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중년 남성, <사피엔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⑧]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이번에 다룰 책은 독서가 사이에서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문 자자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펴냄)입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역사학자인 저자가 인류(호모 사피엔스)를 주제로 태고부터 로봇혁명까지의 빅 히스토리를 온갖 지식을 동원해 설명해낸 역작입니다. 책은 역사학, 지리학, 인류학, 과학 등 여러 분과 학문이 축적한 지식의 정수를 응축한 듯 놀라운 이야기를 꽉꽉 눌러 담았습니다. 놀랍게도 읽기도 쉽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조상이 뒷담화로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발생한 인류 최초의 거대 혁명인 인지 혁명으로 지구 제패의 서막을 열었다고 말합니다. 이어 농업 혁명이라는 "역사상 최대의 사기"로 문화를 만들어냈고, 드디어 역사 시대로 접어들어 돈, 정치, 종교라는 3가지 성물로 현대 사회를 일으켜 새로운 혁명, 즉 과학 혁명의 시대를 코앞에 두게 되었다는 대서사를 풀어냅니다.

2011년 이스라엘에서 출간되자마자 뜨거운 화제가 된 이 책은 지난해 말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었습니다. 3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8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대담자들은 이 책이 이처럼 큰 관심을 받은 이유를 분석하고, 앞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르리라는 기대감을 나눴습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에게는 희소식입니다. 이 책을 펴낸 김영사는 오는 4월 25일 이 책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내한 강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기회를 독자 여러분이 얻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저자 강연에 앞서, 이 책이 어떤 매력을 가졌는가를 알아보는 우리의 대담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이번에 <사피엔스>를 다룹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첨단 문명의 시대에 우리는 행복한가

장은수 : 오늘 우리는 <사피엔스>를 이야기합니다. 여러 말 할 필요가 있으랴 싶기도 하네요. (웃음) 이 책을 읽은 소감부터 간단히 나누며 이야기를 열어가 볼까요?

이홍 : 이 책의 성공 요인은 분명합니다. 저자와 콘텐츠의 힘입니다. 결국 저자와 콘텐츠만큼 독자를 견인하는 요인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출판사도 책 자체의 힘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하고 차별적인 론칭 전략을 고민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신 전략 도서들의 기본적인 공식에 철저하게 집중했습니다. 언론 매체를 통한 서평, 지식인 그룹 중심의 바이럴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책 소식이 고급 독자층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퍼졌습니다. 출판 시장에 이런 정도의 가치를 지지하고 소화해줄 독자층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사피엔스(인류)가 자기 존재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상상하는 종족이라는 내용은 흥미로웠습니다. 사유하는 동물이란 뜻이죠. 다양한 방식으로 출간되는 빅 히스토리 계열의 책이 보통 자료 정리, 분류에 주로 치중하는 데 반해 이 책은 저자의 주관적 해석이 지나칠 정도로 넘칩니다. 독자가 동의하지 못하면 저항해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서툴거나 밉지 않죠. 왜냐하면, 그러한 주관의 과도한 노출이 막무가내라기보다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정교한 비단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 물리학, 종교에 대한 성찰이 놀랍도록 탁월합니다.

장은수 : 이 책이 왜 나왔을까 생각해봤어요. 사피엔스가 사피엔스 이상으로 진화하려는 시기라 그렇지 않을까요? 인간의 안드로이드화를 비롯해 로봇 혁명이 일어나려는 시기잖아요. 호모 로보티쿠스(Homo roboticus)라는 말까지 이미 등장했죠. 인간이 더는 자연 그대로의 존재로 남지 않고, 지능을 이용해 사피엔스 이상의 존재로 진화하려는 순간이 현대잖아요? 이런 시대상이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의 중요함을 돋보이게 하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사피엔스가 처음 나타나서부터 여태까지 역사 전체를 종합적인 시각으로 다룬다는 겁니다.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으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됐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3가지 신화, 즉 돈, 제국, 종교를 만들었죠. 자본, 정치, 믿음을 만든 거죠. 인간이 인지 혁명 당시 만든 상상의 질서 아래 여전히 살고 있고, 여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경제 문제는 지금도 세계의 화두고, 제국의 문제, 종교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이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두고 저자는 커다란 틀에서 하나의 이행기로 봅니다. 큰 역사의 눈으로 보면, 이 또한 지나가는 시기에 불과한 거죠. 눈앞의 자잘한 문제는 치워버리게 하고, 인간으로서 통찰을 갖고 '온전히 직립'하게 해주죠. 독자가 사피엔스라는 종의 차원에서 허리를 펴고 세상을 바라보게 도와줍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가면 결국 인간이 마주한 새로운 문제, 즉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느냐'를 화두로 꺼냅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이거잖아요? 이런 질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려주죠. 행복을 다룬 일반적인 책은 '어떻게 해야 행복하다'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은 행복이라는 문제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왜 우리한테 이 질문이 중요한가를 묻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 이 책은 우리를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갑니다.

