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희망 퇴직하래요!" "겁 먹지 마세요"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희망 퇴직을 강요당한다면…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40대 남성이 찾아왔다. 체격이 건장하고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할 것 같지 않은 인상으로, "이런 게 다퉈볼 수 있는 문젠지 모르겠다", "자기가 잘못을 하긴 했다"며 머뭇거렸다. 그리고 무겁게 지고 온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놓았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엔 움츠려진 어깨에 눈물이 그렁했다.

남자는 28년 전에 모 대기업 생산직으로 입사를 했다. 세월이 흘러 진급을 했고 어느덧 생산 관리 부서의 간부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회사에서는 때론 공개적으로 때론 비공개적으로 명예 퇴직이라고 불리는 희망 퇴직을 받는 기간이 있곤 했다. 비상 경영이라고도 했고, 구조 조정이라고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숫자의 직장 선배들과 동기들이 회사를 떠났다. 그런저런 송별회를 하면서, 원치 않아도 마지못해 직장을 떠나게 된 이야기들도 제법 전해 들었다. 위로도 나누고 덕담도 건냈지만, 그런 일이 내 일이 되는 날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정년까지 묵묵하게 일하며 조용히 다녀야지 싶었다.

그런데 두 달 전, 남자는 남의 일로만 여겼던 희망 퇴직 종용을 받았다. 인사 팀 간부가 찾아와 회사가 경영 위기라며 희망 퇴직을 종용했다. 고과가 나쁘다며, 나이와 학력을 언급하며, 추가 진급이나 부서 이동이 어렵다고 말했다. 계열사에 다니는 남자 형제들 이야기도 은근슬쩍 비췄다.

남자는 지난 1~2년 고과가 좋지 않았다. 진급 대상자가 아니라 다른 동료들을 배려하느라 또 회사를 이해해야 하는 간부 입장에서 한두 해 정도의 고과를 가지고 운운하는 것이 면구해 이의 신청도 하지 않았었다. 이의 신청을 했더라도 고과가 상향되기는커녕 트러블 메이커(trouble-maker)처럼 여겨질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랬던 모든 것들이 남자가 희망 퇴직 대상자가 된 원인이 되어버렸다. 몇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당혹감과 수치스러움,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거절하고 회사와 대치하며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회사가 제시한 위로금으로 치킨집이라도 내야 하나 고민하면서, 어쩌면 경력직으로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회사가 내민 희망 퇴직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남자가 퇴직을 결정하자 회사는 퇴직일을 서둘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신변 변화 속에 남자는 뭐에 홀린 듯 경황이 없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업무 관련 교육 자료 몇 가지와 부서원의 연락처를 담은 파일을 회사 계정에서 자신의 개인 메일로 전송했다.

문제는 교육 자료가 회사 대부분의 문서가 그러하듯 '대외비'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것. 그 가운데 총무 팀에서 받은 문서 가운데는 부서원의 연락처에 주민등록번호도 들어있었다. 딱히 영업 기밀이라고 볼 내용이 아니었고, 자료의 출처가 총무 팀이었지만, 자신의 개인 메일로 '전송'한 것이 문제됐다.

회사는 그걸 문제 삼아 위로금을 내정했던 희망 퇴직이 무효라면서 징계와 형사 고발을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황하고 겁에 질린 남자는 회사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전제하에 위로금을 포기하고 일반 퇴직을 했다.

남자는 멍하니 일주일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졸지에 아무 보상 없이 실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미세하게 떨리던 음성은 결국 울먹거림으로 변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회사가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가 있는지….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남자가 유출한 대외비 자료는 생산 설비나 운영, 생산성 효율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미 출판된 관련 서적이나 인터넷상에 오픈되어 있는 정보를 잘 정리해둔 정도의 자료였다. 남자가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내부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형사 처벌을 받을 정도의 사안이 아니었다.

회사가 남자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해 손해 배상을 구한다 하더라도,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손해가 얼마 정도 발생했는지를 소명해야 한다. 직원 정보 자료 역시 그러하다. 개인 정보를 유출해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였다면 몰라도, 애초에 이 자료를 회사로부터 전달받았고 이를 영리 목적 등으로 이용한 것도 아니니 개인정보보호법 상의 처벌 대상이 되기 어렵다. 내부적인 징계 사안인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또, 민법 제527조에 따르면 계약의 청약은 이를 일방적으로 철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명예퇴직이 합의에 이르면 근로 관계가 종료된다. 그러고 나서 합의 후에는 일방이 임의로 의사 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 따라서 희망 퇴직 합의서가 작성된 후에 회사의 일방적인 희망 퇴직 무효 통보는 효력이 없다. 그러니 이후에 남자가 낸 일반 사직서의 효력은 재고될 여지가 크다.

한편, 저성과자 해고 지침도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회사가 이를 악용하여 근로자를 압박하며 고도의 심리전을 한다. 갑작스럽게 이러한 대화에 응하게 된다면, 저 한마디를 기억하자. 그리고 퇴직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해도 괜찮다. 퇴직을 하고 싶지 않은 경우는 물론이고, 좀 더 유리한 조건의 희망 퇴직이 고민이 되도 그러하다.

자신에게 좋은 희망 퇴직인지를 고민하면서 후속 대화에 임하는 것이 유리하다. 을이 자신이 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예민한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을이 스스로를 을로서 설정하고 지레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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