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 학살 현실로…다음은 유승민 차례?

권은희·주호영 이어 이재오·김희국·류성걸·이종훈 '컷오프'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 찍힌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15일 기어이 공천에서 대거 배제됐다.

친유승민계는 아니나 비박계 좌장으로 불려 온 서울 은평을 이재오 중진 의원 또한 당 안팎의 예상대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대구의 김희국(중남) 류성걸(동구갑) 의원과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이종훈(성남 분당갑)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이 컷오프(공천 배제)됐으며, 김무성 대표와 가까운 안상수(인천 중동·강화·옹진) 의원도 낙천이 확정됐다.

그리고 이들 의원의 지역구에는 친박, 그 중에서도 이른바 진박(진실한 친박)이라고 선전돼 온 인사들이 대거 단수 추천 되거나 여론 조사 경선에 전보다 유리한 상태로 참여하게 됐다. 사실상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주변 인사들을 인위적으로 물갈이하는 친박계 주도의 '공천 학살'이 현실화한 모습이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전날에는 대구 지역 현역인 권은희·주호영·홍지만·서상기 의원을 컷오프했다.

이로써 대구 총 12개 지역 중 불출마 선언이 있었던 2곳을 제외한 10개 지역에서 6명의 현역 의원이 무더기로 낙천된 꼴이 됐다. 대구 현역 중 경선 참여자로 인정 돼 일단 목숨을 부지한 의원은 대구 서구의 김상훈 의원과 달서을의 윤재옥 의원, 달서병의 조원진 의원뿐이다.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구을은 이날 발표에서도 경선 여부가 발표되지 않았다.

대구 현역 6명 무더기 배제…'공천 학살' 현실화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7차 경선 및 단수·우선 추천 지역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를 통해 일단 '막말·욕설' 녹취록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인천 남을)은 공천에서 배제된 것이 확인됐다. 또 김학용·김성태 의원과 같은 일부 김무성 대표와 가까운 비박계 인사들의 공천도 확정됐다.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이혜훈 전 의원도 서초갑에서 경선 참여 자격을 받았다.

그러나 발표 결과를 종합하면 일부 비박계 인사들의 생존과는 별개로, 무더기 친유계 학살이 실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낙천이 확정된 이들이 앞서 청와대 또는 친박계 의원들과 각을 세웠거나 대립했던 인사들이거나, 심지어는 그런 눈에 띄는 갈등이 없었더라도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현직 의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낙천에 '친박 중심의 물갈이'이라는 평이 더욱 불가피한 이유는 '대체 선수'들의 면면 때문이다. 수도권으로 좁혀서 보면, 낙천이 확정된 이들과 비교해 이날 투입된 교체 선수들의 대야(野) 경쟁력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대구 지역에서 '단수 추천'과 같은 방식으로 사실상 '꽂아진' 후보들은 자타공인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들이다.

5선의 이재오 의원을 배제하고 은평을에 단수 추천한 유재길 시대정신 사무총장이 대표적이다. 유 사무총장은 여야 간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서울 선거구에 공천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인사다. 앞서 지난 19대 총선 당시 이 의원은 49.50%의 득표율로 천호선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48.40%)를 간신히 제치고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두 후보 간 표차는 1459표, 득표율 차이는 1.10%포인트에 불과했다.

비박계 류성걸 의원을 배제하고 이날 공천이 확정된 후보는 명실상부한 '진박'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대구 달성에서도 진박으로 자신을 꾸준히 선전해 온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이 단수 추천됐다. 달성의 현역 의원은 이종진 의원으로, 이 의원은 앞서 '불출마 선언'을 한 바 있다.

추 의원의 달성 출마 선언과 함께 올해 1월 출마지를 달성에서 대구 중남으로 돌연 변경해 '진박 돌려막기' 빈축을 샀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은 경선을 치르게 됐다. 다만, 이 지역 현역 비박계 김희국 의원이 이날 공천 배제가 확정된 터라, 곽 전 민정수석은 비교적 경쟁력이 약한 배영식 예비 후보와 1대 1 경선을 치르게 된다.

이른바 '진박 재배치'를 통해 한 후보(추경호)에게는 현역 불출마 지역에서의 단수 추천을 주고, 또다른 진박 후보(곽상도)에게는 현역 배제 경선에 나설 수 있게 판을 깔아준 듯한 형국이다. 사실상 '박근혜 키즈'들을 위한 대구 물갈이가 현실화한 것이다.