이홍 : 탁월한 시야로 인류 역사를 해석한 책이지만, 이 책 역시 끊어진 진화의 고리를 명쾌히 이어주진 못합니다. 저자의 한계라기보다는 현재까지 과학이 풀지 못하는 숙제입니다. 그래서 인지 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다소 공허합니다. 이처럼 탁월한 책에 후련하게 미싱 링크(missing link)가 거론된다면 정말 완벽할 텐데 말이죠.

유발 하라리는 농업 혁명을 가리켜 "거대한 사기"라고 했습니다. 사피엔스인 저자의 그리움은 수렵 채집 시대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농업 사회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지구의 지배자가 됐잖아요? 저자가 말하는 거대한 사기에 힘입어 과학혁명, 제국의 성립이 이어졌습니다. 행복의 문제가 여기서 등장한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장은수 : 왜 저자는 행복의 문제를 던질까요. 저자에 따르면 사피엔스가 현대 인류와 비슷하게 살아가기 시작한 건 농업 혁명 이후입니다. 그런데 농업 혁명은 이루었지만, 여전히 수렵 채집 시대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겉만 농민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수렵인으로 사는 데 최적화된 상태로 진화했는데, 삶은 가만히 정착해 중노동해야 하는 농업인으로 변했기에 행복하지 못한 것이겠죠. 행복 담론의 핵심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는 건데, 이건 지극히 수렵인의 태도로 보입니다. 채집하며 살고, 먹을 걸 찾기 힘들면 굶으며 이동하면 그만이죠.

이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따라가면, 결국 왜 이 풍요의 시대에도 굶주리는 이가 많고,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지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인류가 자연 그대로의 삶을 초월하려는 욕망을 품게 되었는데, 그 욕망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거죠. 해결 불가능한 욕망에 시달리게 된 원점을 찾아가면서 저자는 우리한테 '농업 혁명은 거대한 사기'였다는 테제를 하나 던졌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이홍 : 저는 행복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저자의 철학적 사유를 맛봤고, 그 부분이 다른 빅 히스토리 계열의 책과 다른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행복을 고민하게 된 발단은 인지 혁명이었죠. 형이상학의 세계를 상상하고, 이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고민(?)이 태동했습니다. 불행을 맛보면 끝나지 않으리라는 불안, 행복해도 행복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불안을 낳은 거죠. 저자에 따르면 사람은 인지 혁명 이후 존재하지 않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예측하려 합니다. 단순히 수렵이냐 농업이냐의 문제를 넘어, 사피엔스가 이처럼 무지막지한 상상의 세계에 발을 디딤으로써 폭발적 변화가 시작됐죠.

장은수 : 한편으로 저자는 정말 탁월한 스토리텔러예요.

저자의 행복 화두를 책 후반부 이야기부터 따라가 보죠. 현재 우리 삶을 지탱하는 세 가지 시스템, 즉 돈, 정치, 신념이 제공하는 조건이 현재 우리 삶에 만족을 주는데 부족합니다. 최근 <근시 사회>(폴 로버츠 지음, 김선영 옮김, 민음사 펴냄)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역시 <사피엔스>와 같은 고민을 담았습니다. 인간이 눈앞의 일에 묻혀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발밑만 내려다보면서 삽니다. 내면의 눈도 뜨지 못했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사피엔스>의 저자처럼 우주 바깥으로 날아가 우리 삶을 긴 시간 동안 내려다보는 시각을 갖고 싶을 겁니다.

