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직원 보내 노회찬 강연도 염탐했다"

[인터뷰 下] 현대중공업에서 24년 노무 관리한 이재림 씨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조합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노조 행사 등에 관리자를 파견해 노골적으로 누가 참석하는지 동향을 파악한 것은 물론, 노조 대의원 선거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당사자 증언이 나온 것. 그간 이러한 현대중공업의 '노조 관리 정황'은 노동자들의 주장으로만 제기됐다. 이를 지시한 당사자가 직접 증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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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조도 마찬가지다. 하청 노조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을 뿐만 아니라 스파이를 보내 하청 노조 동향을 살피기도 했다. 또한, 하청 노조에서 활동한 이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려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러한 증언을 한 인물은 현대중공업에서 2011년까지, 32년 동안 근무해온 이재림 씨다. 197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 씨는 1987년 노조 설립 때부터 2011년 5월 퇴직 전까지 노무 관리 업무를 맡았다. 퇴임 후에는 하청업체를 운영했다. 지난 1월, 조선 경기 불황의 여파와 원청의 기성 삭감 등으로 폐업했다.

이 씨는 현대중공업 해양도장부 운영과 과장으로 재직했다. 운영과는 부서 소속 노동자 노무관리가 주 업무다. 이 씨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그간 어떻게 노조를 관리해왔고 노조 선거 등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설명했다.

(관련기사 ☞ : [인터뷰 上]"현대중공업 '어용 노조' 장기 독재의 비밀은…")

▲ 자신이 노무관리 할 때, 정리했던 수첩을 보면서 설명을 하고있는 이재림 씨. ⓒ프레시안(허환주)

"회사 말 안 듣는 강성 직원들, 철저히 관리했다"

프레시안 :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회사에 우호적인, 즉 '여당' 노조원들이 노조 집행부를 맡아왔다. 여당이 이렇게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재림 : 소위 여당 집행부가 장기집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가 적극적으로 노조를 관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 비판적인, 즉 '야당' 대의원이 선출될 경우, 회사는 철저히 무시로 일관했다. 여당 대의원은 회사 중역실, 부서장실 등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현장 노동자의 자질구레한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야당 대의원은 대화는커녕 만나주지도 않았다. 고립상태로 식물화 시켜버렸다. 현장 직원들에게 야당 성향 대의원의 존재 자체가 메리트를 못 느끼게 했다. 그러니 다음 번에 야당 성향 대의원을 뽑겠나? 안 뽑는다.

프레시안 : 현대중공업이 2013년까지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웠던 배경에는 회사의 조직적인 노조 관리가 있었던 듯하다.

이재림 : 맞다. 평상시에도 늘 관리했다. 지금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전노회(전진하는 노동자회)' 소속들이다. 이들은 강성, 즉 야당 성향이다. 전노회가 2014년부터 노조를 장악했지만 이전에는 헤맸다. 우리가 이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이다. 운영과장들은 자기 부서 사람 중 전노회 소속 직원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을 거기에서 탈퇴시켰다. 온갖 방법을 다 썼다.

프레시안 : 어떤 방법을 썼나.

이재림 : 사람을 못 살게 군다. 우리 부서에 성oo이라고 전노회 소속 직원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볼 때마다 반말에 온갖 육두문자를 다 썼다. 한마디로 바보 취급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아침 8시 이전에 아침 체조하는 것을 문제 삼은 적 있었다. 업무시간도 아닌 시간에 체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내가 작업반장을 불러 매일 아침 8시에 성oo와 체조를 하도록 지시했다. 다른 작업자들이 보는 앞에서 필히 체조를 하게끔 했다. '모욕주기'였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해 항복했다. 다른 사람들 보는 데에서 모욕을 주면서 버티지 못한다.

프레시안 : 현장에서 아예 싹을 밟아버리는 식인 듯하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노동자들도 자연히 '전노회' 등 야당 성향 정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회사와 싸워서 얻는 게 인간 이하의 모욕이라면 말이다. '자기는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인식이 심어질 듯하다.

이재림 : 맞다. 그것을 노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조합원 성향별로 R(red), Y(yellow), W(white) 이렇게 분류해서 퍼센트(%)를 내고 관리했다. 그리고 이들 비율을 매일 위에 보고했다. 어제까지 R이 30%라면 오늘은 27%가 돼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25% 등 계속 줄었다고 보고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박살이 난다. 나중에 야당 노조원들이 이 명칭을 알아챈 뒤에는 이를 바꾸기도 했다. '동그라미. 세모, 엑스', 아니면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으로 표기했다.

"R, Y, W로 직원들 분류해 관리했다"

프레시안 : 사실상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회사가 야당 성향 노동자의 명단을 따로 작성해 이들을 특별 관리했나.

이재림 : 그렇다. 이 리스트에 'R'로 오른 이들은 특별관리 대상이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했다. 그리고 사사건건 활동을 방해했다. 일례로 우리 부서에 전노회 소속 노동자가 있었다. 이 사람이 전노회 부의장으로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의원 선거가 아니니 서명을 못 받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선거 유세를 방해했다. 이 사람이 울산 외곽 시골에 살았다. 집에서 큰 도로로 나오는 길이 논두렁 길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작전을 짰다. 공장 내 아침 선거유세가 있는 날, 새벽에 회사 포터를 끌고 가서 논두렁 길에 세워놓고는 그냥 와버렸다. 사이드브레이크도 올려놓았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사람은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아침 유세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사건건 방해를 놓았다.

