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테러방지법 중재안' 제시…필리버스터 끝날까?

선거법 처리 본회의 앞두고 극적 타결? 가능성 낮아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 즉 무제한 토론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필리버스터가 계속되는 동안 물밑에서는 정 의장과 국민의당(안철수 신당) 등이 중재안을 내놓으면서 극적 타결 가능성에 관심이 모이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정 의장은 2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이런 식으로 (무제한 토론을)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낭비"라며 "내일(26일) 오전 중으로 끝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어 "국회 법제실에서 몇가지 아이디어를 내어 전달했고, 국민의당도 아이디어를 냈다"며 "그런 것을 가지고 양당 교섭단체 대표들이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여야 모두 테러방지법 관련 대치를 빨리 끝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정 의장이 언급한 '육체적 낭비'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난 23일 김무성-김종인 대표 간의 선거구 획정 합의로 청신호가 켜진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서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는 당초 이날 정오까지 국회가 요청한 선거구 획정안을 제출하기로 돼 있었으나, 논의가 길어지면서 이날 오후 6시 현재까지 획정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회 안정행정위 여당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오늘 밤 늦게나 돼야 획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만약 이날 밤 중으로 획정안이 나오게 되면, 총선을 불과 49일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 지도부 모두 선거법 통과에 대해 더 심한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양보하지 않으면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풀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필리버스터가 계속되면 26일·29일로 예정된 본회의도 무산될 수밖에 없다.

또 야당 입장에서는 다음달 10일이 돼 2월 국회 회기가 끝나면 테러방지법은 즉각 원안 그대로 표결에 부쳐진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이날 "필리버스터만으로는 법 통과를 막을 수 없다. 필리버스터가 끝난 순간 바로 통과되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새누리당에 대해 "'필리버스터 끝나면 보자'는 식으로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는 독단적 태도로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은 그 방증이다.

중재안 내용과 그에 대한 여야 입장은?…새누리 "받을 수 없다", 더민주도 "이것만으론 안 돼"


현재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에 정보수집권, 즉 테러 용의자에 대한 미행을 할 수 있는 추적조사권이나 금융거래 정보 등을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더민주는 이같은 권한을 국정원이 아닌 국무총리실 또는 국민안전처 산하에 설치될 '테러대응센터'에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의장이 법제실 자문을 거쳐 의견서 형식으로 낸 중재안은 정보 수집 권한을 국정원에 주기는 주되, 국정원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을 강화하자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단 중재안의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 의장 측이나 여야 양당 모두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이 내놓은 중재안도 이와 유사하다. 이날 오전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첫째,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는 무차별적인 정보수집권·감청권·조사권을 제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 마련에 3당이 조속히 합의해야 한다"며 "안전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또 "둘째, 국회 정보위원회의 전임 상임위화를 제안한다"며 국정원에 대한 국회 차원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중재안 역시 결국 국정원에 정보 수집 권한을 주기는 주되, 국회 정보위 차원의 통제를 강화해 남용 우려를 줄이자는 것으로 읽힌다. 국회 정보위 간사를 지낸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더민주가 반대하고 있는) 추적조사권이나 금융정보 수집권은 이미 국정원이 갖고 있는 테러 관련 정보 수집 권한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정보수집권을 국정원에 주는 것 자체는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단 문 의원은 권한을 주더라도 "'테러 위험 인물'에 대한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하고, 국정원장이 금융 거래 중지를 요청할 직접적 권한을 갖는 것은 (법 체계에) 안 맞으니 국정원은 보고만 하고 대통령이 하는 것으로 해야 하며, 통신비밀보호법상의 영장주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정도 선에서 여야가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중재안에 대해 여야 원내지도부는 모두 일단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민주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국민의당이 내놓은 중재안에 대해 "정보위 강화도 유용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며 "현재의 테러방지법에서 일정 부분의 독소 조항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수석부대표는 정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서도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의장께서 노력하고 계시다는 부분은 나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 우리가 '받겠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단 그는 "(정 의장의) 중재안 외에도 한두 가지 더 (야당 주장을) 수용해 준다면,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새누리당의 반응은 더 완강하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중재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 수석부대표는 정보위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테러방지법과 다른 법안을 붙이자는 것"이라며 "(정보위 강화는 결국) 국회법을 고쳐 달라는 것인데, 그것은 테러방지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야당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수석부대표는 국정원의 정보 수집권 발동 요건을 강화하자는 방향의 중재안 제안에 대해서는 "그것은 이미 의장 중재안을 받아서 '주호영 안'(주 의원이 제안한 테러방지법 수정안)에 들어가 있다"며 이 이상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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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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