<사피엔스>가 가진 콘텐츠의 힘은 결국 근시안적 세계관에 갇혀버린 현대인, 특히 한국인에게 인간을 넘어서는 거대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커다란 통찰까지 제공하는 데에서 옵니다. 책을 읽고 난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품어 왔던 신념 체계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 덕분에 눈앞에 탁 트이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탁월합니다.

▲ 이집트 벽화에 새겨진 농업 혁명(신석기 혁명)기 인류의 모습.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며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는 문화를 낳고, 국가 체제를 낳았다. ⓒwikipedia.org

유발 하라리, 4월 내한 예정

장은수 : 교보문고가 제공한 독자 통계를 한번 볼까요? 이 책 독자 구성이 특이합니다. 남성 독자 비중이 무려 63.7%에 달합니다. 인문서 전체 평균은 48.1%에 불과한데 말이죠. 아주 예외적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왔을까요?

이홍 : 경제 경영서 장르 분석에서도 등장하는 예이지만 대체로 40대 이상 남성 독자가 거대 담론을 담은 책에 끌리는 것 같습니다. 무게와 권위를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아마 인문 계열 중에서도 심리학 등 일부 분야는 이 책과 반대로 여성 비중이 인문서 평균보다 크겠죠.

장은수 : 이 책은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외국에서의 흥행에 힘입어 권위를 갖게 됐습니다. 내용도 오피니언 리더들이 먼저 반응할 만한 책이죠. 이런 통계 결과가 결국 남성이 리더의 자리를 독점하는 우리 사회의 성 현실을 반영하는 건 아닌가 싶은 추측도 조심스레 해 봅니다.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오피니언 리더)이 대체로 제법 나이 든 남성이라는 얘기죠.

다만 남성이 이 책을 여성보다 더 선호한다는 가정은 성립하기 힘듭니다. 당장 20대 독자층을 보면 남성과 여성의 비중이 각각 4.8%, 6.3%로 여성 독자가 더 많아요. 물론 젊은 층의 비중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는 합니다.

통계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출판사 입장에서는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젊은 층과 여성층에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거죠. 뚜렷한 홍보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성별/연령별 비중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대로 홍보하면 이 책은 <코스모스>(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급의 명저로 오래도록 읽히리라 봅니다.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사피엔스>처럼 특정 연령, 특정 성 프레임에 갇힌 책은 단순히 독자 서평이 늘어난다고 해서 다른 독자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관심 있는 독자 사이에서만 자잘한 입소문이 더 퍼지는 정도겠죠. 잠정 독자층이 크다고 가정하면, 강력한 홍보 수단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태백산맥>(조정래 지음, 해냄 펴냄)의 경우 TV 광고까지 했죠. 단숨에 잠재 독자층 모두에게 책을 알렸습니다. <사피엔스> 역시 이처럼 동시에 잠재 독자층을 공략할 수 있는 홍보 수단을 써야 남성층으로 고정된 지금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영향력이 큰 인물의 입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죠. 대학생 필독서로 추천하기도 매우 좋은 책입니다. 다만, 필독서 치고는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합니다.

마침 출판사에서 흥미로운 홍보 강연을 예정했네요. 유발 하라리가 오는 4월 25일(예정) 내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에 맞춰서 홍보를 강력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봅니다.

이홍 : 저자의 내한이 확정되었다면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강연 등을 할 텐데요, 이 책 내용을 반복해서 요약해주는 식이면 무척 아쉬울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화두를 던져야 합니다. 저자 초청 강연 중 최악은 저자가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강연입니다. 그런 건 그냥 영상물을 틀어줘도 돼요. 강연이 책과 같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문자로 기록하지 못한 것들을 목소리로 들려줘야 하고 새로운 이슈를 던져줘야 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방송국과 협의해 책 내용을 다루는 스페셜 프로그램 제작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보고요.

장은수 : 맞습니다. 이런 저자 홍보가 일회성으로 그친다는 점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자 강연회를 다음 책 기획으로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본 출판계가 이런 점에서 강합니다. 예를 들어 유발 하라리의 강연회를 '나는 왜 빅히스토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는 식의 주제로 잡고,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등 국내 석학들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이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엮어 역으로 국외 시장에 팔 수도 있을 겁니다. 기자회견을 한다손 치더라도 공동 기자회견과 별도로 해당 분야 전문 기자 그룹과의 인터뷰를 추진하는 것도 좋으리라고 보고요.