'친유계 학살·친박계 공천'은 여야 박빙의 수도권도 빗겨가지 않았다. 유 전 원내대표의 최측근인 이종훈 의원이 배제된 분당갑에서는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이 단수 추천됐다. 분당갑은 앞서 이종훈 의원을 견제하는 '친박계 단일화'까지 이루어졌던 지역이다. 당초 이 지역에 출마하려 했던 장정은 전 의원은 지난달 25일 돌연 '권혁세 지지'를 선언하고 예비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장 전 의원은 지난해 8월 김현숙 당시 의원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되며 의원직을 사퇴하게 되자 비례대표직을 승계해 의원이 된 인사로, 이때 예비 후보직 사퇴 이후 신설 선거구인 동두천·연천으로 출마지 이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장 전 의원은 현재 비례대표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유 전 원내대표와 함께 원내 지도부로 일했던 조해진 전 원내수석부대표도 학살의 '희생양'이 됐다. 조 의원은 친유계보다는 '친이계'로 분류된다. 유 전 원내대표의 입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이 쏟아지던 때에도 조 의원이 특별히 나서 발을 맞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예선 후보자 명단에서 조 의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를 배제하고 박상웅·엄용수·조진래 예비 후보끼리만 여론 조사 경선이 이루어진다.

▲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던 지난해, 새누리당 지도부 회의에서 유 당시 원내대표와 김무성 대표가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구사일생 황우여…김무성 측근 김성태·김학용은 '단수'

이날 컷오프될 것으로 예상됐던 황우여 의원은 살아남았다. 황 의원은 애초 분구 선거구인 인천 연수갑에 공천을 신청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공관위는 이날 황 의원의 지역을 인천 서구을로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는 대가로 구사일생한 듯한 모습이다.

황 의원이 출마하게 될 것으로 확실시되는 인천 서을에서는 김태준·이행숙·이훈국·홍순목 예비 후보 또한 경선 지역 선정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와 관련, 이 위원장은 인천 서을로 황 의원의 선거구를 이동하게 된 것에 대해 "경쟁력 감안"이라고 밝혔다. 기존 예비 후보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은 만큼, 당헌·당규에 따라 우선 추천 지역으로 선정해 황 의원을 대표 선수로 내보내겠다는 작전이다.

이날 발표에서 살아남은 일부 비박계 인사들은 친박계 예비 후보들과 경선을 치르게 됐다. 대표적으로 서초갑의 이혜훈 전 의원은 조윤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강남갑의 심윤조 의원은 이종구 전 의원과, 대구 서구의 김상훈 의원은,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여론 조사 경선을 치르게 됐다.

반면, 김무성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의원과 김학용 의원은 각각 서울 강서을과 경기 안성에 단수 추천을 받아 이날로 공천이 확정됐다. 이에 대해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측근들은 대거 '컷오프' 되었지만 김 대표의 측근들은 비교적 생존율이 높은 편이란 평이 나오고 있다.

앞서 부산 북강서갑의 박민식 의원도 일각의 예상과 달리 컷오프되지 않고 경선 참여가 확정됐다. 강릉의 권성동 의원도 단수 추천됐다. 서울 양천을의 김용태 의원도 '살생부 논란'을 딛고 단수 추천됐다. 포천·가평의 김영우 의원도 경선에 참여한다. 대구에서는 눈에 띄는 인위적 물갈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부산에선 컷오프된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다는 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오락가락 행보로 빈축을 샀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이날 서울 마포갑에 단수 추천됐다. 이 지역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해 온 강승규 당협위원장의 반발이 예상된다. 안 전 대법관은 김무성 대표의 지속적인 '험지 출마' 요구로 당초 희망했던 부산을 뒤로 하고 마포갑 출마를 선언 후 지명직 최고위원이 되었다.

이제 새누리당 안팎의 관심은 가까운 의원들이 대거 낙천된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컷오프 여부에 모이고 있다.당초 윤상현 의원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공천 여부는 '패키지'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날 윤 의원의 공천 배제만 발표됨으로써 상황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위원장은 이날 대구 동구을 경선 여부를 발표하지 않은 까닭을 묻자 "공관위 내부에서 의견 통일이 되지 않아서 조금 더 여론을 수렴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16일 오전으로 예고된 회의를 전체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통상 전반부 1시간가량은 언론에 공개로 회의를 진행한 후 민감한 내용만 비공개로 전환된 회의에서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날은 공개 회의를 하지 않겠다고 공지한 만큼, 유 전 원내대표의 컷오프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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