그리고 R로 분류된 사람들은 어떻게든 W로 돌려놓았다. 사람을 못 견디게 했다. 그러니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해도 돌아서지 않으면 해외로 발령 내기도 했다. 그러면 효과가 상당하다. 회사가 그렇게 다루는 것을 지켜보던 직원들을 함부로 야당 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또한, R로 분류된 사람들도 '안 되겠구나' 하면서 자포자기한다.

물론 회유책도 사용했다. 사람 봐가면서 대응했다. 어느 정도 하면 넘어올 사람들에게는 가정 방문이라는 방법을 썼다. 한 마디로 직원 부인을 구워삶았다는 이야기다. 선물 등을 들고 가서 '남편이 노조 관련 일을 한다'면서 말려보라고 이야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용돈도 찔러줬다. 그러면 상당수가 돌아선다.

프레시안 : 그런 성향 파악은 어떻게 하는가. 이 사람이 전노회 소속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이재림 : 성향 파악이 가능한 것은 'PR보고서'라는 걸 매일 작성하기 때문이다. 현장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매일 제출해야 한다. 그것이 PR보고서다. 이를 바탕으로 위에서는 어떻게 노무관리를 할지 판단하고 지시를 내린다. 한마디로 매일 감시한다는 이야기다.

예전에 노회찬 전 의원이 강성 정파 초청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직원 80명이 참석했다. 그때 나는 여기에 우리 해양부서에서 누가 참석했는지를 일일이 파악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노조 행사, 그리고 전노회 같은 강성 정파의 결의대회 등에 누가 참석했는지, 그리고 참석한 직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등을 모두 파악해야 했다. 그런 뒤 여기 참석한 인사들을 R 내지 Y로 분류, 관리하는 식이다.

프레시안 : 총회 등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일일이 파악할 수 있나. 게다가 총회 안에 관리자들은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참석자들이 한 발언은 또 어떻게 알 수 있나. 도청 같은 것을 했나.

이재림 : 녹음은 안 했다. 예전에 소형 녹음기를 회사에서 줬다. 하지만 몇 번 쓰고 사용하지 않았다. 걸리면 맞아 죽는데 어떻게 하나. 동향 파악 방법은 간단하다. 세작, 즉 스파이 직원을 그쪽 행사에 보내는 거다. 그래서 누가 참석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 등을 알아낸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관리자들이 그렇게 한다. 그게 우리 일이나 다름없다.

▲ 이재림 씨 수첩에 적혀 있는 하청 노조 관리 지시 내용. ⓒ이재림

"노조 활동한 하청 노동자, 절대 현대중공업에서 못 들어온다"

프레시안 :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조도 관리했을 듯하다.

이재림 : 하청 노조는 직접 관리하지 못했다. 하청 직원들은 인원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관리는 했다. 하청 직원들이 들고 일어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들 숫자가 엄청나다. 그래서 하청 분위기는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만약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하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작업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노동조건, 임금 등에 반발할 분위기가 있으면 그 주동자를 찾아내 해고한다는 이야기인가.

이재림 : 아니다. 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한다. 교육 내용은 간단하다. '회사가 어려워 내달 2000명 정도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이상한 분위기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자가 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하청 직원들이 잘 알고 있다.

프레시안 : 하청에도 원청에서처럼 스파이를 심어 놓는가.

이재림 : 당연하다. 우리도 심어 놓고, 하청업체 총무, 대표 등도 심어놓는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그래야 통제가 쉽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소식은 그런 세작들에게서 듣는다.

프레시안 : 현재 현대중공업에는 하청노조가 있다. 이들도 관리하는가.

이재림 : 당연히 관리한다. 생각 있는 하청 노동자들은 하청노조 사무실 앞을 지나가지 않는다. 생각 없이 지나가도 의심받기 때문이다. 하청노조 위원장, 즉 지회장과 면담을 한다든가 인사를 하는 하청 직원은 정말 배짱 좋은 사람이다. 지회장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도망가야 한다. 한 때는 지회장이 몇 시에 어디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까지 다 기록했다.

하청 직원을 몇 차례 지회 사무실로 보내기도 했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서 상담을 받는 것처럼 한 뒤, 지회 분위기를 살피도록 했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실제 사무실 앞에 세워진 자동차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또한, 강성인 것처럼 와서 이것저것 물은 뒤, 이후로는 연락이 끊긴 하청 노동자도 여러 명 있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 하청 노동자들과 시민단체에서는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놓았다고 주장한다. 노조 활동 전력이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명단을 작성, 이들이 현대중공업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한다는 주장이다. 사실인가.

이재림 : 블랙리스트라고 하지는 않고 '건강이상자'라고 해서 명단이 내려온다. 예전 노조를 만들고, 지프크레인 등에 올라간 하청 노동자들의 명단이 있다. 이들은 죽어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에서 막기 때문이다. 하청업체 총무, 안전과장, 그리고 안전지원부 간부 등이 하나하나 체크한다.

프레시안 : 2003년께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조를 만들었던 인사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나. 이들은 아직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취업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현 하청노조 위원장인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도 마찬가지다.

이재림 : 그렇다. 이들은 모두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원청은 하청을 직접 관리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식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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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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