이홍 : 아주 흥미로운 아이디어로군요. 하지만 저는 이런 좋은 계획이 실행된다고 해도 기대만큼 큰 효과를 거둘지 의문입니다.

우리 도서 시장의 현실을 볼 때, 이 책을 더 젊은 층이 적극적으로 사주길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가격 저항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너무 두껍습니다. 읽은 사람이야 걱정보다 내용이 무척 쉽다는 걸 알지만, 접하지 않은 사람은 먼저 부담감을 느낄 겁니다. 이 책의 표지를 덮은 여러 글귀도 우리 사회의 당면한 이슈와 연결점은 없지요. 즐겨 읽는 독자가 아니라면 쉽게 관심 가지기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단기적으로 이 책이 8만 부가량 팔렸는데, 이 정도면 초기 성과는 매우 훌륭하다고 봅니다. 물론 멈추지는 않겠지요. 좋은 교양서로 꾸준히 팔릴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르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더 알리기 위해서는 홍보 콘셉트를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출판사는 초창기부터 이 책을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와 비교했습니다. <사피엔스>가 그 책처럼 오랫동안 회자될 명저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겠죠. 그러나 이런 비교 콘셉트에 계속 의존한다면 오히려 잠재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초기 확산에는 그런 전략이 효과가 있었겠지만, 이제 더는 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독자라면 누구나 이 책이 기대보다 더 재미있다는 점을 알 텐데, 출판사는 이 뜻밖의 재미, 책이 가진 독특한 사유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은수 : 맞습니다. 이 책이 퍼지려면 시민적 가치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책을 잘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면, 지금부터는 보통 사람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알려줘야 합니다. 읽어보니 괜찮다는 말도 좋고, 방학에 읽을 필독서라는 식의 포장도 좋죠.

이홍 : 독자들이 쓴 서평을 찾아봤습니다. 책 내용 중 쟁점화할 이야기가 아주 많은데, 이를 콕 집어 말하는 이가 뜻밖에 별로 없더군요. 예를 들어 다신론과 일신론에 관한 저자의 관점은 논란이 될 수 있으리라 보는데 말이죠. 출판사가 이런 이야기를 건드려서 독자에게 알려주면, 이 책에 더 많은 이가 관심을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 30대 이상부터는 남성 독자 비중이 여성보다 크다. ⓒ프레시안

독자를 모아라

장은수 : 우리가 <사피엔스>의 홍보를 이야기하면서 콘텐츠의 힘에 의존했다는 데 중점을 두고 이야기했는데요, 사실 할 만한 홍보는 초기에 다 했습니다. 당장 출판사에서 출간 전 몇몇 파워블로거에게 이 책의 가제본을 보내 사전 리뷰를 받기도 했죠. 이런 홍보가 이제는 세계적으로 일반화됐는데, 뜻밖에 한국에서는 자주 시도되지 않습니다.

조금 재미있는 부분은, 가제본을 활용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이 책이 이미 국내에서 상당히 사전에 홍보됐다는 겁니다. 이 책은 우선 원서부터 국외에서 큰 화제가 됐죠. 그리고 국내 발간이 결정된 후, 번역서가 나오기 무려 6개월 전에 한 매체에서 기사가 나오면서 홍보가 사실상 이뤄졌습니다. 6개월이라면 매우 긴 시간인데, 조금 특이합니다.

김영사 : 책 내용이 방대하고, 확인해야 할 사안이 많다 보니 초기 홍보 후 책이 출간되는 데 긴 시간이 들었습니다. 편집에 다른 책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초기에는 이 정도로 긴 시간 공백을 두고 기획하지 않았습니다.
장은수 :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그 사이 원서를 찾아 읽은 독자도 꽤 됩니다. 이게 출판사에서 의도한 건 아닌데, 블로그를 들여다보니까 결과적으로 사전 홍보가 됐어요. (웃음) 그리고 책 출간 2~3주 전 가제본을 파워블로거에게 돌려 서평을 받았죠. 출판사가 사전에 의도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이런 일련의 흐름은 훌륭했다고 보입니다. 우리가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책이 나온 후 실제 서점, 특히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되는 기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대한 긴 판매 기간을 확보하는 게 책 홍보의 중요한 가치가 됐어요. <사피엔스>는 이런 시도가 잘 먹혔습니다.

