉 경제제재는 군사적인 수단을 쓰지 않으면서 제재대상국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따라서 채찍과 함께 당근을 제시한다. 이번 유엔제재도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실 북한에 대한 채찍과 당근은 지금까지 반대로 적용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아픈 채찍은 무역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중국이 가지고 있으며, 가장 달콤한 당근은 북한의 체제보장(평화협정)의 키를 지닌 미국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미국이 채찍을 휘둘렀고, 미국의 채찍을 무력하게 만드는 당근을 중국이 제공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제재안에 합의하면서 미중은 제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채찍과 당근이 함께 사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부만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다. 지금은 제재에 집중할 때로 대화를 거론할 시기가 아니라는 주장만 반복한다. 정부는 현재 국면이 한국이 사드 배치를 내세워 중국을 공개협박하고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노선을 견지했기 때문에 중국이 굴복해서 대북제재에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제재가 대화유도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이다. 외교부가 유엔제재안을 발표할 때, 북한의 민생을 건드리지 않고,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 48~50항을 의도적으로 누락해버렸다.

한국의 행보에 대해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한다. 미국 역시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대놓고 반대의견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노선변화는 확실히 감지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 부장과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비핵화 논의의 협상 테이블로 나오면 평화협정을 맺어 한반도의 미해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비핵화가 우선'이 아니라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나오면'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물러섰다. 미국외교의 다른 창구들에서도 비핵화를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대화재개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삼았던 입장에서 상당히 완화된 모습을 보인다.

▲ 존 케리(오른쪽) 미국 국무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월 23일(현지 시각)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회담을 가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왕이가 회담 직후 향후 2개월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 언급에는 중의적 함의가 담겨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미중이 합의를 했지만 두 나라 모두 향후 합의이행을 훨씬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제재 효율성의 결정적 열쇠를 가진 중국이 제재를 얼마나 엄격하게 실천하느냐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며, 중국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가지고 임할 것인가를 주시하겠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천 정도에 따라 자신의 실천 여부가 결정될 것임을 암시한다.

두 번째는 미중 합의를 남북한이 흔들어버릴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 정부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철저히 외면한 채 북한에 대한 화풀이나 정권붕괴에 집착할 때 다시 위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북한 역시 국제사회의 제재에 반발해 제5차 핵실험을 포함한 도발로 갈 경우 전체 판이 깨어질 수 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은 칼을 뽑고, 활시위를 당겨놓은 상황으로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는 왕이의 묘사가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돈키호테 외교

사실 중국이 하고 있는 역할을 한국이 주도했어야 했다. 한국이 미국을 설득해 당근을 가져오고, 미국의 당근을 이용해 중국의 채찍을 이끌어내 북한을 설득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대결 일변도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중국이 앞장서 한반도의 상황을 일단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봉합한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은 철저하게 소외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에서도 한국은 미국보다 앞서 강경하게 나갔지만 오히려 미국이 유연성을 보임으로서 한국의 입장은 들판에 홀로 남아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처지가 되어버렸고, 향후 대중관계에 큰 부담을 갖게 됐다. 이후라도 그간 중국의 역할을 한국이 승계하면서 상황을 주도해야 하지만, 한국 정부가 압박으로 중국을 굴복시켰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한 문제는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

유엔제재와 독자제재들이 사상 최고 수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결국 제재 효과는 미중 관계 및 남북관계의 전개상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제재는 전략이 아니다. 전략이라면 확실한 목표와 로드맵, 그리고 협상의 구체적인 목록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유관 5개국의 제재 의도나 목표가 모두 제각기이다. 한미일은 북한의 비핵화, 더 나아가 정권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제재만으로 불가능한 목표다. 북한붕괴가 가능했을 제재라면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반대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대북 지렛대를 한국만 불가역적으로 버렸을 뿐, 미국과 중국은 상황변화에 따라 재사용할 수 있게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외교카드는 모두 소진되었다. 앞으로 상황이 변화될 때 우리가 낄 자리는 없으며 확성기 성능 조절 정도만 남은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한국이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의 착각이거나, 또는 북한붕괴를 바라는 희망적 사고 때문이거나, 아니면 여전히 보수 기득권세력이 전가의 보도인 양 집착하고 있는 '북풍' 중독 때문일 것이다. 3가지 중 하나거나 전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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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는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의회산하 평화재단 연구원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평가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한미관계를 포함한 국제정치경제 등을 주 연구 분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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