이홍 : 이 책의 홍보 흐름이 좋았다고 하지만, 이 모든 과정과 결과는 솔직히 <사피엔스>였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어요. 이 책은 이미 2011년에 출간돼서 해외에서 베스트셀러로 검증된 책이니까요. 사전 가제본을 돌리기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만한 책이었죠. 그런데 출판사에서 이 책처럼 자신감을 느끼고 내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10%, 20%도 안 될 겁니다. 확신이 없는 책을 두고 사전 홍보를 강하게 할 수는 없죠. 현실이 그렇습니다.

장은수 : 당연히 출간 전 가제본 홍보를 할 때는 전제조건이 성립돼야 합니다. 우선 독자가 모여 있어야 합니다. 외국 출판사의 경우 대개 특정 분야의 책을 선별한 사이트를 별도로 두고, 이곳에서 독자를 모읍니다. 랜덤하우스코리아는 브라이틀리라는 아동서 소개 사이트를 갖췄죠. 반면 (<사피엔스>를 낸) 김영사는 오래전부터 과학, 인류학 분야의 굵직한 책을 냈습니다만, 주제별로 독자를 모을 만한 구조를 갖추지 않았어요. 독자를 미리 모아놓지 않으면, 당연히 사전 가제본 홍보는 힘듭니다.

이홍 : 가제본 홍보를 떠나서, 출판사의 사전 홍보가 힘든 가장 큰 이유는 홍보할 거리가 저자 원고밖에 없다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독자에게 던져줄 무언가가 있어야 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데, 출판사가 던져줄 수 있는 콘텐츠는 저자뿐이죠.

장은수 : 동의합니다. 출판사가 손에 쥐고 있는 게 없어요. 우리가 책을 오랜 기간 독자에게 알릴 필요가 생겼고, 이를 위해 사전 홍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 같은 홍보를 반복해서 유지하려면 결국 출판사가 독자와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중심을 가져야 하고, 이를 반복해서 확인해 주는 콘텐츠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게 홍보의 기본이 되어야겠죠. 그래야 3개월 전부터 책을 알리고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의미가 있게 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의 가치 변화를 꾀하지 않는 출판사는 지속해서 약해지고, 베스트셀러를 내도 이익이 크게 남지 않는 식으로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출판은 실패할 확률이 큰데도 하는 비즈니스인데, 미리 홍보 콘텐츠를 구축하지 않으면 설사 책이 크게 성공하더라도 그만큼 홍보비용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죠.

왜 이 책은 잘 팔렸을까?

▲ "미국이 팟캐스트 홍보 원조." ⓒ프레시안(최형락)
장은수 :
김영사는 <사피엔스> 홍보에 팟캐스트를 활용했습니다. 이전과 조금 다른 시도였죠. 출판사는 팟캐스트 주요 청취자를 30~40대 남성으로 잡았고, 이들에게 호소하고자 <경제 브리핑, 불편한 진실>과 <이동진의 빨간 책방> 등 인기 팟캐스트에 이 책을 알렸습니다.

팟캐스트 홍보의 원조는 아무래도 미국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종합 출판사는 팟캐스트를 통한 홍보를 그다지 많이 활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유튜브는 많이 활용하지만요. 검색이 잘 안 되고 지속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팟캐스트는 특정 프로그램의 가치에 동의하는 독자의 반복 청취 습관에 따른 콘텐츠 몰입에 기댑니다. 그러니 특정 분야 책을 내는 출판사가 아닌 종합 출판사라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박시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과 같은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차례 방송하는 것 이상은 시도하기 어렵죠.

그게 아니라면 <사피엔스> 홍보와 같이 남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관련자가 출연하는 식으로 홍보하는 방법뿐입니다. 그러나 이건 라디오 홍보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들이는 비용에 비해 독자를 묶는 효과가 떨어지죠.

김영사 : 저희는 팟캐스트를 TV, 라디오와 같은 매체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매체에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다 생각해 홍보를 진행했습니다. 김영사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채널은 없습니다.
이홍 : 홍보 결과는 확인하시나요? 이 시기에 어디서 홍보했는데 이런 반응이 왔다는 식으로요.

김영사 : 그런 확인은 어렵습니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에 전면 노출되는 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있는데, 이때 바로 반응이 왔다는 정도만 점검합니다.

아마 홍보 결과를 수치화하고 기록하는 건 출판사 모두가 가진 고민일 텐데, 저희가 아는 한 즉각 정량화할 방법은 마땅치 않습니다. 신문 광고한다면 바로 다음 날 반응을 판매 부수나 주문 변화로 확인할 수 있지만, 다른 채널에서는 어렵습니다.
이홍 : 제가 대담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출판사에 드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분석해야 홍보가 발전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때 책이 잘 나갔는데 우리가 마침 이런 홍보를 했으니 그럴 거야'라는 식의 사후 끼워 맞추기 해석 이상을 하지 못합니다.

<사피엔스>를 예로 들자면, 적어도 김영사가 가진 <사피엔스>와 유사한 책의 예전 판매 그래프 변동치와 같은 기본적 내부 데이터는 갖고 있어야 앞으로도 지금의 결과를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실이 쉽지 않은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출판사가 내부 정보 축적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김영사와 같은 큰 출판사는 다른 출판사에 앞서 이런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은수 : 출판사가 역량을 축적하지 못한다면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저자와 서점의 힘이 점차 강해지는 시대입니다. 출판사가 책의 가치 확산에 이바지할 힘이 떨어지고 있죠. (김영사와 같은) 대형 출판사마저 자사가 낸 책을 알리는 데 한 역할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한국 출판사의 힘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가 역량을 증명하지 못하면, 저자가 떠납니다. 요즘이 그렇죠. 저자가 떠나서 새로운 출판사를 차립니다. 자기 돈으로 차리지 않고 출판사의 투자를 받습니다. 김난도, 이지성과 같은 스타 저자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죠.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출판은 영화사처럼 저자에 투자하는 투자 산업으로 전락합니다. 감독이 영화기획사 사장이 되잖아요. 베스트셀러 저자가 출판기획사 사장, 콘텐츠 생산자가 돼 버리면, 출판사가 할 역할은 점점 기획과 투자 정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출판사가 마케팅을 더 공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자가 계속 출판사를 이탈한다면, 장기적으로 출판사가 버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출판사의 핵심 역량은 무엇이냐. 출판사가 스스로 그에 해당하는 요소를 뽑고, 하나씩 점검해가면서 스스로 역량을 확보해 가야 합니다. 다시 마케팅을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출판사는 더 창조적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출판선진국의 출판사는 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인 출판사나 대형 출판사나 돈이 부족해서 충분히 못 한다고 하죠. 돈이 충분히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창조성이 그다지 필요 없겠죠.

이홍 : 결국 시장의 요구, 즉 독자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독자 요구가 어떻게 생성되느냐,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느냐를 알고, 그에 대응하는 책을 만들어야죠. 이런 반응이 우연한 발견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경험에 극단적으로 의존합니다. 그간 우리의 대담에 참여한 출판사 대부분이 자기 책이 잘 나간 이유를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출판사는 실패 사례 분석은 잘합니다. 그러나 성공 사례를 두고는 분석하지 않습니다. 뭐든 잘됐다는 식이죠. 잘 된 책을 오히려 냉정히 분석해야 하는데 말이죠.

장은수 : 사후 분석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기껏해야 '인스타그램 활용을 잘해 독자가 많이 봤다'는 식이죠. 분석 불가능한 겁니다. 분석할 수 없으니 배울 수 없습니다. 출판사 내부에서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런 모델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니 적잖은 출판사가 뛰어난 판매 담당자가 일을 그만두면 바로 능력을 상실하죠.

네이버가 책도 삼키는 시대

장은수 : 다른 주제로 넘어가죠. 김영사는 네이버 포스트를 활용해 <사피엔스> 홍보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모든 온라인 마케팅은 네이버에 뜨느냐 못 뜨느냐로 성패가 갈립니다. 출판의 네이버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죠.

네이버는 출판을 자기 안에 종속하길 원합니다. 출판 콘텐츠가 네이버 플랫폼 안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마치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요.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미국 출판사가 페이스북 앞에 꼼짝 못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네이버에서 홍보비를 받으려 하겠죠. 아니면 책을 통째로 올리라고 하겠죠. 페이스북이 미국 언론에 요즘 그렇게 하잖아요. 언론사 독자까지 페이스북 내부로 다 흡수해버리죠.

지금 출판사는 네이버에 책을 띄우기 위해 고민하겠지만, '훌륭한 마케팅 도구'라며 좋아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네이버 포스트에서 책을 본 독자가 누구인지 출판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독자가 네이버와 대화할 뿐이죠. 자기 독자를 네이버에 다 빼앗기는 꼴입니다. 이런 현상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더 심해질 겁니다.

▲ "(네이버 의존의) 대안이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인데, 대안이 없습니다. 일단 출판사로서는 독자에게 책을 알리기 바쁘니, 이 정도의 종속성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하죠. 어찌 됐든 지금의 흐름이 소셜미디어로 모든 게 종속되는 상태니까요.

장은수 : 지금은 콘텐츠가 넘쳐나고, 사람에게 부족한 건 시간뿐인 시대입니다. 네이버 포스트 의존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서점에 가지 않게 됩니다.

이홍 : 그렇죠. 우리가 첫 대담 때 이야기했듯, 오래도록 요다이즘이 횡행하는 시대고, 네이버 포스트는 대표적인 요다이즘 도구입니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간단히 내용을 설명해주고 넘어가는 콘텐츠죠.

장은수 : 우리나라처럼 특정 채널에 이처럼 의존해 정보가 교류되는 곳은 드뭅니다. 대개 자사 블로그를 독립적으로 마련해서 콘텐츠 홍보 기반으로 활용하는데, 네이버는 이를 하위로 노출합니다. 얄밉죠. 이런 시간이 3년 정도 더 지난다면, 우리나라 출판사는 언론사처럼 네이버에 완전히 종속될 겁니다. 현재처럼 가면 홍보 효과 좀 보느라고 무료로 자기 콘텐츠를 네이버에 갖다 바치면서 네이버가 독자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언론의 실패 사례에서 출판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김영사와 같이 큰 출판사가 이 시기에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지 앞서 고민해주길 기대합니다.

이홍 : 개구리가 끓는 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죠.

장은수 : 물론 네이버 포스트의 홍보 효과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건 명확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저자가 출판사와 별도로, 네이버 포스트에 각자 연재를 이어갈 겁니다. 그리고 이 플랫폼에서 스타가 되면 그제야 출판사를 찾을 겁니다. 웹툰이나 웹 소설에서 그러했듯이요. 출판사 의존도가 낮아지는 거죠.

예약 판매에서 살아남는 책만 본다?

장은수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제를 더 이야기하고 마치도록 하죠. 예약 판매 이야기입니다. 당장 <사피엔스>도 예약 판매로 댓글이벤트 등을 개시했고, 이 때문에 초기에 독자 관심이 쏠렸죠.

이제 예약 판매는 상식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면 적잖은 신간이 예약 판매됩니다. 예약 판매 비율이 이미 25%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책이 한 해에 4만8000종가량 나오고, 이중 단행본이 2만여 종가량 되는데, 그 절반이 예약 판매된다는 겁니다. 지난해는 9300종이 예약 판매됐죠.

예약 판매의 좋은 점은 서점 내 판매 기간을 늘려준다는 겁니다. 보통 책은 출시 이후 3~4주 만에 판매가 끝나는데, 예약 판매할 경우 이 기간이 6주 정도로 늘어나죠.

예약 판매는 불필요한 배본(출판물 배달) 비용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출간 2~4주 정도 전 예약 판매를 건다면, 그간 반응을 바탕으로 재고를 관리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예약 판매 시 제대로 된 효과를 얻으려면 별도 이벤트를 걸어야 합니다. 거꾸로 보면, 예약 판매를 시행할 때 자유로운 홍보가 이뤄집니다.

이홍 : 예약 판매도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기 독자가 이미 형성된 경우 시행하는 예약 판매, 대기 독자가 없어서 초기 독자 수요를 만들기 위해 시행하는 예약 판매죠. 둘의 성격은 다릅니다. 출판사의 예 약판매를 볼 때 단순히 마케팅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만 볼 게 아니라, 대기 수요의 존재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기다린 독자가 많을 때, 그들에게 사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로만 예약 판매를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대기 수요를 끌어내려는 목적이 강합니다. 그렇다면, 이때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합니다. 상당히 차별적인 무언가를 예비 독자에게 던져줘야 하죠. 책을 보지도 않았고, 책에 대한 명확한 수요가 없는 독자에게 책을 미리 주문할 분명한 이유를 줘야 하니까요. 잘못하면 마일리지, 경품 싸움의 아수라장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 역시 예약 판매가 가진 효용성을 긍정합니다만, 현재 구조 아래에서는 좋은 측면으로 작동하기보다 경품이나 마일리지 싸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보입니다. 이런 경쟁이 일반화된다면 경품 판매가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리죠. 이 싸움에서 진다면, 책이 나오자마자 판매가 끝나버릴 겁니다. 기대와 달리, 책의 생명을 오히려 줄여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부작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장은수 : 독자와 저자 사이에 상호 소통이 항시 이뤄지고 있다면, 그간 모은 독자 관심을 최대화하기 위해 예약 판매를 생각하는 모습이 정상적인 상황이겠죠. 얼리 어댑터를 책 판매의 방아쇠로 쓰자는 겁니다.

예약 판매는 판매를 늘리려는 방법이 아닙니다. 독자의 구매 의사를 키우는 방법입니다.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정보혁명 시대에서 독자의 구매 의사는 '정보 플러스알파'로 이뤄집니다. 어떤 체험을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현재의 예약 판매 상황이 '플러스알파'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별점 달면 기프티콘 쏜다'는 건 충분한 경험이 아닙니다. 예약 판매를 고려할 때는 독자 경험을 어떻게 혁신할 것이냐는 본원적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홍 : 물론 사전 예약 판매의 효용성을 정면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단순히 영업 판매 효과만 기대하고 이를 활용하려 해선 안 된다는 거죠. 아마 예약 판매를 시행하는 99%의 출판사는 같은 고민을 할 겁니다. 반짝하는 무슨 경품을 줘야 하느냐는 식이죠. 조금 더 깊이 있는 고민으로 발전해야 할 겁니다.

돌려 보면, 사실 모든 책은 예약 판매해야 합니다. 온라인 서점에 예약 판매를 거는 것만 다가 아니라, 출판에 앞서 해당 책 독자를 끌어모으고, 저자 정보를 알리는 모든 활동이 예약 판매이니까요.

장은수 : 사전에 충분히 팔리지 않는 책은 사후에도 안 팔릴 겁니다. 출간 전 충분히 팔리는 책만 나중에도 팔릴 겁니다. 아마존의 판매 전략이 그렇습니다. 예약 판매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만 아마존의 오프라인 서점에 진열하죠. 이런 전략은 모든 서점에 같이 적용될 겁니다. 예약 판매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거죠. 지금은 예약 판매를 깊이 연구해야 할 시기입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다 나눈 것 같네요.

▲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이홍 :
소위 말하는 평화로운 시대에는 자신에 대한 고민을 오히려 적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피엔스>가 이처럼 큰 호응을 얻었다는 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매우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때라는 걸 입증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큰 재화를 인류가 축적한 시대이지만, 우리가 사피엔스로서는 이전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종 전체를 돌아보는 이 책에 이토록 큰 관심이 쏟아지겠죠. 특히 우리나라에서 50대 장년 독자가 이 책에 호응한 이유일 겁니다.

예전에는 독자들이 이런 종류의 책을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읽었다고 보는데, 지금은 내가 당면한 자본주의적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손에 쥐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피엔스>와 같은 책이 꾸준히 소개될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사피엔스>가 콘텐츠의 힘을 보여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정말 매력적인 서술 자세를 갖고 이렇게 멋진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책을 오랜만에 봤습니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책 100권쯤 읽은 기분이 듭니다. 김영사에서도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서 이 책의 크기를 키웠다고 봅니다.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큰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자기 한계를 넘어서게 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하게 도와주는 힘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했습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은 읽으라고 권했어요. (웃음)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께서 저처럼 주위에 이 책을 권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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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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